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의 100투더퓨처] 기로에 선 장수사회, '팔딱팔딱꼴딱' or '시들시들꼴딱'

2023-02-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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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교수 ]


장수사회가 되면서 일반인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는 명제는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다가 자식들이나 주위에 신세 지지 않고 훌쩍 세상을 떠나느냐다. 초고령사회의 문제점으로 거론되는 병실 침대에 누워서 지내는 와상(臥牀) 환자가 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기원하는 마음이 무엇보다도 가득하다. 이러한 상태의 의존적 삶을 살게 되면 결국 인간으로서 존엄성도 사라지고 가족과 친지, 사회에 부담을 주게 되고 행복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장수사회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주민들의 건강수명을 극대화하여 생의 마지막까지 활력을 유지하는 일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지역사회가 총체적으로 나서야 한다.

현재 일본 최고 장수 지역으로 거론되는 나가노현은 주민들 생활패턴을 능동적으로 개선하여 이룬 인위적 장수의 대표적 지역으로 앞서 소개한 바 있다(본지 2022년 12월 8일자). 선구자적인 지도자의 선도로 시작한 주민 생활습관 개선은 과감하게 전통 식단을 바꾸고, 종래 무리하고 건강을 해치는 요건이 많은 노동습관 개혁을 단행하였고, 의료계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환자를 찾아가고 교육하였으며, 지역자치단체는 시민들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여 마침내 남녀 구분 없이 세계 최장수를 구가하는 지역을 이루었다. 이 지역사회가 장수 지역으로 도약하면서 특히 건강수명을 증대하기 위한 노력으로 주민들에게 홍보한 흥미로운 구호는 '핑핑코로리(ぴんぴんころり)로 갈 것인가, 넨넨코로리(ねんねんころり)로 갈 것인가'였다. 핑핑코로리의 ‘핑핑’은 ‘팔팔하다’는 의미의 행동 표현이고 ‘코로리’는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다. 반면 ‘넨넨’은 ‘자장자장’이라는 잠자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다. 따라서 핑핑코로리는 생의 마지막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죽는다는 의미로, 우리말로 표현해보면 '팔딱팔딱꼴딱'이다. 반면 넨넨코로리는 내내 누워서 생애 후반을 와상 환자로 시들시들하게 지내다가 죽는다는 의미로, 우리말로 옮겨보면 '시들시들꼴딱'이다. 나가노 지역에서는 주민들에게 바로 이러한 핑핑코로리를 선택할 것인가, 넨넨코로리를 선택할 것인가라는 명제를 던지면서 설득하여 건강하게 살다가 죽자는 건강수명 연장 운동에 주력하였다. 전형적으로 지역주민과 공동체가 선택하여 인위적 노력을 통해 장수사회를 함께 이룬 성공적 사례다.   
본격적이고 체계적으로 시작된 세계의 장수 지역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역학조사를 담당하던 벨기에 인구학자 미셸 풀랭(Michel Poulain) 박사는 장수도가 높은 지역을 지도에 파란 매직펜으로 표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장수촌에 대한 특집을 내기 위하여 참여하였던 내셔널지오그래픽 담당기자 댄 뷰트너(Dan Buetner)는 이러한 장수 지역을 블루존(Blue zone)이라고 명명하여 게재하였다. 이후 블루존은 세계적 장수 지역의 대명사가 되었다. 초기에 주목한 블루존은 일본 오키나와, 이탈리아 사르데냐, 미국 캘리포니아, 로마 린다, 코스타리카 니코야, 그리스 이카리아 지역이었다. 우리나라도 장수 지역으로 구곡순담(구례군·곡성군·순창군·담양군)이 타임지와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소개되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국제적 전문가들이 모여 논의하여 “장수공동체 순창선언”을 세계 최초로 선포하였다. 미국, 일본, 이탈리아, 벨기에 대표들과 구곡순담 자치단체장들이 공동 서명하였으며 지속 가능한 장수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 장수 요인을 상호 공유하고 장수문화를 창출하여 국제적으로 선도적이고 모범적인 장수공동체를 구축하자는 약속을 담았다.

장수 지역 조사를 마치고 돌아온 뷰트너 기자는 지역사회와 협조하여 건강장수사회를 지향한 ‘블루존 프로젝트’라고 부르는 시민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블루존 주민들의 건강 상태, 식생활, 환경, 생태, 문화 등에 대한 다양한 조사연구를 통하여 공통점을 도출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일반 주민들 생활습관을 그와 비슷하게 유도하는 대규모 지역사회 생활습관 개혁운동을 개발하였다. 자연스럽게 삶을 영위하고, 모든 활동을 막연하게 하지 말고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하기를 권장하였다. 식생활은 식물성 위주 식단으로 하고, 과식하지 말고, 저녁에는 와인 한두 잔 마시는 여유를 가지도록 하였다. 일상생활에서는 마음을 내려놓고 편하게 하고, 가족을 중시하며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신앙을 가지도록 권장하였다.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생활습관 개선이지만 주민들의 실천적 행동은 또 다른 문제다. 그래서 참여하는 주민들에게 행동강령을 정하여 실행 여부를 정기적으로 구체적인 점검을 하면서 독려하였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참여 주민들에게 암, 당뇨, 치매, 비만 등 제반 퇴행성 질환 발생이 줄어들고 흡연율이 감소하는 건강상 혜택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의료비가 저하되는 경제적인 뚜렷한 성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다른 지역에서도 크게 주목하게 되었고 이후 여러 도시로 파급되면서 확산되고 있다. 단순한 생활습관 개선만으로도 엄청난 건강수명 연장 효과를 보인 것이다.

장수 지역은 결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각종 사회 변동 요인에 따라 얼마든지 순위가 바뀌게 된다. 대표적 사례로 오키나와 장수의 몰락과 나가노 장수의 부상을 들 수 있다. 지역적 특수성이 사회적·환경적 변동 요인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며 지역주민들 생활패턴 역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장수촌을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부단하게 인위적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단순히 수명을 연장하는 '시들시들꼴딱' 사회보다 건강수명을 극대화한 '팔딱팔딱꼴딱' 사회의 구축은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에 의한 생활패턴 개선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개인의 건강은 물론 삶의 질까지 개선될 뿐 아니라 지역사회적으로는 의료적 부담이 줄어들고 활동성이 증대되어 사회적 발전이 가능한 저비용 장수사회 구축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이러한 건강장수사회는 결코 우리에게 피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능동적으로 선택하여 만들어 가야만 한다. 백세 시대를 맞아 우려되는 수많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지역사회가 함께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추진하여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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