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의료·건설 전문 법관을 시범 운영하기로 했다. 신속한 재판을 위해 법관 전문성을 한층 높인다는 취지다. 법조계에선 판사의 전문성 향상에 따른 신속·효율적인 재판이 될 것이란 기대와 특정 산업에 대한 친화적 선입견으로 불공정한 재판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교차한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사법행정자문회의는 지난 3일 임시회의를 열고 올해 2월로 예정된 법관 정기인사 관련 논의를 진행했다.
전문 법관 제도는 현행 2~3년씩 순환하는 법관 인사 운용 방식을 바꿔 5~7년간 특정 분야 사건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가사·소년 분야에만 전문 법관이 있다.
법원 내부에선 향후 지식재산권, 행정, 상사, 노동 분야까지 전문 법관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분위기다.
◆"판사는 제너럴리스트?···인식 바뀔 것"
법원 안팎에선 전문 법관 제도 확대에 대해 판사가 5년 이상 한 분야에만 몰두하게 되면 전문성 향상과 더불어 신속한 재판이 가능해질 것이란 긍정적인 반응이 적잖다.
서울고법 A부장판사는 "의사는 소아과, 정형외과 등 ‘전문의’가 있다 보니 한 분야에 대한 경험이 많고 노하우가 쌓인다"며 "판사도 한 분야의 사건을 다양하게 맡게 되면 경험과 전문성이 쌓여 결국 신속한 재판이 진행되는 등 재판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허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B변호사는 "전문 법관이 확대되면 판단의 예측성이 커지고 법리의 통일적 해석이 가능해진다. 신속한 재판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원 내부에선 전문 법관이 확대되면 '판사는 제너럴리스트'라는 인식이 깨질 것으로 본다.
서울중앙지법 C판사는 "법관에 대해 제너럴리스트로 이해하는 것이 전통적 견해였다"며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대응 측면에서 전문 법관은 특정 분야의 분장 행태나 용어, 실무 등을 이해하는 데 신속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재경지법 D부장판사는 "사회는 점점 전문화·고도화하는데 재판부는 2~3년마다 보직이 바뀌니까 ‘판사는 제너럴리스트’라는 한계는 계속 언급돼 왔다"며 "전문 법관 확대라는 방향 자체는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
◆"편향적 심리 방지 위한 지침 필요"
반면 법조계 일각에선 전문 법관 제도에 대해 자칫 사법부가 편향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E변호사는 "한쪽에만 치우치다 보니 일부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자칫 편향적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다"며 "건설의 경우 '친건설적'인 사고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 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모임 부대표인 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는 "의료 분야는 일반인이 판단하기 어려운데, 의료 전문 법관이 의료인 의견을 들으며 의료인 쪽에 편향되게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크다"고 전했다.
이어 "사건을 조언해주는 전문가 의견에 좌우되지 않도록 신체 감정, 진료기록 감정 예규 등 제도 도입에 앞선 지침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