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앉아서 관람하세요.”
최근 찾은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의 ‘인투더 리듬: 스코어로부터 접촉지대로’에 전시된 손윤원의 작품 ‘음표’는 대뜸 관람객들에게 '작품에 앉을 것'을 권했다.
‘음표’는 누구든지 앉을 수 있는 바닥이다. 의자가 아닌 바닥이기 때문에 작품에 앉을 수 있는 사람 수의 제한은 없다. 서로가 엉덩이를 얼마나 바짝 대느냐에 따라서 앉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달라질 것이다. 손윤원은 사적 공간이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닌, 누군가의 침입과 공존 그리고 개입에 노출돼 '함께 있는' 중첩된 공간이란 것을 전하기 위해 모듈 바닥재를 활용했다.
‘음표’는 관람객들에게 강렬한 환대의 메시지를 전한다. 헤드셋을 통해 들려오는 비트 섞인 아기 옹알이는 국경을 초월한다. 한국인이든, 스위스인이든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이 옹알이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 사람들에게 속삭이고, 몸과 몸이 연결된 사람 형상의 조각들은 접촉을 통한 상호작용을 생각하게 한다.
‘음표’가 보여주듯 ‘인투더 리듬: 스코어로부터 접촉지대로’는 미술관을 ‘접촉하는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활동하는 비영리 기관 온큐레이팅과 아르코미술관의 협력기획전인 이 전시는 다양한 사람들의 만남과 행위, 그리고 상황이 펼쳐지는 접촉의 장으로서 미술관을 재해석한다.
전시장 곳곳에는 작가 듀오 나탈리 슈틸니만과 슈테판 스토야노비치가 제작한 모듈러 가구들이 설치돼 있다. 관람객들은 전시 도중 이 가구에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가구들 주변에는 온큐레이팅의 프로젝트 ‘도래하는 공동체를 위한 작은 프로젝트’의 스코어(음악, 시 등에 사용되는 일종의 가이드) 지시문이 있는데, 이 지시문들은 관람객들이 적극적인 행위자가 되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예컨대 스코어 지시문은 ‘A와 B는 서로에게 편안한 거리를 두고 마주한다→A는 B에게 60초 동안 미소 짓는다→B는 A와 60초간 눈을 맞춘다’는 식이다. 관람객들은 이 지시문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수행하며 각자의 리듬을 만든다. 미술관이 만남과 접촉, 상호교류가 이뤄지는 장소로 바뀌는 것이다.
전시장에는 1960년대 초 등장한 예술운동이자 그룹인 ‘플럭서스’ 구성원들의 인터뷰 등이 담긴 영상 시리즈 ‘플러스 어스 나우’도 상영된다.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전통적인 예술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은 곧 삶’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이와 관련해 도로시 리히터 온큐레이팅 큐레이터는 지난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예술 담론이 크게 변화한 것은 1960년 백남준 등이 참여한 플럭서스 운동부터다”라며 “플럭서스란 조직은 ‘일상생활이 회화 작품 대신 예술이 될 수 없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모아서 교류, 협상, 토론을 하게 할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을 나눴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3일까지다. 입장료는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