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막대한 이자이익을 바탕으로 올해도 역대급 실적을 거둘 것이라는 전망에 '울며 겨자 먹기'로 소상공인에 대한 자금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일단은 서민과 취약계층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상생금융 지원이 2년째 이어지자 정례화 가능성에다 밸류업 프로그램과 배치되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조용병 은행연합회장과 20개 은행장들은 23일 김병환 금융위원장,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간담회를 열고 '은행권 소상공인 금융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은행들은 '이자 장사'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겉으로는 적극 협조하는 모습이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일단 올해 사상 최대 연간 실적이 예상돼 상생금융 자체에 반기를 들 수는 없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의 올해 연간 순이익 전망치는 총 16조9245억원으로 지난해(15조1367억원)보다 11.8%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2022년 고금리 상황에서 거둔 사상 최대 실적(15조6503억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그러나 이런 사회공헌 압박이 매년, 매 정권마다 반복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우려가 크다. 금융당국은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돕고자 은행들이 뜻을 맞춰 시행하는 것으로 정례화 계획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상생금융이 매년 고정비용으로 인식되면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하다.
정부 주도로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배치된다는 의견도 거세다. 순이익이 줄면 그만큼 배당 여력이 감소하는 데다 내년에는 금리 인하기에 접어드는 등 경영 환경도 악화될 수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단기적으로는 은행권에서 부담으로 느낄 수 있다"면서도 "(소상공인들이) 성실하게 상환하면 연체나 부실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은행 건전성과 경제 전반의 부채 리스크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상생금융이 '연례행사'가 되면 밸류업 계획에 따른 주주환원 확대 문제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은행권 상생금융안이 다른 금융업권으로 번질지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대형 손해보험사 실적이 사상 최대 수준이어서 자동차보험을 인하하고 실손보험료 인상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상생금융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지난 17일엔 8개 전업카드사들이 3년간 가맹점 카드 수수료율을 낮추기로 결정한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기순이익이 늘어난 만큼 사회공헌 관련 지원액을 확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방식만 달리하고 매년 상생금융을 갹출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며 "내년에는 경기 침체에 정국 불안이라는 이중고가 기다리고 있어 상생금융 재원 마련에 대한 부담감이 작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