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우리 곁 수많은 '다음 소희'를 위해

2023-02-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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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실화의 힘은 세다. 같은 이야기더라도 관객들은 실화를 다룬 이야기에 조금 더 마음이 쓰이기 마련이다. 소재나 개연성을 뛰어넘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실화가 주는 힘과 무게를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만드는 이들이 깊이 고민하고 접근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영화 '다음 소희'는 정주리 감독의 숱한 고민과 신중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아동학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담은 '도희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정 감독은 '다음 소희'를 통해 또 한 번 청소년 문제를 시사했다.

영화 '다음 소희'는 지난 2017년 전주에서 벌어진 특성화 고등학교 실습생의 극단적 사건을 모티프로 한다. 정 감독은 평범한 소녀 '소희'(김시은 분)를 통해 부조리한 사회의 이면과 시스템의 균열을 짚어낸다. 또한 '유진'(배두나 분)을 통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말을 건네고 질문한다. "누군가 다가갈 수 있다면, 어쩌면 달라질 수도 있다는 희망. 오직 그 희망을 생각해보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라는 정 감독의 말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춤과 친구들을 좋아하는 고등학생 '소희'. 특성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그는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어느 기업의 콜센터로 현장 실습을 나가게 된다. 담임 선생님과 가족들은 대기업에 취직했다며 기뻐했지만 '소희'는 착잡하기만 하다. 그는 욕설부터 성희롱까지 극심한 감정 노동에 시달렸지만, 이들을 보호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임금도 지급받지 못한 상황. '소희'의 몸과 마음은 더욱더 피폐해진다.

한편 형사 '유진'은 지방으로 발령받은 뒤 '소희' 사건을 맡게 된다. 엉성하게 봉합된 사건에 의문을 품은 '유진'은 '소희'의 발자취를 따르며 사건을 되짚는다. 그 과정에서 '유진'은 아이들을 내몬 기업들과 이를 무마하려는 학교의 진실을 알게 된다. '유진'은 분노하지만, 어른들은 "현실적 문제"라며 오히려 그를 몰아세운다.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사진=트윈플러스파트너스㈜]

정주리 감독은 특유의 담담하고 서늘한 시선으로 '소희'를 따른다. 떠들썩하거나 뜨겁지 않아도 '소희'와 '유진'이 겪는 좌절과 절망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2부로 구성된 영화는 각각 다른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1부가 '소희'를 둘러싼 비극을 말한다면 2부는 '소희'의 죽음 이후 반복되는 비극에 관해 말한다. 정 감독은 이 독특한 구성을 통해 문제점을 짚어내고 하나의 이야기로써 귀결시킨다.

정 감독은 인위적 표현이나 과장을 삼갔다. 인물들이 겪는 상황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소희'의 비극과 '유진'의 무력감은 현실적으로 묘사되고 관객들은 영화 한복판으로 밀려든다. 그럼에도 정 감독이 강조하는 것은 '다음 소희'에 관한 관심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관심 두게끔 한다. 우리 곁의 수많은 '다음 소희'를 위해서다.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의 진정성을 강조한다. 신예 김시은은 평범한 소녀 '소희'를 투명하게 표현해냈다. 인물이 느끼는 좌절감과 비극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며 사실감을 높였다. 전작 '도희야'를 통해 정주리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배두나는 누구보다 그의 작품을 잘 이해하고 접근하는 듯하다. 인물이 느끼는 감정의 너울과 끓는점을 섬세하게 짚어냈다. '다음 소희'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적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신저처럼 보인다.

영화는 2월 8일 개봉하고 러닝타임은 138분, 관람 등급은 15세 이상이다. 제75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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