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국민에게 행한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이 재판권을 갖는다는 항소심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청구액 전부가 받아들여졌다.
서울고법 민사33부(구회근 부장판사)는 23일 이용수 할머니와 고(故) 곽예남·김복동 할머니 유족 등 15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각하로 판단한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의 청구 금액을 전부 인정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지난 2021년 1심은 주권 국가인 일본 등의 외국 행위에 관해서는 다른 국가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국가면제(주권면제)' 원칙이 적용된다는 이유로 소송을 각하했다.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같은 취지로 제기한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김정곤 부장판사)가 같은 해 1월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한 것과 대비되는 판결이었다.
반면 2심은 국가면제가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취지로 1심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외국의 행위 중 비주권적 행위에 관하여는 국가면제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제한적 면제의 법리로 점차 변경·발전돼 왔다"며 이탈리아 법원, 브라질 최고재판소, 우크라이나 대법원 판결 등에서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이어 "법정지국 영토 내에서 그 법정지국 국민에 대해 발생한 불법행위"는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2심은 일본이 전쟁 중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행한 행위가 대한민국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전쟁 중 군인들의 사기 진작 등을 목적으로 위안소를 설치·운영하면서, 당시 10, 20대에 불과했던 이 사건 피해자들을 기망·유인하거나 강제로 납치해 위안부로 동원했다"고 판시했다.
원고들에 대해서도 "이 사건 피해자들은 최소한의 자유조차 억압당한 채 매일 수십명의 피고 군인들로부터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당했고, 그 결과 무수한 상해를 입거나 임신·죽음의 위험까지 감수하여야 했으며, 종전 이후에도 정상적인 범주의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없는 손해를 입었다"고 판단했다.
이 할머니는 이날 휠체어를 탄 채 선고를 듣고 나오면서 팔 벌려 만세를 외쳤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 감사하다. 정말 감사하다. 하늘에 계신 할머니들도 내가 모시고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서울고법은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 관습법의 동향을 면밀히 분석·파악해 법정지국 영토 내에서 그 법정지국 국민에 대해 발생한 불법행위에 관한 국가면제 인정 여부를 구체적으로 밝혔다"고 판결 의의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