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 타워는 우리말로는 관제탑이다. 이 관제탑은 공항에서 이착륙하는 항공기의 비행고도, 이착륙 순서와 활주로를 지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관제탑이 모든 주변 항공기의 비행궤적과 풍향, 풍속 등을 잘 파악한 후 정확한 지시를 내리지 않을 경우 항공기들 안전운항이 큰 위협을 받게 된다. 바야흐로 전 세계는 지금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치열해지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경제안보가 모든 국가에 중요한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도 경제안보를 중시하고 대통령실에 이를 담당하는 비서관직을 신설하였다. 그러나 경제안보라고 간주되는 사안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고 각국이 취하는 정책도 불투명하다 보니 경제안보에 대해 실효적인 방침을 내놓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를 감안해도 지금 경제안보 분야에서 정부의 컨트롤 타워 기능이 잘 보이지 않고 각 부처들은 각개약진하는 바람에 우리 기업들은 당혹스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안보와 관련하여 국제적으로 새로운 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기에 이 같은 정책혼선은 차후 우리에게 값비싼 비용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커 이런 혼선을 빨리 제거해야 한다. 경제안보와 관련하여 우리가 방향성을 잘 잡지 못하고 있는 영역 몇 군데를 짚어보고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경제안보라는 개념이 중요시하게 된 첫째 이유는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양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이 경쟁은 사실상 패권경쟁이다. 그리고 이 패권경쟁의 승패는 첨단기술 분야에서 누가 우위를 점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미국은 한사코 첨단분야 기술과 장비가 중국에 이전되는 것을 막고 첨단기술 공급망에서 중국을 분리(decoupling)시키려 하고 있고 중국은 이런 저지망을 뚫으려 한다. 이 경쟁의 와중에서 한국기업들은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낀 샌드위치 형편이 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경제실리와 시장접근적 관점에서만 판단을 해서는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다. 중국시장이 여전히 크다는 미련이 있기에 당장 과감한 분리조치를 취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게는 첨단기술에서 우위를 상실하면 패권이 넘어가는 사활적인 문제이기에 시장분리 속도를 늦출 수 없다. 따라서 미국과 동맹인 우리는 시장분리가 결국 불가피하다고 본다면 단기손실이 있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안보적,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러면 미국의 중국 견제효과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우리 기업에 득이 될 수 있다. 단, 미국기업보다 우리 기업들이 이 조치에서 더 앞서 나갈 필요는 없다.
셋째로 미국이 추진 중인 ‘인플레 감축법(IRA)’이나 ‘반도체.과학법’ 등과 같은 법안들은 미국 내 일자리 만들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 법안들이 미국기업의 국내회귀(reshoring)뿐만 아니라 외국기업도 미국 내 공장을 지어야 미국 내 판매를 허용하거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와 기업들 노력뿐만 아니라 EU, 일본 등과 힘을 합쳐 미국 일방주의를 완화시키려는 공동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우선주의에 대해서는 개별호소를 하기보다는 집단저항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같은 처지의 국가들이 한목소리로 ‘동맹과 우방의 경제적 이익을 훼손하는 미국 우선주의는 자유진영의 결속을 더 약화시킬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원자재, 희귀광물 등의 안정적 공급을 확보하기 위한 공급망 다변화 문제가 있다. 이 전략 자원을 필요로 하는 개별 기업들이 전방위로 뛰어 확보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원 민족주의에다 자원무기화가 함께 진행되는 현 국제정세를 보면 각국 정부의 협조 없이 기업 단독으로 이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 컨트롤 타워가 각 기업의 노력을 파악하고 전반적인 교통정리를 하면서 기업을 지원, 독려하고 상대 정부와 협력의 틀도 만들어 내야 한다. 과거 자원외교를 적폐로 몰던 정권의 우매함이 지금 우리가 겪는 원자재 및 주요광물 공급불안을 불러왔다. 물론 정권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던 당시 공기업 경영진의 태도도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자원개발 사업을 단기적 성과라는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이 밖에 경제와 외교, 안보이익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개별 사안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입장이 모호한 면이 있다. 예를 들면 화웨이 통신장비를 우리 통신 인프라망에 설치하는 문제는 전 정부 이래 여전히 개별 기업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단기적 성과계산에 급급한 기업에 장기적 국가안보 리스크를 판단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원자력 발전소 해외진출과 관련하여 우리 한수원과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법적 분쟁을 벌이는 것도 걱정스럽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원자력 협력분야에서 양국은 제3국에 동반진출 하기로 하였기에 미국은 한국이 이 약속을 안 지킨다고 여길 것이다. 공동성명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이를 조율해주는 주체가 없으니 한수원이 폴란드, 체코 등에 독자진출을 주장하여 문제가 커지는 꼴이다. 이 두 사안 모두 경제안보 분야 컨트롤 타워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모든 점을 고려할 때 경제안보와 관련하여 국내적으로도 부처간 협업과 대통령실의 조정역할이 분명하게 작동되어야 한다. 경제안보는 그 단어 자체가 시사하듯이 경제와 안보라는 양 개념이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지만 대체로 경제적 수단이 외교·안보 목적을 위해 동원되는 것이 국제적 추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단기적 실리 때문에 외교·안보 이익을 희생시키는 경우가 빈발한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를 담당하는 정책책임자들은 범세계적 시각과 전략적 사고의 틀을 가지고 이 업무에 임해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업체의 시각을 대변하는 경제부처보다는 대통령실, 외교부 등 안보부처가 경제안보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다. 거친 풍파 앞에서 숙련된 선원은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특임대사 △주호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