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140엔대 사수 위한 '조용한' 심리전 시작

2022-10-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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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비즈니스 리뷰

엔화 약세 '속도조절'이라도…日 '스텔스' 심리전 채택

BOJ 이달에도 비둘기 고수할듯…5.5조 넘는 개입 나오나



일본이 달러당 140엔대를 사수하기 위한 심리전을 시작했다. 일명 ‘복면개입’이란 스텔스(stealth) 전략을 통해 투기적 움직임을 억누르겠다는 것이다. 시장은 회의적이다. 일본은행(BOJ)이 매파로 선회하더라도 약세가 계속될 것이란 비관론마저 나온다. 미국 경제가 급속도로 약해지거나, 고물가가 잡히지 않는 한 엔화 가치 하락은 예정된 수순이란 것이다.
 
엔화 약세 ‘속도조절’이라도…日 ‘스텔스’ 심리전 채택
로이터 통신,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외신은 일본이 엔화 가치를 사수하기 위해 심리전을 택했다고 분석했다. 수십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고꾸라진 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조용한 환시 개입’ 카드를 꺼냈다는 것이다.
 
앞서 일본 재무부는 지난 9월 22일 1998년 6월 이후 약 24년 만에 엔화 매수·달러 매도를 통한 환율 시장 개입을 단행했다. 당시 칸다 마사토 일본 재무부 재무관은 개입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렸다.
 
그러나 이후 일본 당국의 태도는 바뀌었다. 조용한 개입으로 방향을 틀며, 9월 22일 이후부터는 개입 여부를 함구하기 시작했다. 9월 22일 200억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개입에도 불구하고 엔화 가치가 반짝 상승한 뒤 추락을 이어가자, 전략을 바꿨다. 개입 자체만으로는 엔화 가치 하락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시장은 일본 당국이 10월 14일, 10월 21일, 10월 24일에도 환시 개입을 단행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복면개입을 통해 '1달러=140엔'대를 사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14일에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32년 만에 최저치인 147.665엔을 찍고 급등하자, 시장에서는 정부 개입에 대한 추측이 무성했다. 21일의 엔화 움직임은 이런 추측이 사실임을 방증했다. 21일 뉴욕외환시장에서 151.94엔에 달했던 엔화 가치가 2시간여 만에 7엔 넘게 상승한 144.50엔을 기록하자, ‘복면개입’을 확신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24일에는 달러당 149.7엔에 달하던 엔화 가치가 순식간에 4엔 가까이 오른 145엔대까지 급등했다.
 
씨티그룹 증권의 애널리스트인 다카시마 오사무는 “24일에도 개입을 실시했다면 이는 완전 깜짝 개입이다”라며 “당국이 투기 억제를 위해서 심리전을 걸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말했다.
 
일본 당국자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칸다 재무관은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환시 개입 여부와 관련해서는 당분간 어떤 입장도 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 장관은 “투기적인 엔화 움직임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침묵’ 말고는 방법이…
애널리스트들은 일본 당국의 ‘침묵’이 투기 세력에 혼란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일본 당국이 개입에 나설지 모르니, 시장 입장에서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토추 리서치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아츠시 다케다는 "은밀한 개입으로 일본 당국은 시장에 그들이 실제보다 더 자주 개입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며 "(복면개입은) 심리적 도구"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일본 당국의 목표는 엔화 약세 속도를 늦추는 데 있을 가능성이 크다. BOJ가 금리를 인상할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투자자들과의 신경전이 그나마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는 셈이다. 해당 사안에 정통한 익명의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일본 정부는 (시장에) 개입할 때마다 스텔스 방식을 유지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또 다른 익명의 관계자 역시 “개입 사실을 밝혀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외환보유액 고갈도 걱정이다.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1조3000억 달러(약 1868조원) 정도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로이터통신은 “일본은 9월 22일 개입만으로 개입 가능한 자금의 약 15%를 고갈시키며 (개입이) 지속 불가능하게 됐다”고 짚었다. 지난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동안 일본 당국은 개입 여부를 밝히지 않았었다. 아시아 금융위기 때처럼 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구두 개입 혹은 침묵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 수 있다.
 
닛세이기초연구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우에노 츠요시는 “복면개입의 효과는 시간을 버는 정도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일본의 스텔스 전략이 시장 변동성을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JP모건의 벤자민 샤틸 외환 전략가는 “시장은 개입을 매우 경계하고 있다”며 “변동성을 완화하겠다는 당국이 의사와는 달리 불규칙한 대규모 개입은 시장의 변동성을 증가시키는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BOJ 이달에도 비둘기 고수할 듯…5.5조 넘는 개입 나오나 
일본 당국은 개입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타이밍을 노리며 개입에 나서는 모습이다. 단적인 예로 지난 21일 밤에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연준 속도조절론을 보도하자, 개입을 단행하며 엔화 약세에 제동을 걸었다.
 
시장은 일본 당국이 21일에 5조5000억엔에 달하는 엔화를 사들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9월 22일 개입 금액인 2조8000억엔을 크게 웃도는 규모로, 역대 최대 규모다. 24일에도 상당한 규모의 금액을 투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약발이 약하다는 점이다. 25일 오후 4시50분(한국시간) 기준으로 엔화 가치는 달러당 148.97엔에 머물러 있다. 엔저가 끝날 기미는 안 보인다.
 
주요 중앙은행 가운데 유일한 비둘기로 남아 있는 BOJ가 매파로 선회하기 전까지 엔화 가치 회복은 난망이란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BOJ의 비둘기 날개는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스즈키 슌이치 재무 장관은 이달 25일 기자회견에서 “환시 개입은 과도한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실시하고 있다”며 “(금융정책은) 일본은행의 독립성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BOJ는 이달 27일, 28일에 금융정책 결정 회의를 열고 금리인상 여부를 결정한다. 블룸버그통신의 설문조사에 참여한 경제학자 49명 전원은 BOJ가 이달에도 현상을 유지할 것으로 봤다. 현재 일본의 기준금리는 마이너스(-) 0.10%다.
 
일본의 환율 시장 개입에 미국은 무심한 모습이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24일 일본 환시 개입에 대한 질문에 “들은 바 없다”고만 답했다.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행정부의 최대 과제는 고물가 억제로, 금리인상의 부작용인 달러 강세를 문제 삼을 여유가 없다. 
 
주요 중앙은행들이 금리인상을 앞둔 점도 부담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오는 27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오는 11월 3일 금리 결정을 발표한다. 특히 연준은 11월에도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밟을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엔화 약세 압력이 약해지는 것은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가 완화되는 연말 이후가 될 것이란 분석이 많다”며 “원자재 가격 하락과 방일 외국인 증가도 엔화 약세 압력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엔화 약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란 비관론도 나온다. ECB와 영국중앙은행이 금리인상에 나섰지만, 유로화와 파운드화는 여전히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고물가가 해결되면서 연준 ‘피벗’이 나타나거나, 미국 경제가 급속도로 약해지지 않는 한 엔화 등 준기축통화들이 강세를 보이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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