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불편한 동거를 시작했다. 경쟁사인 두 회사가 오픈AI의 이사회 회의에 함께 앉게 된 것이다. 오픈AI를 등에 업고 AI 혁신을 주도해 온 MS 입장에서는 애플-오픈AI 밀착이 반가울 리 없다.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애플 앱스토어의 수장 필 실러(64)가 오픈AI 이사회에 의결권 없는 참관인(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하기로 했다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실러는 연말부터 옵서버 자격을 얻게 될 예정이다. 옵서버는 이사회에서 의결권이 없으나, 각종 이사회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이에 따라 실러는 오픈AI의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참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요 사안에서 애플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게 됐다.
실러는 스티브 잡스가 복귀한 1997년부터 애플에서 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신제품 출시 등 주요 애플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 왔을 뿐만 아니라, 미국 바이오기술업체 일루미나에서 이사로 활동하는 등 애플 안팎에서 주요 역할을 맡고 있다. 애플 입장을 대표할 적임자라는 평이다.
문제는 MS 역시 오픈AI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디 템플턴 MS 부사장은 올해 초부터 오픈AI 이사회에서 옵서버로 활동하고 있다. 두 거대 기업이 오픈AI에 구애 작업을 펼친 결과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 셈이다.
그간 대주주로서 직간접적으로 오픈AI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MS로서는 애플과 동등한 위치에 앉는 것이 달갑지 않다. 더구나 MS는 오픈AI와의 관계 덕에 AI 혁신의 선두에 설 수 있었다. 올해 초 MS가 애플을 앞지르고 세계 시가총액 1위에 등극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더구나 이사회 회의가 상대 회사의 기밀 정보에 침투할 수 있는 '트로이 목마'로 변질될 수도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오랜 경쟁자였던 MS와 애플이 이사회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오픈AI의 일부 이사회 회의에서는 오픈AI와 MS 간 AI 이니셔티브가 논의될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는 애플과 오픈AI 간 파트너십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바 있다. 미 정보통신(IT) 전문매체 디 인포메이션은 지난 5월 나델라 CEO가 올트먼 CEO와 따로 만나, 오픈AI의 기술을 애플 제품에 탑재할 경우 MS의 구상에 해가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고 보도했다.
이로 인해 MS는 주요 논의에서 애플 관계자를 배제할 것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옵서버는 민감한 사안과 관련한 회의에서는 도중에 퇴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반대의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오픈AI의 AI 기술이 대거 접목된 아이폰 등 차기 애플 기기들이 연말께 출시 예정이다. 애플 역시 이와 관련한 주요 회의에서 MS 측의 동석을 거부할 수 있는 셈이다.
오픈AI가 애플에 이사회 문을 연 배경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MS는 오픈AI에 약 130억 달러를 투자한 대주주로서 이사회에 입김을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알려진 계약 내용에 따르면 MS는 투자금을 회수할 때까지 오픈AI 수익의 약 절반을 가져갈 권한이 있다.
반면 MS와 달리 애플은 오픈AI에 투자하지 않았다. 대신 오픈AI는 애플과의 협력을 통해 수억명의 사용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만큼, 애플에 옵서버 자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 고객 접근성을 위해 애플 제품에 자사의 프로그램을 탑재하기 원하는 AI 기업들은 많다. 애플은 오픈AI 외에도 구글, 앤스로픽 등과도 협력을 논의 중이다. 또한 중국 출시용 기기를 위해 바이두, 알리바바 등과도 물밑 작업이 이뤄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오픈AI 이사진으로는 올트먼 CEO를 비롯해 피지 시모 인스타카트 CEO, 수 데스몬드 헬만 전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CEO, 니콜 셀리그만 전 소니 엔터테인먼트 사장,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부 장관, 아담 디안젤로 쿼라 CEO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