"결국은 서민들만 피해를 볼 겁니다." 지난 9월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가 본격화한 후 만난 한 전문가는 이같이 우려했다. 언제든 현금 융통이 가능한 자산가들은 대출이 필요하지 않으니 규제 강도에 영향을 받지 않고, 대출을 껴야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서민들만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지옥션이 발간하는 '2024년 10월 경매동향보고서'를 보면 지난 10월 경매 진행 건수는 380건으로 401건을 기록한 2015년 4월 이후 최다 건수를 보였다. 한 달 전인 9월 169건과 비교하면 2배 넘게 급증했다. 대출을 갚지 못해 시장에 나온 매물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이런 흐름은 서민들이 많은 '노도강'(노원구·도봉구·강북구) 등 서울 외곽 지역에서 더 뚜렷했다. 경매 시장에 나온 서울 아파트 가운데 2회 이상 유찰된 총 35건 중 13건(37%)이 '노도강' 매물이었다. 역시 서민이 많이 찾는 서울 구로구와 금천구, 은평구 등에서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유찰된 사례가 많았다. 반면 '강남 3구'(강남구·서초구·송파구) 낙찰가율은 모두 100%를 넘겼다.
정부는 이달 초 다시 한번 서민 대출 옥죄기에 들어갔다. 지난 2일부터 수도권 아파트 거래의 디딤돌 대출 한도가 축소됐다. 이번 규제는 은행이 디딤돌 대출 한도를 계산할 때 '방 공제'를 필수 적용하는 게 핵심이다. 방 공제는 은행이 세입자에게 줘야 할 최우선 변제금액을 전체 대출액에서 미리 빼고 주택담보대출을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간은 은행 재량으로 전체 대출액에 방 공제 금액을 제하지 않고 대출을 해왔다.
현재 서울 지역 방 공제 금액은 5500만원, 서울을 제외한 경기·인천 과밀억제권역은 4800만원이다. 경기 지역에서 5억원짜리 아파트를 산다면 기존엔 디딤돌 대출로 가능했던 금액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70%를 적용한 3억5000만원이었지만 지금은 최우선 변제금 4800만원을 뺀 3억2000만원만 가능하다. 이번 규제는 아파트 값이 비싼 서울을 대신해 경기·인천 지역 아파트로 눈을 돌린 서민들에게 큰 영향을 줄 전망이다. 서울에는 디딤돌 대출이 가능한 5억원 이하 아파트가 많지 않아서다.
'분양'이라는 행운을 거머쥔 서민이 잔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아졌다. 방 공제와 함께 미등기 신축 아파트에 대한 잔금 대출(후취담보 대출)을 해주지 않게 했기 때문이다. 그간 준공을 앞둔 신축 아파트는 담보를 잡기 어려워 은행이 돈을 먼저 빌려주고 완공 후 소유권이 설정되면 담보로 바꾸는 대출이 이뤄졌다. 정부는 신축 아파트는 집단대출이 가능하니 문제가 없다고 보지만 디딤돌 대출로 잔금을 치르고 새집에 들어가려 했던 입주 예정자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주거 안정은 국가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다. 저출생 극복과 실업 문제 해소 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정부의 대출 규제는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디딤돌 대출 같은 정책금융으로 집을 마련하기 어려워지면 이자 부담이 큰 시중은행이나 제2금융권 대출을 알아볼 수밖에 없다. 디딤돌 대출 금리는 2~3%대인 반면 시중은행 주담대 금리는 4~5%대 수준이다. 늘어나는 가계대출과 집값을 잡겠다고 내놓은 규제들이 서민들로 하여금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을 접게 하는 것이다. 서민들만 곡소리 나게 하는 무조건적인 대출 옥죄기를 멈추고 실거주자 대출은 규제를 완화하는 등 유연한 대응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