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은 '새 얼굴' 중에서도 시청자들에게 가장 좋은 반응을 끌어냈던 배우다. 극 중 학교 폭력 가해자인 '연진'(임지연 분)의 남편이자 가해자와 피해자의 갈림길에 선 복잡한 속내를 가진 인물 '하도영'을 연기했다. 첫 등장부터 시청자들의 마음을 홀린 정성일은 종영 후에도 뜨거운 반응을 이어가는 중. 아주경제는 최근 배우 정성일과 만나 '더 글로리'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일 인기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정말 많은 분이 알아봐 주셔서 신기하기도 하고요. 하하. 인스타그램도 해외 팬들이 많이 찾아와주셔서 '아, 정말 해외에서도 드라마 인기가 많았구나' 싶어요."
앞서 언급한 대로 '하도영'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갈림길에 선 인물이다. 다른 캐릭터들이 '동은'(송혜교 분)과 '연진'(임지연 분)의 편으로 입장이 구분되는 데 반해 '도영'은 마지막까지도 혼란을 겪기 때문이다.
'도영'은 감정을 누르고 정제하며 표현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연기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컸다.
"극 중 '도영'이 '내가 어떤 마음으로 참고 있는데'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그게 인물의 감정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일 거라고 보았어요. 연기할 때는 표현하지 못한다는 답답함이 있지만 드라마 말미 한꺼번에 터트리는 힘이 더욱 세질 거로 생각한 거죠. 그 순간을 위해서 기다렸어요."
"작가님께서 써주신 감정의 방향성을 빨리 파악하는 게 먼저였어요. '도영'은 상대에 따라 다른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감정을 드러내기도 해요. 상대방에 따라 감정 표현 수위를 조절했고 감독님과도 이 부분에 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다행히 표현하는 수위가 잘 맞아떨어져 결과적으로도 만족스럽게 표현된 것 같아요."
극 중 '도영'은 딸 '예솔'에게 강한 부성애를 느낀다. 시청자들은 완벽주의자인 '도영'이 '예솔'이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에 울컥했다.
"저도 아버지이기 때문에 '도영'의 마음을 이해해요. '예솔'의 나이쯤 키우다 보면 이미 내 아이와 같을 거예요. 저도 '키운 정' 쪽에 더욱 마음이 기울더라고요. 그러면 안 되지만 저도 저에게 '도영'의 상황을 대입해보았는데··· 마음이 더욱 확실하게 굳어졌죠. 완벽주의자적인 성향 때문에 그가 '예솔'을 품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저는 결국 '도영'도 한 생명 앞에서는 마음이 달라졌을 거라고 봐요. 아무리 완벽주의자라도 '예솔'의 아버지고, 그의 선택에 따른 결과니까요. '예솔'을 책임지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나이스한 개XX' 이는 '도영'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단정하고 젠틀한 태도 속 타인을 얕보거나 깔아뭉개는 태도가 있다는 걸 단적으로 표현한 정의다. 극 중 '혜정'(차주영 분)의 대사기도 한 '나이스한 개XX'은 온오프라인에서 유행어가 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얻기도 했다.
"'도영'은 어떤 인물일까? 빨리 파악하고 싶었고 대본에서 힌트를 얻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타인이 '도영'을 정의하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이 섰어요. '혜정'이 '재준'에게 '도영은 나이스한 개XX'라고 표현했고 강렬하게 마음에 꽂히더라고요. 왜 이런 평가를 받을까 생각해보았는데 운전기사에게 와인을 선물하는 신을 보고 느낌이 왔어요.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보는 이에 따라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는 태도였죠. 그의 몸에 배어있는 태도라고 봤어요."
"처음 삼각김밥을 거부했던 건 '동은'과 제 처지가 다르다는 생각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드라마 말미에 '도영'은 '동은'과 처지가 달랐을까요? 그 시점으로 돌아가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그의 길을 가보는 거죠. '도영' 스스로 답을 찾는 길 중 하나였을 거예요."
드라마 결말에 관한 생각도 털어놓았다. "극적으로는 통쾌한 복수일지 모르겠지만 '도영' 개인에게는 나락"이라는 해석이었다.
"극적으로는 재미있지만 '도영' 개인에게는 나락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시즌2가 공개되기 전 '가장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물은 도영'이라고 말했잖아요. 저는 이 결말이 '도영'에게 가장 끔찍한 최후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이유건, 그는 타인을 해쳤고 제정신으로 지낼 수 없을 거예요."
"무대 작업할 때는 나름대로 정해진 루틴이 있어요. 작품 분석과 캐릭터를 준비하는 과정이죠. 매체 연기를 몇 번 하다 보면 그 기본적인 루틴을 잊어버릴 때가 있어요. 그러다 보면 허투루 연기하게 되는 게 생기거든요. 연극 무대는 제게 공부와도 같아요. 공부하는 마음으로 가는 거죠. 미리 (차기작으로 연극을) 약속한 것도 있고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라고 하시는데 저는 그런 스타일은 또 아니어서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지금까지 하던 대로 그 템포대로 가고 싶어요. 천천히 오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