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각부는 지난달 '2023년도 일본 경제 리포트'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는 2024년 1월 24일까지 입수된 자료에 기반하여 일본 경제의 현황과 과제를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보고서는 일본 정부가 일본 경제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최근 일본 주식시장이 연일 고공 행진을 하면서 일본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 보고서는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러한 이유를 근거로 일본 정부는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는지를 판단하는 데 매우 신중한 자세를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번 필자의 칼럼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임금 인상의 실태, 인건비 등의 적절한 가격 전가, 물가 상승세의 산업 전반으로의 확대 추이, 기대인플레이션률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는 자세이다. 이처럼 신중한 자세를 고려해 볼 때 일본 정부가 디플레이션 탈출을 선언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완화적인 정책이 당분간 더 지속될 가능성이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일본의 잠재성장률 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노동 공급의 부족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음을 우려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으로 노동시간을 늘릴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2010년대 들어 노동력 부족 문제를 여성과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를 통해 극복하려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만으로는 일본 경제의 성장 기반을 확충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일본 정부는 인식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동력 부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일본 정부는 이제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라고 보고 있다. 일본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노동력의 확보가 필요하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2008년에는 인구 규모가 정점을 찍고 2011년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매년 연속적으로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감소 폭은 더 커지고 있다. 경제성장과 사회의 정상적인 작동을 위해 노동력 확보가 절실해지고 있다. 인구 감소에 대비한 일본의 대책은 주로 고령자와 여성 인력의 활용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이러한 대책은 이미 오래전부터 추진되었고 이는 단순히 경제 대책만이 아니라 고령화 대책의 일환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내각부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노동시간 확대를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노동자의 ‘머릿수’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늘리기를 얼마나 희망하는지, 그리고 노동시간 증가를 방해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조사한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노동시간을 늘리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노동자의 약 4%에 해당하는 280만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47.7%는 ‘여성 단시간 노동자’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남성 정규직 노동자가 20.4%(57만명)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정규직 사원으로서 본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추가적으로 부업을 하여 소득을 올리고 싶어한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추가적인 노동 공급이라도 실현시켜서 경제사회의 성장과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이를 저해하는 요인을 찾아서 제거하고자 한다. 가장 큰 저해 요인은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의 근무제도가 부업 등 추가적인 노동을 제약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이제 하나의 회사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부업을 용인하도록 근로제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의 방향을 틀고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부족한 노동 공급을 조금이라도 늘리고 이를 통해 경제의 성장 기반을 확충하고자 하는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의 소극적 투자 성향을 개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일본 기업은 잃어버린 30년이란 말이 무색하게 지난 30여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해 왔다. 일본기업의 경상이익은 1990년대 중반 5조엔 정도였으나 그 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23년에는 25조엔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설비투자는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10조~15조엔 수준에서 횡보하고 있다. 그 결과 일본의 기업 부문은 자금 부족 부문이 아니라 오히려 자금 잉여 부문으로 전락하였다. 벌어들인 수익은 해외 자회사 설립이나 M&A 등 해외 투자를 늘리는 데 사용하거나 자기자본을 증강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 결과 일본 국내 설비투자에는 소홀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일본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잠식하고 나아가 내수 기반을 잠식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일본 정부는 인식한다.
장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일본 기업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던 기반도 문제시되고 있다. 수익 창출은 기업의 연구개발을 통한 혁신, 그리고 이에 기반한 마크업 설정 능력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은 고정비나 변동비 등 비용을 줄임으로써 수익을 창출해 온 것이다. 종업원 인건비를 보면 1980년 약 80조엔에서 1997년 약 170조엔까지 급증했지만 그 이후 현재까지 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 보고서는 일본 기업의 국내 설비투자 확대의 여건은 크게 개선되었다고 본다. 기업의 재무 상태가 1990년대에 비해 크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자기자본비율은 40%를 초과하였고 유동성 비율도 20%를 넘어섰다. 그만큼 기업이 쓸 수 있는 자금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일본은행 단칸 고용인원판단 DI, 생산·영업용설비판단DI 모두 역사적으로 보아도 부족감이 강한 상황에 있다. 기업들이 노동력이나 설비의 부족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다만 일본 경제의 향후 실질성장 전망에 대한 확신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 걸림돌이 된다. 특히 비제조업의 설비투자는 내수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제조업은 수출산업이라서 내수가 침체되더라도 영향을 덜 받지만 비제조업은 내수산업이라서 내수에 대한 전망에 따라 설비투자가 좌우된다.
일본의 자본시장은 내외의 자금 유입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러한 자본시장의 활황이 앞으로도 지속되기 위해서는 기업의 설비투자 및 연구개발 투자 확대, 이에 기반한 마크업 설정 능력 제고, 임금 인상, 내수 확대, 노동력 확보 및 생산성 증강 등 실물경제의 제반 과제를 극복하는 것이 필요함을 이 보고서는 확인해 준다.
정성춘 선임연구위원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