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최악의 취업난… '쿵이지'로 살아가는 중국 청년들

2023-03-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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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려고 공부했나" 中청년의 슬픈 자화상

경기불황에 일자리는 주는데···대졸자 '최고치'

中관영매체 '직업 귀천없다' 발언에 청년들 '발끈'

지난 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열린 한 채용박람회에 구직자들이 대거 몰렸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학벌은 성공을 위해 밟고 올라설 디딤돌이라 하는데, 나는 점차 거기서 내려올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고, 결국엔 장삼을 벗지 못한 쿵이지와와 다름없다는 걸 깨달았다."

"학교 다닐 때는 쿵이지를 비웃었는데, 오늘날 '장삼을 못 벗는 쿵이지'가 내 자신일 줄이야."

"내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면 마음 편히 공장에서 나사를 돌렸을 텐데···."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공부를 하는 바람에
···."


최근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성행하는 ‘쿵이지(孔乙己 공을기) 문학’의 예다. 중국 고용시장에 한파가 몰아친 가운데, 대학 졸업장에 얽매여 일자리를 고르는 눈만 높아져 취직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스스로를 중국 근현대 작가 루쉰(魯迅)의 소설 속 주인공 ‘쿵이지’에 빗대 자조하는 것이다. 

루쉰은 쿵이지를 통해 봉건사회의 악습인 과거시험에 목숨을 걸다가 몰락한 지식인이 밥벌이조차 하지 못하면서도 체면만 차리는 모습을 풍자했다. 쿵이지는 생계를 위해 도둑질까지 하면서도 선비 신분을 상징하는 낡은 장삼을 끝내 벗지 않았다. 중국 청년들은 고학력 졸업장의 굴레를 벗어 던지지 못하고 저임금 일자리를 거들떠보지 않는 스스로를 쿵이지에 빗대 무기력감을 느끼는 것이다. 

중국 젊은 세대의 모습을 잘 반영한 네이쥐안(內卷·질적 성장 없는 소모적인 경쟁), 탕핑(躺平·의욕을 잃고 드러눕다), 룬쉐(潤學·탈중국 연구)에 이어 쿵이지 문학까지. 경기 부진과 치열한 경쟁사회에 내몰린 중국 청년들의 무기력감과 불안감을 반영하는 신조어다. 최근 중국 관영매체까지 나서서 ‘쿵이지 문학’을 경계할 정도로 청년들의 고용 불안감은 심각하다.
 

루쉰 소설 '쿵이지'는 봉건사회의 악습인 과거시험에 목숨을 걸다가 몰락한 지식인이 밥벌이조차 하지 못하면서도 체면만 차리는 모습을 풍자했다. [사진=웨이보] 

경기불황에 일자리는 주는데···'최고치' 찍은 대졸자
중국 국무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고용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14차5개년 계획기간인 2021~2025년까지 15~24세 청년인구는 약 1억4000만명으로, 이 중 2422만명의 청년들이 취업 대기 상태에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실제 올해 2월 중국 청년(16~24세) 실업률은 18.1%로, 6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청년 5명 중 1명은 ‘백수’란 뜻이다.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청년 실업률(12.8%)을 웃돈다.

특히 대졸자 실업률은 더 심각하다. 국무원 보고서는 대졸자 실업률이 전체 청년 실업률의 1.4배에 달한다고 추산했을 정도다. 

실제 중국취업연구소(CIER)와 구직사이트 자오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대졸자 1명에 대해 구인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구인배율은 0.57로, 2021년 1.24, 2020년 1.38보다 훨씬 낮았다. 1이하로 내려갈수록 취업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올해 대졸자 수도 1158만명으로,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구직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중국 천년실업률 및 대졸자 수 동향[아주경제DB]

"이러려고 공부했나" 中청년의 슬픈 자화상
지난 13일 리창 중국 신임 총리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나온 10개 질문에도 청년 고용 문제가 포함됐을 정도로 여론의 관심도 뜨겁다. 리 총리는 고용대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취업은 민생의 근본으로, 취업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 방법은 경제 성장에 기대는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대내외 불확실성 속 중국 경제 성장세가 예전만 못하다. 올해 목표성장률도 역대 최저치인 5% 안팎으로 잡은 배경이다. 

코로나19 충격으로 경제 성장세가 위축된 데다가, 중국 정부가 인터넷, 부동산, 교육 등 방면에서 각종 규제 단속을 강화하면서 경영난에 빠진 기업들은 일자리를 늘리기는커녕 인력 감축에 나섰다. 인터넷, 부동산, 교육 업계는 그동안 중국 일자리 창출의 주축이었다. 자오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수요는 전년 동기 대비 12.2% 감소한 반면, 구직자 수는 91.3% 증가했다. 

지난해 8월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도 글로벌 경제가 쇠퇴에 직면하고 소비력이 하강하는 상황에서 생존을 가장 주된 강령으로 삼아야 한다며 강도 높은 사내 구조조정을 촉구했다. 메이퇀,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텐센트 등 인터넷 기업도 지난해 신규 채용인력을 줄이거나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중국 구인구직 사이트 첸청우유에 따르면, 중국 각 업종의 100개 이상의 주요 기업 중 약 60%가 대졸자 채용 쿼터를 줄이고 아예 신규 채용을 중단했다.

엄혹한 고용 시장에서 명문대 졸업생조차 어찌할 도리가 없다. 지난해 명문 홍콩 중문대를 졸업한 양씨는 5개월 가까이 구직활동을 하면서 이력서 100통을 제출했지만, 단 한 건의 제안도 받지 못했다"고 닛케이아시안리뷰(NAR)에 토로했다. 

국무원 발전연구중심은 보고서에서 “사회에 가장 활력이 넘치는 대학생의 불안과 실망은 경제 발전 전망에 대한 사회 전체의 신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청년들이 과거 구시대의 산물이라 비웃었던 ‘쿵이지’의 처지가 오늘날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며 스스로를 비하하고 자조하며 무기력증에 빠진 배경이다. 
 
中관영매체 '직업 귀천없다' 발언에 청년들 '발끈'
중국 관영 언론이 나서서 ‘쿵이지 문학’을 경계하며 청년들에게 ‘직업엔 귀천이 없다’, ‘학력에 얽매이지 말라’며 청년들을 북돋우고 있지만, 청년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중국 국영중앙(CC)TV 인터넷판은 '쿵이지 문학 배후의 초조함을 직시하라'는 제하의 평론을 게재해 “쿵이지의 삶이 몰락한 것은 공부를 해서가 아닌, 지식인의 허세를 버리지 못하고 노동으로 자신의 처지를 바꾸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오늘날 뜻있는 청년들은 (쿵이지처럼) 장삼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도 공식 웨이보에서 '직업엔 귀천이 없다'며 "만약 우리가 '장삼'에 얽매여 자아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면,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 밭에 나가길 꺼리면, 광활한 세상에서 질적 성장을 실현하고 취업을 할 수 있는 길을 놓칠 것"이라며 청년들의 도전 의식을 일깨웠다. 

하지만 취업난에 힘든 청년들에게 이는 ‘공허한 구호’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청년들은 “어렸을 적에는 '장삼을 입어야 한다(대학을 가야 한다)'고 가르치더니, 성년이 되자 장삼에 얽매이지 말라고 한다. 1990년대생은 평생을 속고만 살았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일각에서는 “루쉰이 소설 쿵이지에서 비판한 것은 사회 악습인데, 관영매체는 쿵이지 개인의 문제라고 지적한다"고 꼬집는다. 오늘날 청년 고용불안은 경제가 불황에 빠져 고용시장이 악화한 사회 구조적 문제인데, 오히려 학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맹비판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도 청년 실업난을 해소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고 있기는 하다. 공무원이나 국유기업의 채용 규모 확대, 창업과 탄력고용 지원, 농촌지역 대졸자 우대혜택 제공, 석박사생 모집 확대 등이다. 

예를 들면 중앙정부는 각 부처에서 올해 모두 2만5000개 일자리를 대졸자로 채울 예정이다. 이는 전체 공무원 채용의 67% 이상에 달하는 수준으로 과거 40%에서 훨씬 늘었다. 

청년들의 대학원 진학률도 높아졌다. 중국교육재선에 따르면 올해 대학원 입학 응시자는 474만명으로 2022년 대비 17만명 늘었으며, 이 중 60% 이상이 취업 압박 속에서 대학원에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실업자 신세를 면하기 위해 석박사에 진학하는 대졸자가 늘면서 베이징에서는 올해 학부 졸업생보다 석·박사 졸업생이 더 많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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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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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짱깨들은 들어라.
    한자를 버려야 짱깨가 산다고 루쉰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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