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법원장 후보자로 이균용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61·사법연수원 16기)가 지명되면서 사법부 제도와 사법행정에 전향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심각한 사건 적체와 법관들의 잇단 퇴직 등 사법부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비판을 해소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뚜렷한 소신' 유명...김명수‧권순일 등 작심 비판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사법부 내 대표적인 '보수 정통' 법관으로 평가된다. 1990년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한 후 전국 법원에서 줄곧 재판업무에만 종사했다. 두 차례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남부지법원장, 대전고법원장,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이 후보자는 오랜 재판 경험을 토대로 법관의 공정성을 강조하는 '정통파'이면서 '뚜렷한 소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 논란'과 권순일 전 대법관의 '50억 클럽'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거짓말 논란이 불거진 시점 이 후보자는 2021년 2월 대전고등법원장 취임식에서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며 "재판 권위와 신뢰가 무너져 참담하다"고 말했다. 50억 클럽에 대해서는 "당혹스럽기 이를 데가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 무죄 선고..."법원 모두 반성"
이 후보자는 2021년 서울고법에 있으면서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된 판사들(신광렬·조의연·성창호)에 대한 재판을 맡아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형사처벌과는 별개로 법원 모두가 반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또 2019년 고(故) 백남기 농민 사망 당시 집회에서 지휘를 소홀히 한 혐의로 기소된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뒤집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민중총궐기 집회의 안전을 관리해야 하는 총괄책임자에게 업무상 과실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대북교류를 정면 중단한 '5·24 조치'를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라고 인정, 대북사업 업체에 발생한 피해에 대해 정부가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법원의 첫 확정판결을 내린 것도 회자된다. 2005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 시절에는 법관들이 주로 사용하는 '징역 ○월' 대신 '징역 ○개월'이라는 표현을 썼다. 법률 문장은 국민들이 이해하기 쉬운 글이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법원 내 엘리트 연구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또 일본 게이오대 연수활동을 한 이력이 있다. 재경법원 한 판사는 "일본에 선진적인 법원 제도나 문화가 있으면 이를 우리 법원에 반영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재판 지연·판사 퇴직·정치적 사건 등 과제 산적
법원 내 해결 과제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형사‧민사를 불문하고 재판 지연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우려를 해소하는 것이다. 지난해 형사와 민사 모두 재판 처리 기간이 전년보다 크게 늘었다. 법원은 현재 대법관 증원, 상고심사제 도입 등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판사들의 잇단 퇴직도 문제다. 김 대법원장이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를 폐지하고 법원장 추천제를 도입하면서 고위 법관 승진을 꿈꾸는 판사들에게 유인 동력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경지법 판사는 "법관들이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와 명분이 사라진 게 크다"며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와 법원장 후보 추천제 도입 등에 따른 부작용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정치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들에 대한 판결이 나왔을 때 사법부 수장으로서 외풍을 잘 막아줘야 한다는 점도 주요 과제다. 4년 넘게 진행 중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건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의혹 사건은 이균용호 대법원 체제에서 마무리 될 가능성이 크다.
이밖에 항소심이 진행 중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 입시 비리 사건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여러 사건도 이 후보자 임기 내내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