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측 경고에는 관심이 없다. 북한을 포함한 이웃 국가와 관계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 측 경고가 아닌 양국 이익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앞둔 가운데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2일(현지시간) “필요하다면 우리는 북한 동무들과 유엔 대북 제재에 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며 이처럼 말했다. 국제사회 눈치를 보지 않고 양국이 적극 공조하겠다는 의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북·러 관계에 순풍을 몰고 왔다. 2013년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추가 대북 결의안을 채택한 후 두 나라는 긴장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서방 측 제재로 설 곳을 잃은 러시아가 고립국 북한에 손을 내밀면서 양국이 주요 파트너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무기 거래가 최우선···고립 러 "최선이자 유일한 선택"
지난해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서방의 제재는 러시아를 궁지로 몰았다. '동아줄'로 생각했던 중국은 러시아의 침략 전쟁을 지원한다는 국제사회 비판으로 인해 무기 지원에 소극적인 데다 과도한 중국 의존도는 러시아에도 부담이다. 신흥·개도국으로 눈을 돌렸지만 아프리카연합(AU) 의장국인 코모로의 아잘리 아쑤마니 대통령이 정전을 강조하는 등 이마저도 쉽지 않다. 러시아가 ‘핵 불량국’으로 낙인찍힌 북한과 밀착에 나선 이유다.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는 정상회담에서 북·러 간 무기 거래가 최우선 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하며 이번 정상회담이 북·러 협력 관계에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양국은 미국이란 '공공의 적'을 공유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와 재정 지원, 대러시아 제재를 통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아울러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위협에 맞서 한·미·일 공조에 나섰다. 최근 개최된 한·미·일 정상회담은 북한과 러시아 모두에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더구나 러시아는 탄약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가 지난해 획득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유지하려면 올해 남은 기간 700만발 이상 탄약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에 따르면 러시아는 올해 약 250만발을 생산할 예정이며 이는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러시아가 손을 내밀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북한이 유일하다. 존 파이너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은 북한에서 무기를 구입하는 것이 전쟁을 계속하려는 러시아로서는 “최선이자 유일한 선택”이라고 평했다. 더구나 북한 탄약은 과거 소련의 설계를 기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러시아 무기와 호환이 가능하다.
북한으로서도 손해 보지 않는 장사다. 무기를 공급하는 대가로 식량 지원과 위성발사 기술 등 첨단 기술을 획득할 수 있는 데다 북한 노동자를 러시아로 보내 외화 소득도 창출할 수 있다.
김 위원장 수행단 면면을 봐도 북한 측 의도가 드러난다. 군부 서열 1위인 리병철 당비서(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와 2위인 박정천 군정지도부장이 동행한 것은 이번 정상회담이 군사 협력에 초점이 맞춰질 것임을 방증한다. 과학·경제를 담당하는 오수용 당비서와 과학·교육 담당인 박태성 당비서도 동행하는 만큼 위성 등 과학 분야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 러 지지 간절
북·러가 경제 분야에서 협력할 가능성도 있다. 유엔은 지난해 12월 러시아가 대북 원유 수출을 2년 만에 재개한 것을 확인했다. 북한 고려항공은 지난달 평양~블라디보스토크 구간 항공편 운항을 3년 반 만에 재개했다.국제무대에서 우군을 확보하는 의미도 있다. 북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러시아를 전폭 지지했다.
그간 국제무대에서 고립된 북한도 러시아 측 지지가 간절하다. 지난해 5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뒤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대북 제재 강화를 위한 결의안이 상정됐지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해 부결됐다. 안보리에서 표결을 통해 대북 제재 결의안이 부결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