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동남아시아 항로 운임을 담합한 국내외 해운사 23곳에 과징금 962억원 처분을 내렸다. 조사 4년 만에 내놓은 결론이다. 애초 8000억원대 부과를 추진했지만 해운업계와 관련 부처 반발에 밀려 처분액이 크게 쪼그라들었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18일 "국내외 23개 사업자가 해운법상 요건을 준수하지 않으면서 한국- 동남아 항로에서 운임을 담합한 행위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약 962억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과징금 처분을 받은 해운사는 HMM(옛 현대상선)·고려해운·SM상선·팬오션 등 국적선사 12곳과 대만 완하이라인스LTD·싱가포르 씨랜드머스크아시아PTELTD·홍콩 골드스타라인LTD 등 외국적선사 11곳이다.
공정위가 이번 사건을 조사한 건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목재합판유통협회가 2018년 공정위에 국내 해운사 담합 의혹을 신고하자 조사가 시작됐고, 외국선사도 조사 대상에 넣었다. 지난해 5월에는 국내외 해운사 23곳의 짬짜미 혐의를 인정하며 해당 기업에 검찰 공소장에 해당하는 심사보고서를 보냈다.
심사보고서에는 이들 업체가 2003~2018년 563차례 자체 회의를 열고 총 122회에 걸쳐 담합했다며 8000억원 상당 과징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일부 해운사에 대한 검찰 고발 의견도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했던 공정위 입장은 지난 12일 열린 전원회의를 거치면서 달라졌다. 당사자인 해운업계는 해운법상 적법한 절차에 따른 공동행위이고, 최초 신고자인 목재협회도 신고를 철회하고 선처탄원서를 냈다며 공정위 심사보고서에 반발했다. 지난 13일 해운협회 등은 공정위가 일본 등 선진국 대형 해운사는 뺀 채 국내선사와 중소형 외국선사만 징계 대상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 역시 위법한 행위가 아니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국회 소관 위원회도 해운업법 개정 추진 등으로 공정위를 압박했다.
결국 전원회의는 과징금 규모를 962억원으로 대폭 낮췄다. 조성욱 위원장은 "선사들 공동행위가 해운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가 되려면 일정 요건을 준수해야 하는데 120차례 운임 합의는 그렇지 못했다"며 "따라서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에 해당한다"고 제재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구체적인 과징금 산정 방식 등은 공개하지 않으며 "과징금 수준은 산업 특수성 등을 충분히 고려했다"고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