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의 역사의 교차로에서] 악성루머의 희생양? …마리 앙트와네트와 김 여사

2024-07-25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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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서지문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마리 앙트와네트가 나의 의식 속에 깊이 꽂힌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린이 문학전집 속 <소공녀>의 한 대목에 기인한다. 나는 그때 이미 <분홍꽃> 등 작품을 읽어서 프랑스혁명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소공녀>에서 여주인공인 새라는 7살부터 인도에서 사업하는 아버지와 헤어져서 혼자 영국 기숙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1살 때 아버지가 파산하고 돌아가시자 그녀를 공주님처럼 떠받들던 기숙학교 교장이 그녀를 어린 학생들 공부를 봐주는 보조교사 겸 하녀로 부리면서 춥고 어두운 다락방에서 살게 한다. 늘 춥고 허기진 새라는 교장의 터무니없는 횡포에 비참해지려고 할 때마다 '마리 앙트와네트도 감옥에 갇혔을 때 가장 왕비다웠다잖아?'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다잡는다. 박해와 굴욕 속에서 더욱 품위 있었다는 왕비의 상(像)은 나의 마음에도 하나의 등대가 되었다.

마리 앙트와네트(1745~1783)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자녀 열여섯 명 중 열다섯째였던 막내딸로 어려서는 예쁘고 명랑한 소녀였는데 열네 살 때 정략결혼으로 열다섯 살의 프랑스의 왕세자 루이(후에 루이 16세)와 결혼하면서 오만가지 시련에 빠지게 된다. 그녀의 친정인 합스부르크가(家)가 프랑스와 오랜 라이벌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국민은 그녀에게 적대적이었고 적국의 스파이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그녀는 국경을 넘을 때 친정에서 입고 온 의상을 모두 벗고 안고 온 강아지도 빼앗겼다. 궁정에서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는 악의적인 눈초리가 따라다녔다. 남편은 선량하기는 했지만 소심했고 성적으로 미성숙해서 그녀는 7년 동안 임신을 하지 못해서 온갖 입방아에 오르내렸고 왕비의 지위마저 불안했다. 그리고 그녀와 아무 상관없는 목걸이 사건 때문에 악성 루머의 주인공이 되어 국민적 혐오의 표적이 된다. 결국 그 사기극의 원흉은 밝혀지지만 악성 루머는 그녀를 놓아주고 싶어하지 않았다.

자기 편이 한 명도 없는 낯선 궁전에서 외롭고 무료하고 허전했던 마리는 도박에 빠지게 되고 거액의 도박 빚을 지게 된다. 또 화려함의 극치인 베르사유궁에서 왕비로서 의상 사치는 필수였지만 의상비도 상당 부분 그녀의 개인 빚이 되었다. 몇 대에 걸친 왕실의 사치와 전쟁 비용에 허덕이던 프랑스가 미국 독립까지 빚으로 지원을 하자 프랑스 민중은 극심한 기아에 허덕이게 된다. 설상가상 심한 흉년마저 드니 아사 위기의 민중은 반란을 일으키고 베르사유궁으로 진격한다.

2년가량을 연금 상태에 있던 왕가가 해외 도피에 실패하고 나서 왕이 처형된 후 마리는 허약한 몸으로 콩시에르주 구치소에 갇혀 병고에 시달리는데 혁명법정은 그녀에게 외국과 내통했다는 등 여러 허황된 죄목을 씌우고, 심지어 그녀의 일곱 살 난 아들을 겁박해서 어머니와 근친상간했다는 자백을 받아내서 음난죄로 마리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마리는 모든 것을 견뎠으나 근친상간에 대해서만은 그 자리의 여인들에게 ‘모든 어머니들에게 호소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호소하고 그 자리의 모든 여인들은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리고 단두대에서 처형되기 전 마리는 아들이 겁박을 당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을 안다고, 아들에게 어머니가 용서한다는 말을 꼭 전해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은 불행 속에서야 겨우 자기가 누군지를 알게 되는 듯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연초에 국민의힘 김경률 비상대책위원이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트와네트에 비유했을 때 나는 그가 마리 앙트와네트를 함부로 격하하는 데 대해 분개했다. 아직도 마리 앙트와네트에 대해 그런 원시적인 편견을 표출하다니! 사치와 이기심의 표본으로 들먹이는 무식한 사람이 있다니! 사람들은 수백 년 전 인물에 대해서도 악성 루머에 집착하는 모양이다.

사실, 김건희 여사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 너무나 이질적인 존재여서 난감한 심정이었다. 생머리를 기른 10대 소녀 같은 외모나 20대 모델 같은 체격에다 제복 같아 보이는 의상 등이 대통령의 일상을 보살피는 내조자의 이미지와는 너무나 맞지 않았다. 그리고 그도 국민과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국민의 품에 완전히 안긴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김 여사의 그 같은 이질감은 더욱 아쉬웠다.

김 여사는 그 같은 자신의 이질성에 대해 어떤 생각이었을까? 그것은 자신이 50년간 구축한 개성이므로 포기할 수도 없고 수정하려야 가능하지도 않고 끝까지 사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아무리 수정하고 국민에게 다가가려고 해도 간극이 너무 멀고 국민이 호의적인 격려를 보내주지 않을 터이니 상처만 입고 말 것이라고? 사실 나 역시 김건희 여사가 아무리 필사적인 각오로 노력한다 해도 국민이 기대하는 퍼스트 레이디가 되기는 불가능할 것이므로 윤 대통령 임기 동안 그저 되도록이면 조용히 지내 주기만을 바랐다. 퍼스트 레이디가 ‘조용히’ 지내려면 얼마나 소외감을 느낄까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아니나 본인이 퍼스트 레이디 되기를 원치 않았는데 된 것도 아닌 듯해서, 나는 고민을 해도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터이니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 김건희 여사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게 명품백에 대해 사과하는 문제를 의논했지만 무시를 당했다는 보도를 보고, 또 최재영이라는 '목사'에게 400여 통의 문자로 전방위 공략을 당한 것을 알고, 그리고 큰 마음 먹고 검찰 조사를 받고도 그토록 많은 물의와 반감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정말 심난하다. 윤 대통령 임기는 아직도 거의 3년이 남았는데 김 여사 문제로 이토록 나라가 흔들리고 시달려야만 하겠는가? 여러 시각을 망라한 퍼스트 레이디 자문위원회라도 구성해서 김 여사의 활동을 제한도 하고 보좌도 하게 하고 더 이상 김 여사 문제로 국력을 소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영문학과 학사 ▷미국 웨스트조지아대학 영문학 석사 ▷뉴욕 주립대학 영문학 박사 ▷1974년 이래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 ▷현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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