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최대 정보통신기술(ICT)·엔지니어링 기업인 지멘스가 세계 최대 기술 전시회 CES 2024에서 인공지능(AI)과 ‘산업 메타버스’를 결합한 미래 제조업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HD현대에 이어 미국·일본 대표 기업인 아마존·소니와 파트너십을 맺기로 했다. 제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을 넘어 전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기술 플랫폼이 되겠다는 지멘스의 야심을 엿볼 수 있다.
롤랜드 부시 지멘스그룹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 기조연설(키노트)에서 "지멘스는 AI를 적극 활용한 산업 메타버스를 다른 기업에 제공해 이들이 실시간으로 협력하며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회장은 이날 '산업 기술에 대한 미래와 지멘스의 비전, 산업 메타버스와 AI의 확산'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산업 메타버스를 현실화하기 위해 지멘스는 '플레이스테이션 VR' 등을 만들며 가상현실(VR) 헤드셋 분야에서 노하우를 쌓은 소니와 협력한다. 지멘스의 산업용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엑스셀러레이터(Xcelerator)'와 소니의 VR 플랫폼을 결합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 솔루션을 올 하반기 출시할 계획이다. 여기에 4K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를 갖춘 VR 헤드셋을 활용해 산업 메타버스에 있는 다양한 사물·건물과 직관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게 지멘스와 소니의 목표다.
부시 회장은 "산업 메타버스가 현실화하면 설계자와 엔지니어가 시공간 제약을 뛰어넘는 몰입형 작업 공간에서 함께 3차원(3D) 설계도를 만들고, 엔지니어링 공정상 문제점을 찾고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멘스는 엔지니어들이 산업 메타버스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생성 AI를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아마존의 클라우드 자회사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산업 메타버스에서 생성 AI를 빠르고 쉽게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의 파트너십을 맺었다. 지멘스의 산업 메타버스에는 AWS의 생성 AI 플랫폼 '아마존 베드록'이 통합돼 개발자들은 클릭 몇 번만 하면 산업 메타버스에 초거대언어모델(LLM)을 포함한 다양한 생성 AI를 추가할 수 있다.
부시 회장은 산업 메타버스에 생성 AI를 결합한 사례로 공장 작업자가 데이터·매뉴얼 등을 현실에서 수동으로 찾지 않고 AI에 요청하면 자동으로 관련 내용을 요약하고 시각화하는 것을 꼽았다. 그는 "엔지니어가 프로그래밍 지식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본인 전문성만으로 산업 메타버스용 앱을 만드는 게 최종 목표"라고 했다. 이어 "이것이 현실화하면 숙련된 노동자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업 메타버스를 현실화하기 위해 지멘스는 전 세계 주요 기업과 전방위적인 협력을 맺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HD현대와 스마트조선소 구축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양사는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선박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든 데이터를 하나의 플랫폼에서 관리하는 디지털 자동화 생산체계를 만들 계획이다. 공정 간 데이터 단절로 인한 비효율성을 없애고, 엔지니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부시 회장 기조연설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참석해 경청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CES에 참석한 최 회장은 "들어보고 싶어서 왔다"며 행사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다만 지멘스와 협력을 공고히 한 HD현대와 달리 SK그룹의 산업 메타버스 관련 파트너십 체결 여부는 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