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바람 타고 日원전 조항 손질…"원자로 1기=LNG 100만톤"

2022-11-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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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원전 기한 연장하려다 여론 반대에 표류

원전 중간 정지기간 제외로 타협

 

지난 9월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 방문 중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일본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는 뼈아픈 기억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원전 관련 조항을 두드리고 있다. '엔저'로 에너지 수입 비용이 오르고 원전을 조금이라도 더 활용하려는 자구책을 찾고 있다. 다만 전문가와 여론 반대에 원전 조항을 소폭 수정하는 데 그치고, 신규 건설이나 원전 수명 연장은 어려워 보인다. 

◆ 일본 경제산업부, 여론 반대에 정지 기간 제외로 타협
8일 아사히신문은 일본 경제산업부가 원전 정지 기간을 제외하고 최장 60년으로 원전 운전 기간을 조정한다고 전했다. 앞서 경제산업부는 '60년' 운전기간의 상한을 없애려고 했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생긴 여론의 불신을 잠재우기 어려워 절충안을 찾은 것이다 .

일본 원전 관리법은 '60년 룰'로 불린다. 원자로 운전기간을 최장 60년까지만 허용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40년 운영을 하고 1번 검사를 통해 20년을 추가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원전의 안전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여론이 들끓자 일본 정부는 최대 60년까지만 운영하는 법을 만들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에는 원전 운전기간을 정하는 법이 없었다. 

최근 '60년룰' 원전 관리법 변화에 불을 지핀 것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였다. 지난 8월 24일 기시다 총리는 '그린 트랜스포메이션(GX)' 실행 회의에서 "그린 트랜스포메이션을 추진하는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은 필수적이다"고 강조하며 사실상 '원전 부활 정책'을 지시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 자리에서 일본 사회의 금기도 깼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 추진은 일본 사회에 금기가 됐다. 이날 기시다 총리는 “차세대 원전 개발과 건설을 검토하라”며 “원전의 운전 기간 연장에 대해서도 연말까지 구체적인 결론을 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기시다 내각의 경제산업성은 2030년 이후 원전 가동을 목표로 하는 초안을 작성했다. 금기시되던 신규 원전 건설을 의제로 던진 것이다.  

닛케이 아시아는 "기시다 정부는 올해 겨울과 내년에 예상되는 전력 부족을 피하기 위해 원자로 재가동을 요구하고 있다"며 "2023년 여름부터 최대 17기의 원전을 가동할 계획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일본에는 후쿠시마 원전 이후 원전 33기 중 원전 6기만 가동되고 있는데 이 역시도 17기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 원전 재가동·신규 건설 배경에는 엔저 부담…"원자로 1기=LNG 100만톤"

일본 정부가 원전 재가동 및 건설을 의제로 치고 나온 데는 '엔저'가 강한 원인으로 꼽힌다. 2025년 탈 탄소 목표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당장 급등한 에너지 비용이 일본 경제에 위협이 되고 있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 1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146엔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난해 11월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110엔 전후를 오간 것에 비하면 엔화 가치가 폭락한 것이다. 엔화 가치 하락은 수입 비용의 증가와 강달러로 인한 에너지 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일본은 현재 14개월 연속 무역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에너지 수요의 90% 이상을 수입하는 일본 경제의 특성 상 에너지 가격 상승과 엔화 가치 하락이 무역 적자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일본 재무부에 따르면 9월 수입은 10조 9000억엔(727억 달러)로 석유 및 가스 비용의 증가로 전년 동기 대비 약 46% 증가했다. 수출은 8조 800억엔(587억 달러)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개월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지만 수입 비용의 증가를 막지는 못했다. 

급기야 일부 당국자는 엔저 상황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원전의 재가동이 필요하다고 노골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수입 의존 에너지 생산 비중을 줄이고 자국 내 에너지 생산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활성부 장관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월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활성부 장관은 에너지 수입 비용 증가로 원전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니시무라 장관은 원전 재가동은 "엔화 약세에 대책이 될 것"이라며 "원자로 1기가 재개될 때마다 100만 톤의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니시무라 장관은 "수출, (해외) 투자, 원자로 재가동을 촉진함으로써 엔저의 영향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에 원자력은 일본 발전량의 30%를 차지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이후 모든 원전은 안전 점검을 통과할 때까지 일시 폐쇄됐고 발전 비중이 급감했다. 이후 원전 발전량의 비중은 30%에서 6.4%로 떨어졌다. 

일본 정부의 에너지 비용 최소화 정책도 한계에 봉착한 모습이다. 지난해 대비 석탄 가격은 2배, 천연가스 가격은 1.5배 올랐지만 일본 가계에서 지불하는 전기 요금은 고작 25%만 올랐다. 8일 기준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석탄 가격은 1t당 150달러에서 345달러로 1년 사이 2배 뛰었다, 천연가스 가격도 1mmbtu(열량단위)당 3.8162달러에서 6.622달러 2배 가까이 급등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일본 전력회사가 정부에 전기 가격을 인상하도록 요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일본이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입국이라는 점도 영향을 끼쳤다. 올해 일본은 1013억 cbm(입방미터)의 LNG를 수입했다. 이는 유럽연합(EU) 전체가 총 1082억 cbm을 수입한 것으로 고려하면 막대한 양이다. 

당장 이번 겨울이 일본 경제의 위기라는 말도 나온다. 니시무라 장관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겨울 전력 공급조치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해당 조치는 12월에서 3월 사이에 불필요한 조명을 끄고 실내에서 옷을 더 많이 입어서 전기를 절약할 것을 권장한다. 특히 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1월 도쿄 지역의 전력 예비율은 4.1%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전력 예비율이 3%나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최악의 경우 에너지 수급 불안으로 블랙아웃 상황까지도 우려되는 것이다. 

◆ 여론 반대에 원전 재가동·신규 건설은 '험난' 

기시다 정부의 원전 부활 의지와 별개로 원전 재가동 및 신규 설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역 여론과 전문가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에너지 정책 전문가 타치바가나와 타케로 일본 국제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일본 정부의 원전 부활 조짐에 대해 지역매체 남일본신문에 "후쿠시마 사건에 대한 반성이 없다. 원전 의존 최소화를 진정 목표로 하는지 의심스럽다"며 "(일본 정부는) 원전 정책과 관련해 일관된 것이 하나도 없다. 누가 언제 어디에 원전을 만들지도 불확실해 (원전 추진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후 원전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일본 원자력 규제 위원회(NRA) 사무국 관계자는 지난 2일 회의에서 "원전 건설과 관련 시간이 지날수록 건축물 노화로 인한 방사선 누출 위험이 커진다"고 봤다. 이어 원전 규정 개정에 대해 무조건 반대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검사에 훨씬 더 강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NRA는 건축물 노화로 원자로 압력 용기가 부서지기 쉽고 외부 격납 용기의 부식, 콘크리트 강도 저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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