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후폭풍이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챌린저뱅크를 향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대형은행 중심의 과점을 깨고 특수은행 성격을 띤 챌린저뱅크를 통해 경쟁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구상을 내놨는데, 이번 SVB 파산으로 은행권 부실 리스크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은행 문턱을 낮추겠다는 당국의 계획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4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국내 5대 시중은행의 과점을 깨기 위해 해외 챌린저뱅크와 같은 특수은행 모델을 국내에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은행 업무에 대한 인허가를 세분화한 스몰 라이선스와 중소기업, 소매금융 등 특정 업무에 주력하는 특화은행, 이른바 챌린저뱅크를 도입해 ‘메기 효과’를 노리겠다는 게 핵심이다.
챌린저뱅크는 영국과 미국 등 주요국에서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 JP모건이 설립한 '체이스(Chase)뱅크'를 비롯해 유럽 '헬로(Hello) 뱅크' 등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지난 3일 금융당국이 진행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실무작업반(TF)' 회의에서는 이번 파산사태 핵심인 SVB가 소형 특화은행의 성공사례로 소개됐다. 당국은 "SVB는 미국 서부 스타트업의 돈줄 역할을 하는 은행"이라며 "별도 인가단위에 따른 기관은 아니나 고위험 벤처기업만을 고객으로 상대하는 특화은행처럼 기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특화은행 도입에 따른 문제점은 금융당국도 이미 인지하고 있다. 금감원이 지난 2021년 발표한 '영국 챌린저뱅크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에선 지난 2021년까지 총 20여 개의 챌린저뱅크가 설립돼 현지 인구 4분의 1(27%)이 넘는 1400만명이 해당 은행 계좌를 보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들 은행은 비대면 채널 중심의 고객 확대 등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흑자 은행이 거의 전무하는 등 성장세가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한계로 꼽기도 했다.
금융위 은행권 영업 관행 개선 TF에서도 챌린저뱅크의 취약한 구조와 은행 인허가 난립으로 인한 건전성 악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당장 특화은행에 대한 충분한 규제 완화 없이는 앞서 영국 사례처럼 수익성에 한계가 있는데다 특정 여신 부문에만 사업을 집중할 경우, 만에 하나 해당 부문 자산건전성 충격이 있을 때 타 부문으로 상쇄하기 어려워 일반 시중은행보다 더 높은 자본적정성이 필요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여기에 비금융주력자 규제까지 완화할 경우 금산분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일선 은행 대비 완화된 기준으로 소규모 은행이 난립할 경우 과열경쟁과 그에 따른 부작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당국 역시 "챌린저뱅크가 출범해도 5대금융을 중심으로 한 일부 대형은행의 과점구조에 따른 경쟁 효과는 미미할 여지가 높다"면서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 등 기존 2금융권과 역할 차이가 크지 않아 새로운 범주의 은행으로 봐야할 것인지도 고민"이라 밝히기도 했다.
이번 SVB 사태를 계기로 까다롭게 인허가 검증과 관리가 이어져야 할 은행권에 대한 관계당국의 '맞춤식 규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파산 사태가 발발한 미국 역시 법 규정 상 중소은행들은 대형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제를 덜 받고 있다"면서 "다소 느슨한 규제와 외부 충격에 취약한 중소 은행들의 도산은 그에 따른 예금주 등 이용자 피해를 유발하는 만큼 업권 문턱을 낮춰 플레이어들을 늘리는 것이 과연 좋은 방향의 제도 개선일지 근본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