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의 그게 이렇지요] 어쩌다 우리 정치에 품격이 실종됐나

2024-02-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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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논설고문
[이재호 논설고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얼굴에 숯 검댕이 묻었다. 설 연휴 직전인 8일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저소득층 가구에 연탄 2000장을 배달하면서 묻은 것이다. 공유된 영상을 보면 일부 당직자들이 장난 삼아 한 위원장 얼굴에 검댕을 묻혔고, 미처 피하지 못한 한 위원장이 파안대소하는 모습이 나온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이 이를 문제 삼았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위원장의 옷은 멀쩡한데 대체 왜 얼굴에만 검댕이 묻었나”라면서 “연탄 화장? 연탄 나르기마저 정치적 쇼를 위한 장식으로 이용한 것 아니냐”는 글을 올렸다.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즉각 반박했다. “하다하다 ‘연탄 정치 쇼’라는 주장까지 나온다”며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한 위원장의 프로야구 롯데 경기 관람 여부도 논란이 됐다. 한 위원장이 부산고검으로 좌천됐을 때(2020년 1월∽2020년 6월) 사직구장에서 롯데 경기를 봤다고 말하지만 거짓말이라는 거다. 당시엔 코로나로 프로야구를 무관중으로 치를 때였다는 것. 한 위원장이 자신과 부산의 인연을 과시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거다. 한 위원장은 인증샷까지 올렸지만 이 사진조차도 2008년 부산지검에 근무할 때 찍은 거라는 주장이 나와 또 시끄러웠다.

한없이 작아진 한국 정치
 
어쩌다가 우리 정치가 이렇게 작아졌을까.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K-팝과 K-방산을 앞세운 문화‧군사대국이라지만 정치는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허구한 날 가십거리도 안 되는 하찮은 사안을 놓고 티격태격한다. 최근엔 ‘운동권과 검찰 중 누가 더 룸살롱에 자주 갔느냐’를 놓고 논쟁을 벌일 정도다. 깃털처럼 가벼운 한국 정치의 기저에 도사리고 있는 건 혐오다. 상대가 그냥 싫고 미운 거다. 정치가 한국 사회에 주어진 시대적 과제 해결에 어떤 적실성(relevance)을 가지려면 이런 혐오의 벽부터 넘어서야 한다.
 
나는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우리 정치를 좀 더 근사하고 멋진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뭘까. 총체적인 시대의 흐름에서 본다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일 것이다. 이른바 1987년 체제가 들어서면서 민주화는 그런대로 이뤄졌고, 민주주의도 더는 타는 목마름의 대상이 아닌 것처럼 돼버렸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민주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근 최장집(고려대 명예교수)의 역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19년 개정 2판 12쇄)를 다시 읽었다. 2002년 초판이 나온 이래 일관되게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천착해온 그의 고뇌가 담겨 있는 책이다. 결론 부분에서 한 구절 인용한다. IMF 금융위기로 시장 근본주의적인 정책(신자유주의)이 더욱 급진적으로 취해졌다며 그가 한 지적이다.

우리의 민주주의, 뭘 위해 기능하나

“···민주화 이후 절차적 수준에서의 민주화와 발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와는 다른 차원이라 할 사회경제적 수준에서 민주화는 퇴보했고, 현재도 계속 퇴보하고 있다는 걸 말하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특징으로서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 민주화, 절차적 민주화, 실질적 민주주의가 서로 역진적으로 전개되는 경향을 나타낸 거라고 할 수 있다. ···분명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계급 구조와 사회 분열을 완화하는 체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는 무엇을 위해 기능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먼저 답해야 하는 건 역시 민주당이다. 어찌됐든 민주당이 이 땅의 민주화에 큰 역할을 한 건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화 때문에 고초를 겪었고, 대개는 이를 계기로 정치권에 들어와 30년 넘게 굴곡진 한국 민주주의 현장을 지켜본 사람들이다. 물론 오늘의 민주당을 김영삼·김대중으로 이어져온 전통 또는 정통 민주당과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있느냐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사법 리스크로 얼룩진 당대표의 존재부터가 그렇다. 그럼에도 한국 민주주의를 얘기하면서 민주당을 뒷전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영국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Colin Crouch)는 2005년 ‘포스트 민주주의(Post Democracy)'라는 저서를 냈다. 한국에선 2008년 ‘민주주의 시대의 종말’이라는 부제와 함께 번역·출판됐다.(옮김이 이한, 미지북스) 갈등이론으로 유명한 독일 사회학자 랄프 다렌도르프(Ralf Dahrendorf)는 이 책 추천사에서 “크라우치는 제3의 길 옹호자가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대안인 자유 민주주의와 평등주의적 민주주의 중에서 단호히 후자(평등주의적 민주주의)를 를 택한다”고 소개한 바 있다.

새로운 정치계급의 배태?
 
크라우치는 “다국적 기업의 정치적 중요성이 커지고, 갈수록 수동적이 되어가는 노동자계급의 쇠락 속에서 기업들의 정치고문과 로비스트들로 이뤄진 새로운 정치계급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고 본다. 이로 인해 정부의 경제적 행위가 왜곡되고, 신자유주의자들이 신봉하는 시장이 부패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의 주장은 유럽처럼 사회민주주의 뿌리가 강한 곳에서는 맞을지 몰라도 한국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민주화 인사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혹여 민주화 내부에서 이미 새로운 정치계급이 배태되고 그들이 깊숙이 기득권화됐거나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민주당의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어느 쪽인가. 자유주의 지향인가, 평등주의 지향인가. 윤석열 정부가 자유주의적이라는 건 알겠는데 민주당은? 노무현·문재인 정권을 경험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진보적 색채가 강해지기는 했어도 평균적으로는 중도 보수 정도로 봐야 한다는 인식도 있다. 맞는가? 이 밖에도 민주당이 분명하게 답해야 할 사안들은 많다. 이를 통해 당의 정체성은 물론 집권 비전까지도 보여줘야 한다. 그건 부담이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혐오정치는 自害 행위
 
그럼에도 들리는 건 혐오로 가득 찬 막말과 냉소, 조롱뿐이다. 사안의 경중과, 투쟁의 경중이 크게 다른 경우도 많다. 자원봉사를 나온 상대 당 대표를 보고 얼굴에 숯 검댕을 일부러 묻히지 않았냐고 할 정도면 할 말 다한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건 일종의 자해(自害)다. 품격까지는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건전한 민주시민의 일원으로 사안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최소한의 교양인 수준에 맞게 이를 표출하는 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그렇다고 여권의 공세에 ‘대응’이라도 제대로 하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난 7일 한 위원장은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검사 독재가 있었다면 이재명 대표는 감옥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지자들 중엔 “역시, 한동훈!”이라며 카타르시스를 느꼈겠지만 사실관계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말이다. 검찰은 분명히 배임, 위증교사, 뇌물 등 혐의로 이 대표를 ‘감옥’에 보내려고 했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해 이뤄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검찰독재가 아니어서 감옥에 안 간 것처럼 말한다면 사실을 호도하는 거다. 그의 말이 설령 상징적인 언급이었다고 해도 민주당은 마땅히 이 점을 지적하고 넘어갔어야 했다.
 
최장집은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최선의 경로를 이렇게 제시한다. “자신의 지지기반을 견고히 하면서도 넓은 인적·지적 자원들을 동원하는 데 성공하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광범위한 사회적 기반 위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적인 것이 곧 유능한 시스템을 만들며, 유능한 시스템이 다시 민주주의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는 인과적 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당 또는 운동권은 지금 그런 경로를 구축 중인가.
 
무능함이 권위주의를 불러서야
 
그는 경고한다. “한국 현실에서는 민주정부의 무능력이 권위주의적 내지는 엘리트주의적 경향을 강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은 훨씬 크고 직접적이다.” 이런 섬뜩한 경고 앞에서도 계속해서 지엽말단적인 가십거리로 상대 당과 티격태격하기나 하고, 막말이나 할 건가. 상대에 대한 혐오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막말 대신 비전과 정책, 능력, 그리고 이성적이고 품격 있는 대화로, 민주와 이후의 착하고 유능한 민주주의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 다시 ‘폐족(廢族)’의 시대로 돌아갈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올해는 글로벌 슈퍼 선거의 해다. 세계 65개국에서 대선, 총선 등 각급 선거가 치러진다. 유권자만 42억명으로 세계 인구의 절반이다. 일찍이 전후 30여 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룸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던 대한민국, 그러나 그 한 축이었던 민주화 세력이 청산의 대상으로 몰리고 있는 오늘, 우리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한국과 세계에 어떤 성찰을 줄 것인가. 공천 경쟁이 끝나고 총선의 본 막이 오르고 있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정치학 박사 ▷동아일보 정치부장 ▷동아일보 논설실장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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