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 칼럼] 인파 관리 중요성 보여준 이태원 참사

2022-10-3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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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축제 현장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119 구조대원 등이 사고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위해 대기해 있다. [연합뉴스]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대형 압사 참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유례가 없는 사고다. 30일 오후 6시 현재 153명이 숨지고 103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그동안 수백명이 숨지거나 다치는 사고는 여럿 있었다. 최근 순으로 살펴보면 304명이 숨진 세월호 침몰 사고(2014년 4월 18일), 192명이 숨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2003년 2월 18일) ,502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1995년 6월 29일), 292명이 숨진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1993년 10월 10일)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사고는 구체적인 사고 원인이나 발생 과정은 달랐으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의 잘못으로 발생한 인재라는 점이다. 관계자들이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았거나 안전 관리에 소홀해서 발생했다. 사고 원인이 비교적 명확했고,  사고 책임자를 규명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는 처음


그러나 이태원 사고는 사고 원인이나 발생 과정이 전혀 다르다. 현재까지 추정되는 원인은 대규모 인파에 의한 압사다. 좁은 골목길에 10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린 상태에서 누군가 쓰러지자 뒤에서 몰려오던 사람들이 이에 걸려서 도미노처럼 그 위로  쓰러졌다. 쓰러진 사람들은 인파에 깔려 심 정지로 숨졌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사고 유발자가 누구라고 할 수가 없다. 일종의 자연 재해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전형적인 인재였던 과거의 대형 사고들과 다르다. 

 

대규모 압사 사고는 외국에서는 여러 번 있었다. 인파가 몰리는 각종 종교 행사에서 발생한 경우가 많았다. 1990년 7월 이슬람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인근에서 성지 순례객  1426명이 압사한 사고가 대표적이다. 메카로 향하는 보행용 터널에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벌어졌다.

 

우리는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대규모 압사 사고는 좁은 지역에 순례객이 수만명씩 모이는 외국 먼 나라에서나 발생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런 압사 사고가 우리에게서도 일어난 것이다. 압사 사고가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줬다. 

 

이번에 이태원에는 핼러윈 축제를 맞아 엄청난  인파가 몰릴 것으로 진작부터 예상됐다.  코로나 사태로 3년 만에 재개된 축제였기 때문이다.  상점들마다 다양한 축제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외국 사례에서 보듯 많은 인파가 몰리면 언제든 압사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압사 사고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많은 인파가 몰린다고 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기야 하겠느냐 하는 게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니  압사 사고에 대비한 안전 지침도, 예방 지침도, 교육도 있을 수가 없었다. 

 
인파에 의한 압사 사고 위험성 새롭게 인식해야
 

이태원 사고는 대규모 압사 사고 발생 위험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수만 명 인파가 좁은 지역에 한꺼번에 몰리면 언제든 대규모 압사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이런 사고를 막으려면 인파 사고에 대한 안전 불감증부터 버려야 한다. 서울에는 이태원 말고도 홍대 입구나 강남역 사거리처럼 인파가 특히 많이 몰리는 지역이 있다. 지방에도 이런 곳이 있을 것이다. 평소 인파가 몰리거나 특정 행사를 앞두고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될 때는 인파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인파가 짧은 시간에 한 지역에 너무 많이 몰리지 않는지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너무 많이 몰릴 때는 인파를 통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인파 관리 대책이 시급하다. 그러자면 정부는 이태원 사고가 발생한 원인과 과정을 과학적으로 철저히 조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태원 사고에서 숨지거나 다친 사람은 대부분 20~30대라고 한다. 핼러윈 축제는 나이 많은 세대는 무슨 축제인지도 모르는 낯선 행사다. 그러나 젊은이에게는 그렇지 않다. 젊은이들에게는 큰  축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외국 문화를 우리 문화처럼 즐기는 일은 갈수록 많아질 것이다. 젊은이들이 그 문화를 즐기려고 한 곳에 몰리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이런 추세에 발 맞춰 중·고교생들에게 대규모 인파에 의한 압사 사고 위험성과 안전 수칙을 가르칠 필요도 있다. 한순간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부터 가르쳐야 한다.  이런 곳에는 가능한 한 가지 말거나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면 급히 빠져나와야 한다는 사고 방지 의식도 심어줘야 한다. 

 

이태원 사고가 발생하자 외국 정상들도 우리 국민에게 위로의 뜻을 잇달아 밝히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서울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보낸다"면서 "우리는 한국인들과 함께 슬퍼하고 부상자들이 조속히 쾌유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 비극적인 시기에 한국과 함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이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을 마주한 모든 한국인과 현재 참사에 대응하는 이들과 함께한다"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태원에서 일어난 비극에 한국 국민과 서울 주민에게 진심 어린 애도를 보낸다"면서 "프랑스는 여러분 곁에 있겠다"고 했다.

 
인재 아닌 자연 재해···정략적 악용 안 돼


외국 정상들의 위로 성명은 인도주의에 입각한 인간애의 표현이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한국은 세게 10위권 경제 대국이다.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 기술, 자동차 산업은 물론이고 축구, 영화, K-팝(POP) 등 스포츠와 문화 부문에서도  세계적 선도 국가가 된 지 오래다. 이런 나라에서 후진국형 압사 사고가 일어나 수백 명이 죽거나 다쳤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국제적 위신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이태원 사고를 정략적으로 악용하려는 시도도 경계해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 이번 사고는 인재라고 하기 어렵다. 자연재해에 가깝다. 따라서 누구의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정부에 모든 책임을 돌리며 정치 공세의 호재로 삼으려는 시도가 나올 수 있다. 별것 아닌 조그만 실수나 실책이라도 나오면 침소봉대해서 국정 문란이니 정부 무능이니 하며 공격하고, 나아가 거짓과 조작으로 선동하려는 세력이 나올 수 있다. 정쟁으로 눈앞 이익이나 챙기려는 시도와 세력을 거부하고 심판할 수 있는 국민적 양식이 절실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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