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동차연구원은 ‘2022년에 주목할 글로벌 자동차 산업 5대 트렌드’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올해 자동차 산업이 커다란 변화에 직면할 것이라 예측했다.
◇글로벌 자동차 산업 가치사슬 변화
지난해 7월 발표한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는 이르면 2023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온실가스 배출규제가 심한 국가에서 규제가 덜한 국가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현상을 부추길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외국 완성차 업체들에 지분 100%로 승용차 제조업을 할 수 있게 한 지분 제한 폐지도 주목할 점이다. 외국계 기업의 중국 공급망 이탈을 방지하면서 중국 중심의 산업 가치사슬 형성이 목적이라는 판단이다.
특히 원자재 이슈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리튬이차전지 음극재 재료인 흑연과 모터 소재인 희토류 등이 수요 급증으로 원료 부족 리스크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다. 중국의 경우 이러한 리스크를 부각시켜 ‘중국 희토류그룹’을 출범, 공급망 통제권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역시 리튬이차전지 양극재 핵심 원재료인 니켈의 수출통제에 나서고 있다.
장대석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친환경차 신산업을 선점하기 위한 주요국의 자국우선주의 산업 정책과 해외 투자유치 정책 등 글로벌 시장의 가치사슬 변화부터 주요 원자재 수급 불안 및 에너지 위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세계적인 공급망 디커플링(탈동조화) 기조에 제조강국인 우리나라는 대외 공급망 리스크에 노출, 정부와 업계는 자원 부국의 원자재 수출 통제와 유럽 내 에너지 수급 위기 등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본격 시험대에 오르는 전기차 산업
지난해 친환경차 판매량은 1000만대를 돌파했으며, 전기차는 약 430만대로 전년 대비 약 93% 성장이 점쳐진다. 특히 테슬라의 경우 2020년 49만4000대 규모에서 지난해 약 94만대로 2배 가까이 판매 신장을 이뤄냈다. 이는 손익분기점 지표인 규모의 경제(일반적으로 공장당 연 30만대)를 달성, 전기차 제조업의 성공 가능성을 입증한 수치다.
그러나 전기차 가격 저감 지연과 친환경성에 대한 재평가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주요 원자재 가격 인상에 전기차의 가격 저감은 기존 예상보다 늦춰질 전망이며, 각국의 구매보조금 정책 방향에 따라 일부 국가에서는 판매량 급증세가 꺾일 수 있다.
여기에 EU, 중국, 일본 등은 탄소중립 관련 제도화에 앞서 자동차 생산-활용-폐기·재활용 등 종합적인 환경영향을 평가하는 전주기평가(LCA)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LCA 결과 전기차의 친환경성 우위가 뚜렷하지 않다면 완성차 기업들은 전기차 주력화 시점을 늦추고 단기적으로 하이브리드차 등으로 수익성을 제고할 가능성이 있다.
양재완 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주요국의 탄소중립 정책에 업계 호응이 더해지면서 자동차 전동화가 탄력을 받고 있지만, 전기차 가격 저감 지연부터 전기차 친환경성·경제성에 대한 재평가 가능성이 상존한다”며 “올해는 산업의 다양한 목소리가 부상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내수 중심으로 성장해온 중국 자동차 시장이 성장 정체기에 도달하면서 해외 진출 움직임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중국은 선진국 대비 추가적인 차동차 보급 여력은 높지만, 경제성장률 감소와 소득 양극화 등에 내수 판매량은 2017년 이후 뚜렷한 성장세 없이 연 2000만대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또한 차 생산 설비에 과잉 투자가 발생하면서 유휴설비 가동률 제고를 위한 조치가 필요해진 시점이다. 중국 정부도 수출 중심의 산업 전환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체리차, 지리차, 창청차 등이 가시적 수출 성과를 얻었고, 중국 자본으로 탄생한 MG와 폴스타 등이 글로벌 브랜드로 명성을 얻고 있다.
일반적 통념과 달리 중국 일부 브랜드는 주요 선진 기업과 대등한 수준까지 전기차 기술력을 가졌다는 평가다. 소비자 평가가 냉혹한 내수시장의 생존 경쟁을 통해 상품성을 한층 끌어올렸다. 일부 기업들은 상품성을 인정받아 브랜드 이미지를 급격히 개선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아울러 중국 시장의 높은 구매력을 발판으로 글로벌 완성차 기업과의 R&D 협력에 나서는 등 궁극적으로 글로벌 자동차 가치사슬의 지분 확대를 도모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이호중 책임연구원은 “수요, 공급, 정책의 3가지 요인이 맞물려 중국 로컬 브랜드 자동차의 수출 여건이 성숙한 상태”라며 “독자 진출이나 글로벌 협업을 통한 세계시장 진출 등 올해 주요 완성차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 존재감이 분명해질 전망”이라고 전했다.
◇차별화에 고심하는 완성차 기업
과거 완성차 업체들은 파워트레인·섀시 등 자동차 핵심요소의 독자적인 설계와 생산역량을 바탕으로 제품 차별화를 꾀했지만, 이제는 기술 변혁기에 제품 차별화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파워트레인 전동화와 전장부품·SW 적용 확대 등 자동차 업계에서 초대형 부품기업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져 완성차 기업 주도의 제품 차별화 여지가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자동차 제조 원가에서 전장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30년 약 50%까지 높아진다는 전망도 나온다.
고성능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의 경우 차별화한 동력성능과 감성적 특성을 부여한 제품으로 가격 프리미엄을 누렸지만, 이제는 파워트레인 전동화에 동력성능이 상향 평준화하면서 프리미엄 브랜드는 제품 차별화에 난항을 겪고 있다.
향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콘텐츠를 비롯해 영상 및 음향 시스템, 실내 조명·소재 등을 중심으로 탑승자에게 차별화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경쟁이 한층 심화될 전망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자동차 구매 전 단계에서 차별화 경험을 제공하고자 소비자 접점을 넓히는 동시에 구매 이후 유지보수, A/S 등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시도할 전망이다.
자동차 전장화와 자율주행 고도화를 위한 고성능 반도체칩 탑재가 증가하는 등 자동차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급격히 이뤄지고 있다. OTA 기술을 바탕으로 데이터 기반의 원가경쟁력 강화를 추진한 테슬라의 성공사례는 완성차 업체들의 벤치마킹으로 이어졌다. 주행·부품 데이터를 기반으로 배터리 조합을 변경하거나 부품 통합과 불필요한 사양을 제거하는 등 원가 경쟁력 확보가 이뤄지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의 온라인 신차 판매 확대도 주목할 부분이다. 자동차 주요 부품에 센서를 부착하면서 고장 징후나 잔여 수명 등을 진단하는 PHM 기술 등 온라인 관리 서비스 전환이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문화 보편화 등 전 산업 분야의 디지털화 가치를 확인하면서 자동차 산업에서도 디지털 전환이 대세 흐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 장대석 선임연구원은 “소수 고성능 칩이 자동차 통합제어기능을 수행하는 자동차 전기·전자 아키텍처의 설계 방향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면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제품 개선과 제조 효율화 등 O2O 플랫폼 기반의 비대면 자동차 판매와 관리, A/S 서비스 확대가 이뤄지고 있어 자동차 업계 전반에 디지털 전환이 확산할 전망”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