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고객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파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제품 개발, 마케팅 계획 수립, 유통망 등 사업 전반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보는 대개 설문조사를 통해 얻는데, 최근에는 고객 행동 데이터에 대한 심층분석까지 더해지는 추세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은 웹과 모바일 중심의 온라인 마케팅조사 전문기업이다. 1998년 설립한 이래 온라인 조사를 전면에 내세우며 성장해 왔다. 특히 무작위 대상에게 설문하는 방식이 아닌, 사전에 설문 참여를 약속한 사람(패널)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하는 만큼 불성실 응답도 상대적으로 적다.
창립 25주년을 맞은 엠브레인은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딥데이터'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기업이 기존의 고객 접점만으로는 알 수 없는 심층 정보를 통해 인사이트를 얻고, 기업에 이를 제시하는 마케팅 기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다음은 최 대표와 일문일답.
-전공이 마크로밀 엠브레인과 관련이 있나.
"연세대에서 통계학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박사후 연구원까지 마친 뒤 창업했다. 수학을 좋아하는데, 문과에서도 수학을 가장 많이 다루는 곳이 통계학이다. 마케팅조사 역시 통계 분야다. 전공부터 직업까지 거의 40년을 종사했다."
-특별한 창업 계기가 있나.
"감동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교수를 하기 위해 공부를 계속했지만, 생각처럼 잘 안됐다. 1997년에는 삼성SDS에 합격했는데, 국제통화기금(IMF) 관련 사태가 터지면서 출근 일주일을 앞두고 신규 채용 동결 통보를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후배가 창업을 제안했다. 당시에는 생소한 온라인 마케팅조사로 창업해, 이 분야의 강자가 됐다. 창업 2년 만에 '온라인 리서치'를 검색해 보니 50여개 기업이 나왔는데, 현재까지 살아남은 곳은 우리뿐이다.
이 업계는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고객사를 두고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우리는 학교에서 바로 시작해 시장도 고객사도 몰랐다. 무모했다. 인터넷도 막 보급되던 시기라 사업 초기에는 온라인보다는 오프라인 조사와 컨설팅으로 회사를 먹여 살리기에 바빴다."
-온라인 조사 사업을 25년간 이어온 경쟁력은.
"우리 경쟁력은 170만명에 이르는 패널이다. 현재 한국에서 자체 패널을 통해 온라인 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는 우리밖에 없다. 최근에는 모바일기기의 성능이 좋아지고, 사용 환경도 개선되면서 모바일을 통한 설문조사 비중도 크게 높아졌다."
-사업을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관련 업계 최초로 주식시장에 상장한 2020년 7월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힘든 시기를 거쳤지만, 삼보컴퓨터나 일본 마크로밀에서 투자를 받으며 성장했다. 상장은 창업 당시부터 꿈꿔왔는데, 이때가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 있는 순간이었다.
다른 회사처럼 오프라인 기반 조사를 중심으로 했다면 상장이나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온라인 패널이 우리의 핵심 강점이며, 특히 비대면 기조가 강하던 코로나19 시기 회사가 빠르게 성장했다."
-기념비적이라 할 만한 설문조사 결과는 무엇인가.
"과거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전 시장과 나경원 전 후보가 경쟁했을 때 정확하게 예측한 바 있다. 당시 우리는 처음으로 집 전화와 휴대전화를 섞어서 조사하면서 정확도를 높였다. 시간대에 따라 집 전화와 휴대전화 사용자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국회의원 선거에도 적용했는데, 예측이 뒤집히는 등 많은 조사 업체가 틀린 정보를 우리는 아주 근사한 수치로 맞혔다. 우리가 이 방식을 선보인 이후 많은 기업이 같은 방식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엠브레인은 정기적으로 재미있는 조사를 자체 진행해 발표한다. 최근 조사에서 발견한 새로운 동향이 있다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는 유행과 동향을 전문적으로 조사해, 콘텐츠로 만든다. 예를 들면 세대별로 유튜브 동영상을 '빨리 감기'로 보는 비율이나, MZ세대가 오픈런에 뛰어드는 이유 등을 분석했다. 지난 2010년부터 시작해, 지금은 책 15권을 낼 정도로 많은 조사를 했다.
최근 보이는 동향은 20대가 세분화된 점이다. 과거에는 20대라고 하면 일률적인 동향이 나타났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20대라도 성별·지역·부모 소득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나이가 같아도 서로 다른 세대처럼 느껴진다."
-최근 많은 기업이 고객을 이해하고자 자체 솔루션을 개발하고, 인공지능(AI) 같은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변화하는 마케팅조사 시장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아무리 기업이 고객 데이터를 모은다고 하더라도, 자체적으로 알 수 있는 데이터는 한계가 있다.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샀는지는 알 수 있지만, 고객의 충성도나 제품 선택 이유 등은 알기 어렵다. 고객관계관리(CRM) 솔루션으로 자사 고객을 파악하더라도, 경쟁사 고객에 대한 정보는 알 수 없다. 때문에 마케팅조사 시장의 성장은 더뎌지겠지만, 여전히 비용효율적인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는 마케팅 솔루션 기업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과거에는 고객 기업의 의뢰를 중심으로 조사했다면, 이제는 먼저 소비자를 분석해 기업별로 인사이트를 제시하기 위해 '데이터 테크놀로지' 기업이 되자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엠브레인의 데이터 테크놀로지 전략을 소개해 달라.
"최근 빅데이터라는 표현을 굉장히 많이 쓰고 있다. 예를 들어 한 통신사가 갖춘 2000만 고객의 통신 이용 행태가 빅데이터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유형의 빅데이터는 각종 웹 사이트에서 무작위로 크롤링해 수집한 정보다. 기업이 갖춘 빅데이터 문제는 자신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의 행동 정보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크롤링으로 수집한 정보는 정제되지 않아서 누구에게서 나온 정보인지 알기 어렵다.
반면 우리는 패널을 대상으로 행동 정보를 수집한다. 이들이 어떤 제품을 사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이른바 딥데이터다. 우리는 이를 행동 주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아는 데이터라고 정의한다. 사용자를 굉장히 깊게 들여다볼 수 있어, 기업이 마케팅 의사결정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수집하나.
"스마트폰 앱이 대표적이다. 사용자가 우리 앱을 설치하고 정보 수집에 동의하면 이후 스마트폰 사용량, 카드 승인 문자 메시지, 위치 정보 등을 파악한다. 특히 와이파이 신호를 함께 사용하면 같은 건물 안에서 몇 층에 있는 어떤 매장에 들어갔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기존 설문조사는 특정 주제 관련 태도에 대해 답을 얻는 방식이라면, 이제는 행동의 이유를 분석할 수 있다.
기업은 이러한 정보로 고객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지점을 찾아 광고를 집행하는 등 중요한 마케팅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정보 수집에 참여한 사용자에게는 보상도 제공한다. 우리 사업은 사용자 정보를 분석해 기업에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사용자에게는 보상을 주는 형태다. 이런 방식은 기존 기업은 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는 마케팅조사 기업이 커나갈 수 있는 기점이 될 것이다."
-향후 25년 계획은 무엇인가.
"앞으로 25년 후 우리 회사의 목표는 고객 기업이 성공할 수 있는 컨설팅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인사이트를 끊임없이 제공하고, 마케팅뿐 아니라 광고 분야에서도 모든 전략이 성공하도록 돕는 파트너가 되려 한다.
지난 1998년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던 온라인 조사로 무모하게 창업했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성장하며 시장 변화를 일으켰다. 앞으로도 딥데이터를 통해 시장을 키우고 회사를 성장시키는 선구자적 역할을 하고 싶다."
<최인수 대표는>
△연세대 응용통계학 졸업 △KAIST 대학원 산업공학 박사 △1998년 한국패널리서치 창업 △2017년 한국조사협회 회장사·회장 취임 △2000년 엠브레인으로 사명 변경 △2021년 마크로밀 그룹 편입·마크로밀 엠브레인으로 사명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