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한국인 비자제한 …중화적 세계관에 묶인 中

2023-01-31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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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중국이 최근 우리의 방역조치에 대해 보복적 비자발급 중단조치를 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은 이것을 상호주의적 조치라고 하지만 우리가 취한 조치보다 훨씬 포괄적인데다 양국의 방역상황을 비교하면 전혀 상호주의적이지 않다. 중국은 또한 우리가 비과학적, 주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불필요한 방역조치를 했다고 하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또한 우리가 격리조치에서 중국인을 차별했다고 하나 모든 외국인에게 동일한 조치를 한 것이 명백하다. 중국이 2020년 코로나 확산 초기 우리 국민에게 했던 조치는 일방적이었으나 우리는 당시 국내상황이 심각함을 인정하고 상호주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우리는 당시 중국이 자국 방역을 위해 한국인에게 엄격한 입국제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보고 이를 중국의 방역주권으로 이해하였다. 그때와 반대되는 상황이 이번에 발생하자 중국은 오히려 우리에게 보복적인 조치를 하여 국제사회를 놀라게 하였다. 이런 중국의 태도는 객관적 관점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방적인 조치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이 왜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지를 잘 알지 못한 채 우리가 인·태전략 발표 등으로 중국을 자극했다는 자학적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중국이 이런 국제관행에 어긋나고 형평에 맞지 않는 보복조치를 하는 것은 우리에 귀책사유가 있다기보다는 다분히 중국의 잘못된 세계관, 즉 중화적 세계관에 기인한다고 봐야 한다. 중국은 기원전 3세기 서한(西漢)시대 때부터 중화적 세계관을 발전시켜 왔다. 겉으로 중국은 현재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주권평등, 상호존중이라는 개념을 수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심으로는 이 개념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부터 중국은 자국이 세계의 중심이며 자국을 정점으로 주변국들은 제후국, 교린국, 야만국 순으로 서열화된 수직적 관계에 있다고 간주했다. 중국의 천자가 하늘의 위임을 받아 천하를 다스리는 독점적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밑에는 천자에게 복속하는 왕, 제후, 조공국의 왕 순으로 상하관계가 형성된다. 중국의 천자와 그 밖의 군주들은 군신관계이므로 그들이 천자를 섬기는 것을 당연하게 본다. 이러한 중화적 세계관에 따르면 중국의 주변국은 중국에 복속함으로써 은혜를 입고 중국과 좋은 관계를 맺는다면 모두 평화롭게 사는 조화세계를 이룬다고 본다. 즉 각국은 자신의 위치에 맞게 중화 공동체에 기여하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여러 나라들이 어울려 살 수 있는 대동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세계관은 대국과 소국 간의 역할과 지위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며 특히 천자를 모신 중국이 모든 국제관계의 정점에 있고 다른 나라들은 중국을 섬기는 事大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고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보살피는 字小事大가 국제질서의 근본이라고 본다. 그러니 중국의 외교 당국자들조차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느냐’라는 말을 거침없이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중국의 중화적 세계관에 비추어보면 소국인 한국이 대국인 중국인의 입·출국에 대한 제한을 하고 나서는 것은 소국이 대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다. 따라서 이는 과학적, 객관적 근거가 있느냐 여부와 관계없이 보복을 받아야 할 사안이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화적 세계관은 당시 중국이 아는 세계의 한계였던 동아시아에서 적용되었다. 중국인 관광객을 무조건 환영하는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중국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사대주의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한국은 보복의 대상이 되나 중화적 세계관의 지리적 적용범위 밖에 있는 미국이나 EU 등은 같은 조치를 해도 보복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세계관을 공개적으로 내세우지는 않으나 중화 애국주의와 중국몽이라는 형태로 중국인들, 특히 젊은 세대에 주입시켜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국내 정치상황이 중국 공산당에 어려워지면 이런 중화 애국주의를 활용하여 공격의 표적을 내부에서 외부로 옮기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의 한국의 방역조치는 그 객관적 타당성과 관계없이 국내 불만을 외부로 표출할 수 있는 표적이 된 것이다.
 
중국의 행위를 파악하고 분석할 때 중국을 보통국가의 하나로 보면그 분석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가 많다, 중국은 하나의 문명이자 56개 다민족을 규합한 연합국가이며 이들은 중화주의 세계관으로 묶여있다. 중국은 자국의 애국주의를 자신들의 과거 영화를 되새기며 고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당한 굴욕을 부각함으로써 고양시키는 특이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1860년 아편전쟁 이전부터 거의 2세기에 걸쳐 서양에 당한 ‘굴욕의 세기’를 내세우며 이를 극복하고 옛 영화, 즉 세계 최강, 중심국가 지위 회복을 국가목표로 삼고 있다. 그래서 중국은 지금의 국제질서. 즉 1648년 베스트팔렌 회의를 통해 성립된 근대국가 질서를 사실상 수용하지 않고 있다. 이 질서는 평등한 주권을 가진 국가들이 수평적으로 병렬하여 국제사회를 이룬 것으로 본다. 이는 중국의 수직적 세계관과 상치되며 중국은 이런 질서는 서양 제국주의에 의해 일방적으로 부과된 것으로 보기에 궁극적으로 베스트팔렌 체제를 변경하려 하고 있다. 굴욕의 기억을 기반으로 하는 애국주의는 외부의 사소한 행위도 자국의 자존심을 건드린다고 보고 과민한 공격성향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소위 중국이 ‘전랑(戰狼)외교’를 무리하게 벌이는 이유이다. 이러한 국민정서를 가지고 있고 중화적 세계관을 가진 중국이 우리의 이웃이자 제2의 강대국이 되었다. 이런 중국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숙명이자 도전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의 이러한 세계관의 심리기제를 잘 알고 이에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중국에 대해서 중국이 강압적으로 나올 때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지 않았나 하며 우리의 잘못을 먼저 찾는 자기 귀책적 성향을 가질 필요가 없다.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중국에게 베스트팔렌 체제의 국제질서에 따른 행동, 즉 모든 국가는 국력에 관계없이 평등하고 상호 존중해야 한다는 관점을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고 중국과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 위하여 중국이 원하는 대로 사대주의에 입각한 저자세 외교를 해서도 안 된다. 이러면 중국은 상호주의를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주의적 순종-보상, 불순종-보복의 기제를 계속 작동시키며 소국을 길들이려 할 것이다. 우리를 비롯한 자유주의 진영국가들, 즉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는 국가들이 연대하여 중국에게 이러한 중국식 세계관에 입각한 국제질서는 수용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의 확장을 저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중국의 보복을 당할 경우 우리는 타협할 것은 타협해야 하지만 우리 국가의 정체성, 가치 등을 희생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버틸 것은 버텨야 한다. 중국 역사를 보면 조정은 세력을 키우고 버티는 제후를 오히려 왕으로 격상시키고 회유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왔다. 중화적 세계관에 그냥 길들어져서는 안 된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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