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의 100투더퓨처] 100세 시대, '저비용장수사회'로 가는 길

2023-01-19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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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상철 교수]

막상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개인의 장수가 마냥 기쁘기만 한 일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우려도 증폭되어 간다. 격변하는 사회에서 핵가족화하면서 가족 간 유대의식도 약해질 뿐 아니라 노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생산력 감소와 사회적 혼란이 초래되어 결과적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해결하기 위한 고비용장수사회(高費用長壽社會)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인층이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이고 의존적인 계층이 아니라 생산적이고 자립적이며 사회 기여 계층으로서 역할을 담당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한 전제 조건은 노인층 개인의 적극적 참여 의지와 사회적 주체로서 책임의식의 회복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변화에 대한 도전이다. 나이듦이란 변화된 환경에서 보다 능동적인 노력을 통하여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의미를 적용하는 사회적 규범 체계를 만드는 일이 장수문화의 목표다. 장수문화의 핵심은 받는 자가 아닌 주는 자로,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 피동적 객체가 아닌 능동적 주체로서 노년 위상을 확립함에 있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고령인은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실천적 측면에서 달라져야 한다.
 
심리학자 에릭슨 부부(Erik & Joan Erikson)가 처음에는 인간심리 발달 과정을 8단계로 구분하고 마지막을 65세 이후 자아 확립과 실망의 단계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스웨덴 사회학자 라르스 토른스탐(Lars Tornstam)이 제안한 노년초월(Gerotranscendence)이라는 개념을 수용하여 80세 이후 삶에 퇴행적·소비적 이미지가 아닌 보다 포용적이고 이타적이며 우주에 순응하는 9단계를 추가하였다. 정신과 의사인 마크 아그로닌(Mark Agronin)은 저서 <노인은 없다(The End of Old Age)>에서 노년의 의미를 학자, 현자, 관리자, 창조자, 예지자로 정의하였다. 노년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장수인(長壽人)이라는 용어를 단순한 연령적·시간적 개념에서 인식할 것이 아니라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새로운 계층의 출현으로 인식하여야 할 시점이 되었다. 이러한 장수인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장수문화의 실천적 방향을 생각해 본다.
 
장수인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삶은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이라는 생물학적 당위의 산물이다. 노화라는 생물학적 현상도 죽음에 이르는 전 단계 과정이 아니라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단계의 일환이며, 죽음에 대한 저항적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생체 내 모든 조직들은 사용하지 않으면 위축되고 퇴행해 버리는 악순환에 빠져든다는 점을 인지하고 나이가 들수록 보다 활발하게 움직여야 한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삶의 주체는 나일 수밖에 없다. 남이 나를 대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장수인은 창조적 활동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세계적 문호, 작곡가, 예술가, 과학자들이 팔구 십 세가 넘어서도 젊은이 못지않은 창조력을 발휘하고 있다. 심리학자 진 코헨(Gene Cohen)은 저서 <창의적인 노년(The Creative Age)>에서 노년의 창의성을 아인슈타인의 방정식과 유사하게 C=me²으로 표현하였다. 창의력(C)은 삶의 경험 질량함수(m)와 내면의 정서적 경험과 외면의 사회적 경험(e²)을 곱한 값과 같다고 하였다. 지적 능력, 인지능력, 창조적 활동은 노력과 경험에 의하여 연령에 상관없이 증진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다만 노화의 특징이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성 저하에 있기 때문에 새로움을 찾기 위해서는 젊은이들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인정하여야 한다.
 
장수인들은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하여야 한다. 노인들을 일괄해서 사회적으로 차단하고 차별화하는 것은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장수인은 과거는 덮어버리고 새로운 날을 대비하는 기다림의 열정을 되살려야 한다. 인간이 추억에만 의지하고 살 수는 없다. 살아온 나날이 많았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도 상당히 남아 있음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는 바로 이러한 고령인들의 사회 참여를 원활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여야 하며, 필요하면 구제도를 혁파하고 정년이 없는 사회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장수문화를 성공적으로 이룬 사례로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가쓰(上勝) 마을이 있다. 65세 이상 고령인 비율이 50%를 넘고 인구 2000명에 불과한 벽촌 산간 마을에 원예지도사로 들어간 청년 요코이시 도모지(橫石知二)는 무력해져 있는 마을 노인들을 보고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고자 하였다. 그러다 요리 장식에 필요한 야생화와 나뭇잎을 채취하여 상업화하기로 하였다. 무관심과 야유를 받으며 겨우 4명으로 시작한 사업이 주민 200여 명이 참여하는 이로도리 마을회사로 크게 발전하여 가구당 연간 수익이 2억원 넘는 대표적인 부촌을 이루었다.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과감하게 고령인 상호 경쟁을 유도하고 인터넷 체제를 도입하여 칠팔 십대 노인들이 자유자재로 컴퓨터를 통하여 거래하게 하여 세계 최고령 인터넷 마을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마을 기금이 400억원을 넘고 고령인 의료비 지출이 가장 낮은 지역으로 발전한 마을이 되었으며 이제는 젊은이들이 역회귀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대응은 사회적·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의료보험 수요를 저감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사례는 고령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기만 하면 얼마든지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건강과 행복이 높은 삶의 질을 구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초고령사회의 장수문화란 연령적 노인문화라는 개념이 아니고 연령을 초월하여 구성원인 남녀노소 모두 함께 어우러져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건강하게 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관념 및 규범 체계로 새롭게 정의되어아 한다. 노인을 포함하여 누구나 건강 장수를 추구하며,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능동적 생활을 영위하기를 요구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고령자들이 당당하고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장수문화의 확립은 수혜 복지 우선인 고비용 장수사회가 아니라 주민의 적극적 참여에 의한 자강·자립·공생의 저비용 장수사회(低費用長壽社會)를 이루는 데 근간이 되어 미래 장수사회에 한줄기 밝은 희망을 줄 수 있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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