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세수 결손과 국고채 발행 여건 악화로 단기자금 유치 수단인 기획재정부의 재정증권 발행과 한국은행으로부터의 일시 차입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내년에도 이어질 공산이 큰데 소비자 대출금리 상승과 한은 통화긴축 기조에 악영향을 미칠 요인이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정부 재정증권 누적 발행액은 총 44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매주 1조원씩 발행하던 재정증권을 지난 5월부터는 1조5000억원 규모로 확대했다. 재정증권은 국고금 출납 과정에서 생기는 일시적 자금 부족을 충당하기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단기 유가증권이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세수 부족이 이어질 전망이라 재정증권 발행 역시 적어도 올해 수준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최근 발간한 2024년도 예산안 분석 보고서를 통해 내년 국세가 361조4000억원 걷힐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의 내년도 국세수입 전망치(367조4000억원)보다 6조원 적은 수준이다.
문제는 발행금리까지 우상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해 상반기 1%대였던 발행금리는 금리 인상 여파 속 올 들어 3% 중후반대까지 치솟았다. 이자비용 역시 지난달까지 총 2747억원 발생해 최근 9년 평균치(684억원)보다 4배가량 급증했다.
이자 부담 외에도 재정증권 발행 증가는 채권시장 수급 불안정으로 이어져 단기자금시장에 타격을 주고 금리 상방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금융권 대출금리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세수 부족 후폭풍은 한은으로부터의 일시차입금 증가세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부가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처럼 활용하는 계좌다. 한은이 국회에 제출한 '대정부 일시대출금 내역'에 따르면 올해 1~9월 정부가 한은에서 빌려간 누적 금액은 총 113조6000억원이다. 지난해 전체 누적 대출액(34조2000억원)의 3.32배 규모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첫해를 맞아 정부 지출이 컸던 2020년 연간 대출액(102조9130억원)보다도 크다.
이와 관련해 지난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정부의 과도한 차입이 통화 안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원들의 질타가 잇따랐다. 차입금 확대가 유동성 증가를 야기해 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리다. 고물가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한은이 물가 상승을 부채질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가 한은을 '사금고'처럼 여기는 행태도 바람직하지 않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흠집을 낼 수 있는 탓이다.
다만 이창용 한은 총재는 논란과 관련해 명확히 선을 긋지 않는 모습이다. 이 총재는 "일시차입금 제도에 장단점이 있다"며 "저희(한은) 입장에서 세수가 한 달 뒤 들어오기 때문에 지금 쓰겠다고 하면 제지하기가 어려운 만큼 국회에서 한도를 정해줘야 할 문제"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