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1년, 성과와 과제⑦] CEO 인선에서 금리 산정까지…'관치'로 혁신은 '뒷전'

2023-05-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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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난 1년 동안 금융권에서는 '관치(官治)'란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정부 출범 전까지만 해도 '자율경영'을 강조했지만, 금융권은 어느 때보다 노골적인 정부의 수장 인선 개입으로 몸살을 앓았다. 여기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금융권을 향해 '돈잔치', '약탈적 영업'이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금융권을 통째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정부의 부정적인 인식 속에 금융산업 발전과 금융혁신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검사 출신 금감원장 인선 시작으로 '관치' 노골화···민간 수장 인선에 직접 개입
현 정부가 금융권에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작년 하반기 '특수통' 출신이자 현직 대통령 사단으로 알려진 이복현 전 부장검사가 금융감독원장에 내정되면서부터다.

1999년 금감원 설립 이래 검찰 출신이 금융감독당국 수장으로 내정된 것은 처음이다. 임명 당시에도 논란과 우려가 분분했던 가운데,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쓰는 것뿐"이라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 금융권을 향한 정부와 당국의 개입은 한층 노골화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한금융그룹과 우리금융그룹, BNK금융그룹 등 국내 대형 금융지주사 수장들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던 작년 말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 시기를 전후해 금융권 수장 인선과 연임 적정성 등에 대해 잇단 발언을 쏟아내며 기존 최고경영자(CEO)들에 대한 퇴진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는 민간 금융회사 수장 인선에 대해 직접적인 발언을 꺼려오던 그간의 당국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행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이 31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금융당국-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 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금융당국·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특히 당시 연임에 도전 중이던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을 상대로 연일 고강도 발언을 이어가며 사퇴를 종용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원장은 당시 "당사자께서 현명한 판단을 내리실 것으로 생각한다"(작년 11월),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용퇴는 개인적으로 존경스럽다는 생각"(작년 12월)이라며 손 회장을 겨냥한 듯한 발언도 내놨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역시 금융위 상정 1년 6개월 만에 중징계가 결정된 라임사태 관련 CEO 책임을 언급하며 "본인이 어떻게 할지는 잘 알아서 생각해야 할 것"이라며 이 원장의 발언에 힘을 보탰다. 

이러한 정부 개입 속에 결국 5대금융지주 가운데 3곳의 회장이 교체됐다. 공석이 된 회장직에는 대부분 친정부 인사들이 내려왔다. 우리금융에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NH농협금융 회장에는 윤석열 대선캠프에 몸 담았던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선임됐다.

신한금융그룹 회장의 경우, 내부 출신인 진옥동 당시 신한은행장이 영전했지만 조용병 전 회장 역시 마지막 면접 당일까지만 해도 강력한 연임 의사와 미래 신한금융에 대한 경영구상을 밝혀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용퇴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금리 산정부터 상생금융 동참 압박까지···기준금리 상승 속 대출금리 인하 시장왜곡
금융권은 지난 1년간 금리인상기 예대금리차 확대로 최대 실적을 낸 것을 빌미로 '공공의 적'이 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올해 초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은행은 공공재"라며 "(사상 최대 실적으로) 돈 잔치를 벌였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이 원장 역시 "은행들이 약탈적 영업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은행권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은행권이 큰 경쟁 없이 돈을 벌어들이는 데에는 소수 대형은행들을 중심으로 한 '과점체제'가 원인을 제공한 만큼 이를 바꾸겠다고도 했다.

금융권을 향한 예대금리차 공시 강화를 넘어 대출금리 인하 압박도 지속됐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7월 "고객이 어려운데 은행이나 금융사는 돈을 많이 번다. 상식적으로 맞는지 의문"이라고 금융권 이자수익을 겨냥했다.

이 원장도 올해 초 "은행들이 가산금리 조정 등에 재량이 있다"면서 "순익 등에서 여력이 있는 만큼 과도한 금리 상승으로 인한 가계·기업의 부담이 큰 점을 살펴봐 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지난 3월에도 "고금리로 대출이자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은행들이 국민경제 일원으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처럼 당국 압박이 지속되자 은행권은 '상생금융'에 동참하겠다며 대출금리 인하 행렬에 나섰다. 그 여파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달아 올리는 상황에서도 은행 대출금리가 하락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시장이 왜곡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의 금리 개입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을 무력화시킨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결국,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정부 개입이 다소 과도하다는 측면에서 또다시 '관치' 논란으로 이어졌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울 판"···금융산업 발전 규제 완화·혁신금융 지원 뒷전
이처럼 정부가 지난 1년간 금융권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나서면서 현 정부 출범 시 예고돼 온 금산분리 완화, 자회사 출자범위 확대, 부수업무의 네거티브 전환 등의 규제완화 정책은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은행권을 향한 정부의 대출금리 인하 요구 역시 일부 금리 부담 완화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그 여파로 예금금리도 함께 낮춰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삼모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가 직접 문제를 제기한 '은행권의 과점체제 해소'를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도 여전히 미지수다. 현 은행권 과점체제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단행된 구조조정의 결과에 따른 것인 만큼, 은행업 문턱을 쉽사리 낮추기란 쉽지 않다.

당국은 은행권 내 혁신과 경쟁 유발을 도모하겠다며 '작은 은행'을 표방한 이른바 챌린저뱅크와 스몰라이선스 도입을 예고하기도 했으나, 최근 미국에서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인해 신중 모드로 선회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칫 미운털이 박힐 수 있는 만큼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규제 완화 요구나 제도 개선에 있어 제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금융업 자체를 하나의 큰 산업으로 인식하고 발전시키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해외 투자자들에게 국내 금융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피력하거나 국내 금융중심지를 활성화하려는 정책이 주효할 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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