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대리전'이라고도 불린 13일(이하 현지시간) 대만 16대 총통 선거에서 대만인은 친미·반중 성향의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를 선택했다. 이로써 민진당은 1996년 대만 총통 직선제 시행 이래 처음으로 3회 연속 선거에서 승리하며 12년 연속 집권에 성공하게 됐다.
하지만 '여소야대' 국면 타파, 양안(중국 본토와 대만) 갈등 등 라이 당선자 앞에 놓인 과제도 산더미다. 특히 중국 정부로부터 '양안 평화 파괴자'라는 비난을 받는 라이칭더의 당선으로 양안 관계의 경색 국면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12년 연속 집권 승리한 민진당···'여소야대' 돌파 난국
제1 야당인 친중 성향의 중국국민당(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가 467만1000표(33.49%), 제2 야당인 중도 성향의 민중당 커원저 후보는 369만표(26.46%)를 기록했다.
하지만 라이 당선자의 득표 수는 앞서 2020년 대선에서 57.13%라는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된 현 차이잉원 총통의 득표 수(817만231표)에 훨씬 못 미쳤다. 이날 대선 투표율은 71.86%로, 2020년 15대 대선(74.9%)보다 낮았다.
민진당은 3회 연속 대선에서 승리하며 집권을 연장했으나, 입법위원 선거에선 고배를 마셨다. 전체 113석 중 과반에 못 미치는 51석 확보에 그친 것. 반면 국민당이 52석, 민중당이 8석을 따내며 '여소야대' 정국이 불가피해졌다. 차이 총통 국정 기간 낮은 임금, 높은 집값 등 국내 문제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정치적 균형과 견제를 요구하는 민심이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민진당으로선 야당과 정치적으로 협력·소통하지 않으면 각종 개혁과 법안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라이 당선자는 이날 당선 후 기자회견에서 입법위원 선거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유능한 정부와 효율적인 견제와 균형을 바라는 인민의 기대를 이해했다”고 전했다.
中, 대만 전방위 압박···조국 통일 준비 '속도'
사실 스스로를 '실용적인 대만독립운동가'라 일컬어 온 라이 당선자는 차이 총통보다 더 강력한 친미·반중 노선을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라이 당선자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만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총통으로서의 중요한 사명"이라며 중국과의 대화·교류·협력을 전개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지만, 동시에 "중국의 문화 공세와 무력 위협에 맞서 대만을 수호할 각오가 있다"고도 했다. 그가 차이 총통의 '현상 유지' 정책을 이어간다 하더라도 양안 간 갈등이 확산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 선거 직전까지도 중국 정부는 라이 당선자가 양안 대립을 촉발하는 위험 인물이라는 점을 인식해 대만인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압박하며 군사·경제적 위협 수위를 높여왔다.
중국 정부는 이날 밤에도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 명의 성명을 발표해 "선거 결과는 민진당이 주류 민의를 대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대만은 중국의 대만이다. 조국이 필연적으로 통일될 것이란 대세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중국은 향후 외교·경제·군사 방면에서 대만에 압박 전술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이미 선거 직전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 따라 대만산 농수산물, 기계류, 자동차 부품, 섬유 등에 대해 적용한 관세 감면 혜택을 추가 중단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대만 중앙연구원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하는 김진호 단국대 교수는 본지에 "현재로선 중국의 공세로 양안 긴장감이 고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오는 2027년 21차 당대회에서 집권 연장을 시도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본다면 중국이 전쟁보단 평화를 우선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그간 조국 통일에 대한 의지를 수차례 천명해 온 시진핑 주석으로선 장기적으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강화하고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는 등 대만과의 통일을 위한 준비 작업에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다.
미·중 관계 '시험대'···韓 지정학 리스크↑
일각에선 교육·문화 등 분야에서 양안 교류를 촉구했던 국민당과 민중당이 의회 과반을 확보한 만큼 이것이 양안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도 본다. 장춘하오 대만 둥하이대 정치학자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향후 본토 학생과 관광객에 대한 제한을 완화하는 등 중국 본토와의 교류를 촉진하는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 대만사무판공실도 "대만의 관련 정당, 단체 및 각계 인사와 양안 교류 협력을 촉진해 양안 관계의 평화 발전과 조국 통일이라는 대업을 추진할 것"이라며 국민당·민중당 등 야당·민간단체와의 교류 협력 의사를 내비쳤다.
미·중 대리전이라 불렸던 이번 대만 대선에서 친미 정권이 승리한 만큼, 대만에 대한 중국의 공세가 한층 거세지면 미·중 관계가 악화할 가능성도 크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 정상회담 이후 미·중 양국의 관계 안정을 위한 노력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진 않겠지만 전략적 패권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면서 지정학적 리스크도 상승할 수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의 공조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 한국도 대만 문제에 관여하며 중국과 갈등을 빚는 상황이다. 14일 외교부는 이번 대만 대선 결과에 대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고 양안(중국·대만) 관계가 평화적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진호 교수는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대만해협에 대한 현상 유지 전략을 한층 더 구체화할 것"이라며 "인태 전략에는 암묵적으로 대만도 포함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미국의 의도대로 한·미·일 협력이 한층 강화하면서 미국은 한국도 여기에 따르길 바랄 것"이라며 한·중 관계의 긴장 국면 속 지정학적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