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에서 반도체주가 또 휘청거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2% 넘게 동반 하락했다. 인공지능(AI) 투자 거품론은 걷혔지만 이번엔 미국 수출규제 리스크가 불거졌고,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분기 실적도 부진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반도체 업종의 위험 회피 심리가 다시 강해졌다.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1500원(2.46%) 하락한 5만9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SK하이닉스도 4200원(2.18%) 내린 18만8700원을 기록했다. 한미반도체(-2.95%), 미래산업(-2.98%), 신성이엔지(-1.56%), 디아이(-0.87%), 케이씨텍(-1.28%) 등 장비주들도 함께 약세를 나타냈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삼성전자 순매도는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외국인들은 지난 9월 3일부터 이날까지 26거래일 연속 매도 우위로 삼성전자를 거래했다. 이 기간 동안 외국인의 삼성전자 순매도 규모는 11조원을 넘었고 삼성전자 주가는 7만2500원에서 17.93% 떨어졌다.
직전 최장 순매도 기록은 2022년 3월 25일부터 4월 28일까지 25거래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글로벌 공급망이 교란되고 물가가 급등했을 때였다.
이날 코스피 지수도 전 거래일 대비 23.09포인트(0.88%) 내린 2610.36에 마감했다. 시가총액 1·2위 반도체 대형주 하락으로 국내 증시 회복에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증권가에선 이번 반도체 악재가 증시에서 일시적 조정으로 소화될 수 있는 성격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가 업황에 미칠 영향은 절대적으로 크지 않고 AI 투자 관련 반도체 수요는 여전히 클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황준호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AI 반도체 자체 수요는 미국 내에서도 이미 공급을 압도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어 정부 당국의 수출 쿼터 조치 영향력은 다소 제한될 것"이라며 "또한 AI 기술 최전선에 있는 빅테크 기업들이 AI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AI 및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지속해 한동안 AI 반도체 수요가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도체 대형주를 고객사로 둔 밸류체인 업체들 실적도 반도체 장비 업체 위주로 개선될 전망이다.
박상욱 신영증권 연구원도 "올해 하반기는 일부 D램 생산능력 증설과 낸드 전환 투자가 예정돼 있어 부진했던 장비 업체들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며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자본 지출 투자가 내년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장비업체 실적 개선 속도가 소재·부품 업체들보다 가파를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