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만들며 제일 잘한 일은…정우성 씨를 설득한 거죠."
영화 '헌트'의 '김정도'는 조직 내 스파이를 색출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거침없는 추적을 이어가며 실체에 다가서는 안기부 요원이다. 군인 출신으로 특유의 강인하고 강직한 성품과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물.
그러나 캐스팅은 쉽지 않았다. 영화 '태양은 없다'라는 명작을 남긴 두 사람의 재회와 절친한 사이라는 점이 오히려 걸림돌이 됐다. 정우성은 출연을 망설였고 이정재는 끊임없이 그를 설득했다. "배우는 결국 시나리오로 설득해야 한다"는 이정재의 말은 옳았다. 정우성은 '사고초려' 끝에 작품에 합류하게 됐다.
"두 사람이 한 작품에 출연한다는 건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거든요. 관객들이 기대하고 있는 바도 있으므로 '잘 만든 작품'이어야 한다는 짐이 생겨요. 제가 '보호자'로 이미 경험해보니 연출과 연기를 동시에 한다는 게 참 힘든 일이더군요. 여기에 팬들의 기대까지 한 몸에 받아야 한다면 이정재 씨의 부담이 커질 거로 생각했어요. '두 가지를 다 해내기에 버겁지 않겠냐'고 하니 정재 씨도 이해하고 다른 배우를 찾더라고요. 그러다가 다시 '함께하자'고 이야기가 나와서 '그렇다면 후회 없이 해보자'고 했죠. 한 바구니에 담긴 달걀이 다 깨질지언정 후회 없이 해보자고요. 우리끼리 도취하는 작품이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정재와 정우성의 노력은 통했다. '헌트'는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7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정재 감독이) 후반 작업하실 때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으시더라고요. 완성된 후에 보여주고 싶어 하는 의지가 느껴져서 저도 칸 영화제 상영까지 기다렸어요. 칸에서 '헌트'를 처음 보고 참 뿌듯했어요. '나쁜 도전은 아니었구나' 싶더라고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작품으로 완성된 것 같아요."
정우성은 단순한 주연 배우 역할이 아니라 시나리오 전반에 참여하며 '헌트'와 '김정도' 역할에 힘을 실었다.
"애초 '헌트'는 배우 관점에서 접근한 시나리오가 아니에요. 시나리오를 '좋다' '나쁘다'로 바라보지 않았어요. 최종 결정도 배우 처지가 아니라서 '김정도' 역할에 매력을 느껴서 선택하고 출연했다기보다 우리가 함께하는 영화 안에서 '김정도'는 어떤 인물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러다 보니 '박평호'도 '김정도'도 각각 우리 안에서 닮은 점들이 발견되는 거 같아요. 혼자 존재감을 드러내고 부각하기보다는 (이정재와) 부딪칠 때 형성되는 기류에서 '김정도'가 만들어진다고 봐요."
군인 출신의 '김정도'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이다. 정우성은 "자신이 속한 조직과 사회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서 환멸과 딜레마를 느끼는 인물"이라고 해석했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집단 안에서 환멸을 느끼고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딜레마를 느끼는 인물이에요. '잘못된 궤도를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데서 형성된 신념은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억울함 그리고 아픔이 담겨있죠. 그 무게가 상당했어요. 평생 그 무게를 느끼며 살아가는 인물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름과 외모에서도 '김정도'의 강인하고 강직한 면을 짐작할 수 있다. 정우성 역시 캐릭터 설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김정도'의 외모"라고 말했다.
"헤어스타일이나 외적인 모습이 '김정도'의 성격을 말해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안기부 요원이 가져서는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빈틈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하거든요. 더욱더 정갈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빈틈이 느껴지지 않게끔 만들어요. 상대가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고, 위화감이 느껴지도록 (캐릭터의 외형을) 설정했어요."
상영 시간(러닝타임) 내내 '김정도'는 '박평호'와 부딪치고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정우성은 '박평호'와의 액션신에 관해 "아이고아이고 액션"이라며 너스레를 덜었다.
"둘 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요. 하하하. 찍는 내내 '아이고아이고' 했어요. 저는 우리의 액션을 '아이고아이고 액션'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김정도'와 '박평호'는 각자 신념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에 (액션이) 단단하게 느껴지기를 바랐어요. 어떤 면에서는 닮은 면도 드러나야 했고요. 그런 게 액션에서 고스란히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태양은 없다'로 인연을 맺어 오랜 시간 우정을 나눈 정우성과 이정재. 오랜 동료이자 친구지만 감독과 배우로 만났을 때는 또 다른 인상을 남겼을 터.
"연기와 연출을 함께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요. 그저 정재 씨가 지치지 않기를 바랐어요. 현장에서 귀를 열어놓고 있는 감독이기를, 자신의 선택에 따른 고뇌와 외로움 등 감정적 무게를 올곧이 받아들이기를 응원했죠. 물론 그 무게를 다 받아내고 이겨내주었고요.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으로 참 좋았어요."
정우성 역시 장편 영화 '보호자'를 준비 중인 상황. 누구보다 연기와 연출을 병행하는 괴로움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정재보다 먼저 영화 제작과 연출 등을 경험한 정우성인 만큼 이정재를 위해 어떤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는지 궁금했다.
"그저 옆을 지키고 있는 게 가장 큰 응원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먼저 연출을 경험해보았다고 해도 여기는 이정재 감독의 현장이니까요. 함부로 말을 보태는 게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혼돈과 혼선을 빚을 수 있기 때문에 '이정재다운 현장'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옆을 지키고 있었죠. 너무 힘들 때 기댈 수 있을 정도로 거리를 두고 옆에 있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정우성은 이정재를 두고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친구"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만나 오래도록 신뢰한 친구라는 것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묻어나왔다.
"평생 벗이죠.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위안도 되고요. 그렇게 서로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시간이 이어진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정우성은 "최선을 다한 결과물인 만큼 더 많은 분이 봐주길 바란다"고 거들었다. 오래도록 고민하고 또 온 마음을 다한 작품인 만큼 많은 관객이 찾길 바라며 홍보 또한 진심으로 임하고 있다.
"더 많은 분이 봐주시길 바라요. 그래서 나갈 수 있는 건 다 나가보자고 했고요. 유튜브 채널이며 TV 채널까지 열심히 나가고 있습니다. 하하. 새로운 채널을 찾을 때마다 팬 분들이 재밌어해 주셔서 우리도 좋아요. '오랜만에 함께 하길 잘했네'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정우성, 이정재 배우 넘 좋아요
헌트도 잘 보았고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