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의 100투더퓨처] 젊음 뛰어넘는 '창조적 노인' 시대가 온다

2023-05-1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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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교수]


 

아직도 노화 현상이 누구나 어쩔 수 없이 돌이킬 수 없고 기능이 저하되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세상에 만연해 있다. 이러한 견해는 생물학적 차원의 판단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측면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어 미래장수사회에 암울한 장막을 드리게 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생물학적 개념과 다르게 노화가 다양하며 복원가능하고 적응적이며 보호적 현상으로 새롭게 주장되면서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논의에서 우선 거론되는 주제는 신체의 기능적 퇴화와 인지의 퇴행적 변화이다. 신체기능 문제는 과학과 의술의 발달로 다양한 방안이 개발되어 상당 부분 해결되어 가고 있다. 인지능 문제는 아직 명확한 해법이 없지만 가까운 장래에 적절한 방안이 개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쟁에서 가장 심각하게 제기되는 본질적 문제는 고령자의 창조성에 대한 의문이다.
기존의 노화개념은 창조적 능력을 대척적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창조는 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행위이지만 노화는 수동적이고 대응적인 행위에 그치기 때문에 고령자의 창조적 능력을 일반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령인이 보여주는 실제 사례를 보면 이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 고령의 나이에도 세계적으로 역사적인 업적을 이루어낸 사례를 몇 가지만 살펴보자. 독일 대문호 요한 볼프강 괴테는 명작 ‘파우스트’를 여든살이 넘어 완성하였고, 조지 버나드 쇼는 아흔이 넘어서 희곡을 썼고, 주세페 베르디는 여든살이 넘어서 오페라를 작곡하였고, 파블로 피카소는 아흔살이 넘어서도 그림붓을 놓지 않았다.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와 레비 스트로스는 백살 넘게 활발하게 연구한 철학자이다. 존 케네스 갈브레이드와 피터 드러커도 아흔 후반까지 활동한 경제학자들이며, 백살이 되어도 대기업을 직접 운영한 데비드 머독이 있다. 또한 백살의 나이에도 새로운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미국 NIH의 허버트 테이버와 같은 과학자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황희, 송시열, 허목, 강세황 등과 같이 여든살 넘어서도 정치를 이끌고 예술과 학문을 완성해 나간 분들이 있다. 최근에는 백살이 넘어서도 강연과 저술을 열심히 하는 김형석 교수와 같은 분과 학계의 원로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조완규 교수와 같은 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분들은 모두 백살에 가깝거나 이미 넘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창조적인 삶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분들은 특별한 사람인가?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부단한 열정과 집념 그리고 창조적 능동성이다. 평생 전공해 온 분야에서 완성을 추구하고 보다 더 발전적 방향으로 외연을 확대해나가는 집요한 노력을 계속하는 모습이 공통적인 특성이다. 연령과 전혀 상관없이 연령의 한계를 벗어나 자신의 능력을 항상 새롭게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령자의 창조적 능력이 새롭게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관점에서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정신심리학자인 코헨(Gene Cohen)은 고령자도 충분히 창의적 행동과 지적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노화를 질병으로 취급함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고령자에게 예술활동과 같은 창의적 활동을 독려함으로써 노화에 따른 질병의 예방에도 큰 효과가 있음을 규명하였다. 고령인이 얼마든지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고령자 당사자뿐 아니라 학계에도 고령인과 고령사회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신선한 희망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특히 그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에너지-질량방정식인 E=mC2 (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빛의 속도)를 모방하여 고령자의 창의성을 새로운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즉 창의성과 누적된 경험과의 관계를 정리하여 C=me2 (C는 창의성, m은 경험질량함수, e는 각각 내면적 정서적 경험과 외부적 사회적 경험)라는 창의성-경험방정식을 제안하였다. 창의력은 정서적 경험과 사회적 경험이 복합되어 서로 교차작용하였을 때 작동한다고 보여주면서 고령자의 누적된 경험이 창의력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즉 나이가 들수록 창의성이 저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증대될 수 있음을 밝혔다. 나아가 창의적 능력이 정서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노력을 통하여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나이든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잠재력과 창의력을 발굴할 수 있는 방안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코헨의 제안은 실제로 고령자들의 창의성을 증진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고령의 나이에도 비록 전문적인 업종에 종사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 온 일반인이더라도 창의적 활동을 새롭게 시작하면 얼마든지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낼 수 있음을 밝혀주었다. 미국의 한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일흔이 넘어 회화를 배우기 시작하여 백살이 넘도록 살면서 미국에 새로운 미술화풍을 이루어내어 ‘그랜마 모지스’로 사랑을 크게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옥희님이 아흔이 넘어 뇌경색 후 뒤늦게 회화를 배워 98세인 최근 개인전을 열었으며, 남궁전님은 아흔살에 사진촬영법을 습득하여 노을빛포토동우회라는 야외출사모임에 가입하여 95세에 히말라야를 가는 등 세계를 다니며 촬영한 사진들을 모아 백살이 된 최근 ‘백세의 반란’이라는 개인전을 열었다. 일본의 시바다 도요는 92살에 시를 배우기 시작하여 98세에 시집 ‘약해지지마’를 발간하여 전 세계적으로 15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 백세인이 되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더라도 평범한 일반인이 얼마든지 창의적인 일을 시작하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작하는 데 결코 늦는 법은 없다’는 삶의 진리가 노화를 극복하고 연령차별을 해결하는 원리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과거의 경험과 기억에 덧붙여서 창의적 활동을 시도하면 얼마든지 성과를 낼 수 있다. 우선적으로 고령자들에게 음악, 미술, 무용, 게임과 같은 예술적 활동을 독려하여 창의적 능력을 부양할 필요가 있다. 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미심쩍어했던 고령인의 창의적 소양이 얼마든지 개발될 수 있으며, 평생 삶에서 축적한 정서적 사회적 경험들이 창의성 개발에 상승효과를 가질 수 있다. 단순한 예술적 활동뿐 아니라 다양한 전문분야에서도 고령인의 참여를 독려하여 노화에 따른 자기보호 외부 거부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개방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을 증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장수사회가 단순수명증가사회가 아니고 창조적 노년의 시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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