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인 미만 상시근로자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시행을 5개월 앞두고 작업중지 미이행과 관련한 처벌 사례가 등장하면서 현장에서는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기존 판례와 달리 책임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해 현장과 괴리된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고 법조계는 설명한다. 사법부가 형사상 '자기책임 원칙'에 맞는 일관성 있는 판례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창원지법 마산지원은 최근 만덕건설 하청 노동자가 지난해 5월 작업장으로 이동하던 중 굴착기와 담장에 머리 부분이 끼이면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대표이사 A씨에게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인에도 벌금 5000만원을 선고했다.
"대응조치 매뉴얼 '응급조치' 성격···대표 처벌 과하다"
현장과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응조치 매뉴얼 조항은 긴급위험 발생 시 피해 확대를 막기 위한 '응급조치' 성격인데 이를 위반했다고 중처법상 주요 의무 위반으로 해석한다면 경영자에 대한 책임 범위가 너무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관련기사
영세 사업장은 인적·물적 자원이 부족해 작업중지 요청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 말이다. 작업중지 요청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근로자가 즉시 작업을 중단하고 대피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지방 소재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매뉴얼이 설사 있더라도 관리자가 아닌 근로자가 현장에서 작업을 중단하라고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사업장 규모가 영세할수록 더욱 그렇다"면서 "공사 금액에 따라 영세 사업자라도 사실상 중처법 적용 대상이라고 봐야 하는데 비슷한 판결이 나온다면 현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인적·물적 자원 부족한 '50인 미만' 어쩌나···法 판결 일관돼야"
노동 전문가는 사법부가 중소기업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판결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강한수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도 "몇몇 1군 대기업 원청 건설사들은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겠다고 하지만 사실상 하청이 주가 되는 현장에서는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강 위원장은 "건설경기 악화로 인해 위험 상황에서 적극적인 작업중지를 요구하는 것도 어려워진 상황인데 이에 대해 중처법으로 법적 책임을 물린다는 것은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내년 1월 관련 시스템을 마련할 자원이 부족한 50인 미만 사업장도 중처법 대상에 오르게 된다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기 책임 원칙이라는 형사 책임의 대원칙을 준수하면서 일관성 있는 판례를 확립해 법적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유해 위험 요인에 대한 확인과 개선 절차를 제대로 마련했느냐는 관점에서 위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면서 "대응조치 위반으로 결과를 막지 못한 점에 대해 책임을 물으면 형사 책임 원칙에 반할 수 있다. 일관된 판결 기조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