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의 중동워치] 첨단 '미래도시' 디자인 나선 중동

2023-05-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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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교수]


미래의 중동은 어떤 모습일지 예측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중동 아랍 사람들은 더 이상 낙타 타고 사막에 살지 않는다. 베두인이라 불리는 유목민들이 스스로 도시문명을 포기하고 오아시스를 배회하기는 하지만 주민 90% 이상이 이미 도시에 정주하는 삶을 선택했고, 대도시에서 첨단을 꿈꾸며 살아간다. 물론 어느 사회나 빈부 격차가 있고 시리아, 예멘, 리비아 등지에서는 내전 상황이 지속되고,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는 거의 매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촉발된 중동의 전쟁과 국가 간 갈등은 이미 국제사회의 이해관계 축소판이 된 지 오래라 쉽게 해결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이런 구조적 문제와 경쟁적 상호 관계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우선 가장 큰 변화는 미국이 더 이상 중동 원유에 의존하지 않는 세계 최대 에너지 패권국으로 부상한 점이다. 지난 100년 가까이 석유가 절대 국익으로 작동하는 시기에 미국은 이를 지키기 위해 거의 모든 중동 문제에 무분별하게 개입해 왔다. 두 차례 걸프전쟁을 촉발했고, 2001년부터 무려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과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치렀다. 2003년에는 국제법을 어기면서까지 거짓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아랍 민주화 이후 소용돌이 속에서 시리아와 예멘 내전에 깊숙이 개입했다. 상황이 바뀌자 미국은 재빨리 발을 빼기 시작했다. 이라크에서 철군하자 이 나라는 곧바로 반미 국가로 돌변해 버렸다. 같은 시아파인 이웃 이란과 연대하면서 전쟁 이전보다 더 강력한 반미 벨트가 형성되었다. 시리아에서 발을 빼면서 12년이나 끌었던 내전은 러시아의 완전한 승리로 끝이 났다.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몰락한 다른 아랍 지도자들과는 달리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예멘 내전에서 미국이 사우디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자 되살아난 후티 반군은 집권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에서도 2021년 8월 미국이 탈레반 정권과 오랜 평화협상을 마무리하고 전격적으로 철수를 완료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를 위한 협력 파트너로 미국이 선택한 탈레반 정권은 보란 듯이 무혈 집권에 성공했다.
 
그래도 미국에 중동은 여전히 중요한 지역이다. 미국이 떠난 공백을 그대로 러시아와 중국이 메꿔가는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군이 주둔하지 않은 중동에서 미국의 이익을 견고하게 지킬 수 있는 동맹은 이스라엘이 거의 유일하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24개의 적대적 이웃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행정부는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 대통령 시대에 와서도 중동 산유국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하고 경제·군사 동맹체를 만들어 놓고 중동을 관리하겠다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그 결과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수단, 이집트, 모로코 등이 이미 수교를 완료했고 오만, 쿠웨이트, 요르단, 카타르 등도 수교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이 외교관계를 맺음므로써 중동에는 완전히 새로운 냉전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국내 여론이 만만치 않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 수교 논의는 좀 더 성숙된 환경을 필요로 하겠지만 38세 젊은 실세인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이 밀어붙이는 '사우디 비전 2030'의 핵심 사업인 네옴 신도시 구상은 바로 이스라엘 접경지대에 두고 있다. 1000조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부을 예정인 미래 신도시를 이스라엘과의 안전 협력축 내에서 건설하겠다는 명확한 포부를 내비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때 미국 무기를 전체 수입의 약 35%까지 가져가면서 미국과 안보 협력에 올인하던 전략에서 안보 리스크를 줄이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 결과 가장 강력한 적대적 이웃이었던 이란과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2016년 사우디 동부의 시아파 지도자 처형에 항의한 이란 시민들이 테헤란의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을 공격하면서 촉발된 외교관계 단절 이후 7년 만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대신 사우디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최대 고객이 중국이다. 하루 175만배럴을 수입해 간다. 이란으로서도 미국의 혹독한 경제 제제 속에서 자국산 석유를 가장 많이 수입해 가는 중국의 요청을 거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으로서도 미·중 갈등의 심화 속에서 두 산유국인 사우디와 이란 사이를 화해시켜 안정적인 유가 체제를 고수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중국은 미국의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원유대금의 위안화 결제(페트로 위안) 문제를 적극적으로 관철하려 하고 있다. 금년 들어 중국은 사우디 국영은행에 첫 위안화(인민폐) 대출 협력에 이어 중국 국영 에너지기업인 중국해양석유(CNOOC)가 아랍에미리트산 LNG 6만5000톤을 위안화로 수입하는 거래를 성사시켰다. 중국은 오랫동안 중동산 에너지의 위안화 결제를 추진해 왔고, 이를 위해 2015년 상하이석유가스거래소(SHPGX)를 설립했지만 거래소에서는 그동안 달러화로 결제가 진행돼 왔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인민폐(위안화) 시장 금융점유율은 2.2% 정도라서 아직은 파급력이 미미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산유국인 사우디가 부분적이나마 위안화 결제를 시작했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이런 복잡한 국제질서 역학구도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의 외교 전략이 단연 돋보이는 이유다. 젊은 왕세자는 당분간 안보는 미국, 국제경제질서의 협력적 파트너는 중국, OPEC+ 카르텔 체제를 통해 에너지 협력은 러시아라는 삼각 다변화 외교전략을 유려하게 구사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 승리 이후 러시아의 영향력을 간파한 이스라엘도 이제는 적극적인 반러시아 정책을 펴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에 대항할 최고의 이스라엘제 요격 미사일인 아이언 돔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인상적이었다. 바로 이스라엘 코앞까지 진출한 러시아를 자극해서 이스라엘이 강제 점령하고 있는 비옥한 골란 고원이나 베카 계곡에 대한 이슈를 불리하게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에너지 파동이 이어지면서 유가 급등으로 아랍 산유국 경제 상황도 최상이다. 그들이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탈석유산업 구도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됐다. 탄소 제로나 ESG라는 글로벌 트렌드를 받아들이면서 미래형 첨단 도시를 누구보다 선도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홍해 북쪽 연안에 진행되는 네옴 스마트 도시 건설이다. 서울의 44배 규모(2만6500㎢)의 지구촌 최대 공사가 진행 중인데 170㎞에 달하는 직선형 미래 도시 '더 라인', 해상 산업단지 옥사곤, 산악 관광단지 트로제나 등을 건설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600만명이 거주할 최첨단 미래 스마트 도시는 친환경, 재생에너지, 엔터테인먼트, 관광, 교육 시설을 완비할 예정이며 총사업비는 1조 달러(약 1350조원)에 달한다. 1단계에만 3200억 달러로 도시 인프라와 정보기술(IT), 에너지 등 분야에서 광범위한 사업 기회가 열려 치열한 글로벌 수주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 밖에도 원전 부문에 약 100조원, 전체 GDP 대비 12.4%를 목표로 AI 부문에도 약 270조원의 예산을 집행 중이다.
 
금년은 1973년 삼환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 알울라-카이바 간 고속도로 공사를 시작으로 중동 건설시장에 진출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1970~1980년대 연인원 100만명 이상의 한국인 근로자들이 중동 건설·플랜트 시장에 진출하여 피땀으로 역내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 우리가 건설한 고속도로에 국산차가 질주하고 발전소, 정유소, 교량, 관공서 등을 건설해 오늘날 사우디인들의 삶을 살찌웠다. 우리가 지은 아파트에는 지금 한국산 냉장고와 에어컨, 텔레비전이 자리하고 휴대폰을 통해 K-드라마와 K-팝을 즐긴다. 약 5조원 규모인 사우디 화장품 시장에서 K-뷰티가 갈수록 인기를 끌고 있다. 최고의 한류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중동은 윤석열 정부에 황금의 기회를 가져다 주고 있다. 탈원전 정책에서 원전 수주로 정책 수정을 하면서 지난 3월 아랍에미리트를 다녀왔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방문도 피할 수 없는 국익의 한 축이 될 전망이다. 풍성한 자본이 돌고 한국 기업을 선호하는 1000조원 시장을 그냥 둘 국가 지도자가 어디 있겠는가. 정부는 진정으로 제2의 중동 붐을 준비해야 한다. 경제적 이득을 통해 국익에 도움을 주는 단기적인 성과를 넘어 중동 시장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데이터 축적, 상호 문화 교류, 이에 필요한 중장기적 인재 육성 등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우리의 최첨단 기술과 소중한 경제 발전 노하우, 교육을 통한 인재 혁신 경험 등을 공유하고 무엇보다 상호 문화 이해와 인문 지식을 공유하는 공공 외교나 실질적인 소프트파워 정책에도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1200년 전 신라에서 시작된 아랍과의 오랜 역사적·문화적 교류와 더불어 이슬람 문화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는 일도 중요하다. AI 시대를 움직이는 핵심 자산이 빅데이터이고 이를 해석하는 과학이 알고리즘일 것이다. 연산법인 알고리즘이란 학문을 인류에게 선사한 인물이 바로 알고리즈미(알콰리즈미)다. 9세기 바그다드 아카데미였던 ‘지혜의 집’이 배출한 이슬람 수학자였던 사실을 상기하면 중동 이슬람세계와 함께 AI 시대를 협력하는 것은 충분한 역사적 소명이 있는 셈이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한국튀르키예친선협회 사무총장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중앙아시아연구원(UNESCO-IICAS) 학술위원(한국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국내외 저서 9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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