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서로 다른 시중은행이 한 점포를 공유하는 형태의 '공동 점포'가 문을 열 예정이다. 한 건물 속 같은 층에서 두 은행의 직원들이 나란히 업무를 보는 방식이다.
지난해 8월 하나은행과 산업은행이 업무협약을 맺고 영업점과 ATM을 공유한 사례는 있지만 이렇게 은행들끼리 아예 공동점포를 구축하는 것은 국내에선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 서비스의 비대면화, 스마트폰 앱으로 은행 업무를 보는 사람이 늘어나 오프라인 지점을 폐쇄하는 요즘 여전히 오프라인을 찾는 금융 소비자들의 편의성도 함께 고려한 '묘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5년여간 사라진 국내 시중은행 점포 수는 1500개를 넘어섰다. 2016년부터 2021년 10월까지 폐쇄된 국내 은행 점포는 총 1507곳에 달했다. 연도별로 보면 △2016년 273곳 △2017년 420곳 △2018년 115곳 △2019년 135곳 △2020년 332곳 △2021년 1~10월 238곳 등이었다.
◆ KB-신한·하나-우리 따로 또 같이 '맞손'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4월 중 경기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에 공동 점포를 내기로 했다. 이 지역은 현재 두 은행의 지점이 없는 상태다. 하나은행 수지신봉지점이 지난해 9월 13일 문을 닫은 데 이어 우리은행 신봉지점도 같은 해 12월 30일 자로 폐쇄됐다.
두 은행은 옛 우리은행 신봉지점 자리에 165㎡(50평) 규모의 영업 공간을 확보하고, 각 은행이 절반의 공간을 사용하기로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공동 점포 개설 배경에 대해 "비대면 금융 확산 등에 따라 대면 은행 지점이 줄어 불편을 겪는 계층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업계에서 '리딩뱅크'를 두고 라이벌 관계인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상반기 공동점포 운영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 상반기 안으로 경북 영주 등에 공동점포를 설치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당초 영주에서만 시범 운영하기로 논의됐지만 사업 범위를 넓혀 2~3곳을 추가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동점포에 관한 논의는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인구가 적은 지방 지점을 공동 운영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은행 공동점포 시범 운영 검토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됐다. 국민은행 측이 신한은행에 공동점포 운영 방안을 전달했고, 신한은행이 공동점포를 확대 운영하는 방안을 역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 우체국 점포도 대안으로 급부상
전국 우체국 지점에서 올해 안에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입출금 및 송금 등의 업무를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 등 4개 은행, 우정사업본부, 금융위원회는 국내 우체국 전 지점이 입출금이나 송금과 같은 은행의 단순 업무를 대행할 수 있도록 한다는 데에 최근 공감대를 이뤘다. 은행과 우정사업본부가 위탁 업무 범위와 일정 등을 최종 합의하면 올해 안에 우체국에서 은행의 업무를 시작할 수 있도록 시스템 연계 등 작업에 나서게 된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올해 안에 몇 개 우체국이 시스템적으로 입출금과 같은 간단한 업무를 대행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다만 아직 은행과 우정사업본부가 세부적 합의에 도달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 시행 일정 등에 대한 논의는 좀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금융위 관계자도 "우정사업본부와 은행권의 업무 위탁 논의가 지난해까지 이견을 보였으나 최근 진일보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시중은행과 은행연합회,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부터 태스크포스(TF)를 구성, 우체국에 은행의 업무 일부를 위탁하는 사안을 두고 논의해왔다. 영업점을 폐쇄하려는 은행과 수익을 늘리려는 우정사업본부 입장에서는 이런 업무위탁이 서로에 유리하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가 은행 업무를 우체국 모든 지점에 위탁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간 논의는 답보 상태였다.
은행은 점포를 주로 폐쇄하고 있는 지방에서만 우체국이 업무를 대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우체국도 은행과 같이 예·적금 상품을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 대행 지점이 늘어나면 그만큼 고객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행 수수료를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문제도 걸림돌 중 하나였다.
이번 업무협약에 가장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은행은 신한은행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체국에 단순히 업무를 위탁할지 아니면 우체국 안에 점포를 설치해 공동지점을 운영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 미국·영국 등 해외에서는 어떻게
금융권 점포폐쇄는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외 주요국의 경우 1990년대 후반부터 오프라인 점포 수가 점진적으로 감소함에 따라 점포폐쇄가 지역경제와 가계, 소상공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국토 면적이 넓은 미국이나 호주의 경우 도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교외지역이나 격오지의 점포폐쇄로 인해 일정 거리 내에 금융기관 점포가 존재하지 않는 '무점포 지역'과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 교외지역 주민과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 점포폐쇄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는 이해집단을 중심으로 우려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내 상업은행과 신용협동조합, 저축은행, 저축대부조합의 점포수는 2008년 10만2630개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1년 말에는 8만8926개의 점포만 영업하고 있다. 연평균 1300개 점포가 감소한 셈이다. 이 가운데 은행과 저축은행의 경우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부터 감소 폭이 확대돼 2019년 1391개였던 점포의 순감 규모가 2020년에는 2284개로 확대됐다. 캐나다도 2016년 6190개였던 은행점포가 2020년에는 5783개로 감소했다.
영국의 경우 2015년에는 1만745개였던 은행점포가 2021년에는 6965개로 감소했다. 주택금융 분야에서 은행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는 주택금융조합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5년 1930개였던 주택금융조합 점포는 2021년 1840개로 줄었다. 호주 역시 2017년 6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지역 은행점포가 2471개에서 1896개로 감소했다. 전체 은행점포는 5816개에서 4491개로 줄었다. ATM기기 역시 같은 기간 동안 1만3814개에서 7757개로 감소했다.
이에 영국과 일본 등 해외에서는 이미 공동점포를 하나의 대안으로 운영하며 점포 폐쇄 환경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은행 점포 폐쇄 대안으로 등장한 공동점포'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2019년 중소기업, 소호(SOHO) 대상의 공동점포 '비즈니스 뱅킹 허브(HUB)'에 이어 지난해 4월부턴 일반고객 대상의 '뱅크 허브'를 2개 지역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다. 각 허브의 5개 은행은 1주일 중 하루씩 순서대로 대면서비스를 제공하며 입금 및 지급 등 간편업무는 허브가 위치한 우체국에서도 처리하도록 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