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사회적 책임 강화'라는 명분 하에 취약차주 지원과 예대금리차 축소를 동시에 요구받으면서 '대출 딜레마'에 봉착했다. 중·저신용자로 대표되는 취약차주 대출상품 공급은 곧 대출금리 상승과 예대금리차 확대로 이어지는 반면, 확대된 예대금리차에 대해서는 당국이 '이자폭리'로 규정하고 있어 은행권은 이러기도 저러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26일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은 카드사, 저축은행 등 2금융권 신용대출 상품을 이용 중인 중·저신용차주를 대상으로 자사 은행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특화 상품을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KB국민은행이 내달 중 상품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면서 "다른 은행들도 비슷한 상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제는 금융회사가 중·저신용자 대상 상품을 적극 취급할수록 그에 따른 리스크도 높아진다는 점이다. 실제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대출 사각지대를 없앤다는 설립 취지에 따라 중·저신용대출에 적극 나서면서 부실 규모가 급등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 인뱅 3사의 1개월 이상 대출 연체 규모는 약 2916억원으로 작년 1분기 말(1062억원)보다 174.6% 늘었다. 직전 분기인 3분기 말(1860억원)과 비교해도 56.8% 급증한 규모다.
한 인터넷전문은행 관계자는 "경기 악화로 인해 은행권 전반에 걸쳐 대출 연체가 늘고 있는 추세"라며 "특히 지난해 금융당국 요구에 따라 목표치를 설정하고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급격하게 늘린 인뱅들의 연체 규모는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권 입장에서는 중·저신용차주의 낮은 신용도 등을 배제한 채 저금리로 상품을 제공하는 것 또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취약차주 지원의 필요성 자체에는 공감하나 취약차주 지원이라는 명분 만으로 금리 산정 체계를 달리할 경우 고신용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아울러 포용금융을 위해 적극 공급된 중저신용 상품이 매달 공시되는 예대금리차에 악영향을 미쳐 선의로 출시한 상품으로 인해 ‘나쁜 은행’으로 낙인찍히는 역효과가 발생할 여지도 크다.
이에 은행권 안팎에서는 금융당국이 취약차주 지원과 예대금리차 인하라는 양극간의 목표가 상충하지 않도록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일선 은행이 금융소비자를 위한 ‘당장의 물 한 모금’ 같은 상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재무적으로도 악영향인 데다 경영진 성과와도 직결되는 만큼 큰 결심이 필요하다”면서 “은행권의 포용금융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