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컵밥이다. 한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던 컵밥을 미국에 진출시킨 사람이 있다. 바로 송정훈 유타컵밥 대표다. 그가 미국에서 컵밥을 팔게 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A. 일단 먹고 살기 위해서 컵밥을 팔게 됐어요.
A. 일단은 제가 미국에 있었고요. 미국에서 공부를 했었고 그러면서 그쪽에 가족도 만들고 자리를 잡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미국에서 시작했었던 거예요.
Q. 원래 꿈은 가수였다고 들었어요.
A. 가수였죠. 근데 얼굴이 특별하게 잘 생긴 게 아니었거든요. 지금은 굉장히 개성 있는 분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때는 잘 생겨야 하고 꽃미남이어야 되는 경우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쪽에서 좀 떨어졌던 것 같아요.
Q. 미국 유학 중에는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A. 매형이랑 저랑 덴탈랩 사업을 했었어요. 이빨을 만드는 건데, 그 사업을 처음 했었다가 앉아있는 걸 제가 잘 못하거든요. 반면에 사람 만나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사람을 만나 세일즈를 하면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을 생각했죠.
Q. 20대 당시 유타에서의 경험은 어땠나요?
A. 일단은 되게 죄송스러운 말이기는 하지만 유학을 가고 싶은데도 못 가시는 분들도 되게 많잖아요. 근데 저는 정말로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그분들이 지원을 해주셨기 때문에 제가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거예요. 근데 저는 사실 유학을 가고 싶지 않았는데 워낙 여기서 사고를 많이 치니까, 그쪽에 가서 그래도 좀 넓은 세계를 한번 보고 오라는 취지로 유학을 보내주셨죠.
Q. 가서도 빨리 돌아오고 싶었다고 들었어요.
A. 그렇죠. 매일 돌아오고 싶었죠.
Q. 근데 지금은 유타에서 계속 살고 계시잖아요.
A. 원래는 6개월 유학을 약속 했었거든요. 근데 이제 유타에 온지 18년이 됐어요. 이렇게 될 줄은 저도 몰랐어요.
Q.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에요?
A. 일단은 유타라는 곳이 굉장히 안전해요.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요. 그리고 가족 문화가 많이 형성돼 있는 곳이 유타거든요. 그래서 이 곳에서 결혼을 하다 보니 정착하게 됐어요.
Q. 한국에 와서 다시 살아도 되고, 미국의 다른 지역도 있는데 왜 유타인가요?
A. 일단은 아이를 키우기에 유타가 정말 좋아요. 안전하거든요. 그리고 유타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면 어디서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유타에 살게 됐어요.
Q. 여행지로도 추천을 하세요?
A. 일단 아웃도어 하시는 분들한테는 천국이죠. 유타는 물도 있고 산도 있고 유명한 국립공원도 5~6개 정도가 있는 곳이에요. 눈이 많이 와서 스키도 정말 유명하고요.
Q. 처음에 컵밥을 한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A. 다들 하지 말라고 했죠.
Q. 그런데 왜 이걸 하게 됐어요?
A.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하고 싶더라고요. 제가 그런 성격이에요(웃음).
Q. 외식업에 치킨도 있고 햄버거도 있고 피자도 있고 종류가 많은데 왜 컵밥을 하게 된건가요?
A. 일단은 간편한 게 되게 좋았어요. 들고 어디든 갈 수 있잖아요. 반찬을 여러 개 깔아 놓을 필요도 없고, 고기를 하나 하나 구워야 될 필요도 없고, 야채를 씻어야 될 필요도 없기 때문에 굉장히 빠르고 재밌어서 저한테 딱 맞았어요.
Q. 우리나라에서 컵밥을 하다가 미국으로 간 거예요?
A. 그건 아니에요. 그냥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봤고 노량진 컵밥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이 아이디어는 어떻게 보면 미국에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여러 가지들이 굉장히 많이 맞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컵밥을 선택했죠.
Q. 시장조사 같은 것도 해야 되잖아요.
A. 그런 거 모르고 그냥 시작했어요. 그런 계획도 없이 그냥 하겠다고 생각을 해서 그날 저녁에 트럭을 샀어요. 어떻게 운전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샀어요. 그 후에 몇 달 동안 주차를 해놨어요. 근데 돈이 들어갔으니까 무조건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시작한 게 컵밥이에요.
Q. 주위 반응은 어때요?
A. 제가 같이 하자고 했던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아 그때 할 걸” 이런 사람들도 있고 “이거 원래 내가 하려고 했었던 건데”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Q. 마케팅은 어떻게 했나요?
A. 마케팅이라고 생각할 것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돈이 없었기 때문에 오시는 손님 한 분 한 분한테 전화기를 달라고 했어요(웃음). 손님으로 왔는데 전화기를 달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전화기를 줬어요. 그래서 제가 페이스북 페이지를 찾아서 '좋아요'를 눌렀죠. 그리고 전화기를 주고 얘기해요. "이 음식이 맛이 없으면 '좋아요'를 취소해도 되지만 대신에 맛이 있으면 우리를 팔로우해 달라" 이렇게 부탁했어요. 그게 첫 마케팅이었어요.
Q. 한국에서도 컵밥을 많이 드셨어요?
A. 저는 안 먹어봤었어요. 사업을 시작하고 한 3~4년 정도 지나고 나서 한국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노량진 가서 처음 먹어봤었어요.
Q. 대표님께서 만드신 컵밥이 처음 맛보는 컵밥이었잖아요. 노량진에서 맛을 봤는데 어땠나요?
A. 한국 것이 훨씬 맛있습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