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을 알 수 없는 인물이 나와 당사자의 동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불법촬영물이더라도 촬영 경위와 촬영물 수위 등을 바탕으로 당사자 의사를 판단해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5일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반포)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1·2심은 “사진상 남녀의 의사에 따라 촬영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진의 촬영대상자들, 적어도 여성이 위 사진의 반포에 동의하리라고는 도저히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 사건 사진은 남성이 여성의 동의 없이 성관계를 몰래 촬영한 동영상 중 일부를 캡처한 것”이라며 “촬영 각도, 남녀의 자세 및 시선 등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촬영대상자의 의사를 명확히 확인할 수 없는 경우 촬영물 내용 등을 토대로 의사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촬영 경위, 성적 욕망·수치심 유발 정도, 당사자 특정 가능성, 취득·배포 경위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해당 촬영물 등이 인터넷 등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유포될 경우 피해자에게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면서 "남성의 나신과 여성의 신체 일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성관계 직전 또는 직후를 암시하는 모습을 담고 있어 상당한 성적 욕망과 수치심이 유발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촬영대상자의 신원이 파악되지 않는 등의 사정으로 촬영대상자의 의사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경우,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해당 촬영물의 반포가 이루어졌는지 여부의 판단 방법을 최초로 설시했다"고 의의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