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는 3일 달러 대비 필리핀 페소 가치가 12월 23일부터 31일까지 2% 급락하며, 4분기 들어서 12월 23일 전까지 올랐던 1.9%를 모두 반납했다고 전했다. 매체는 "아시아 통화 중 비교적 안정적 가치를 이어나가던 필리핀 페소는 아시아 통화 중 가장 좋지 않은 실적을 기록하는 통화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일본 증권사 노무라홀딩스와 영국 은행사 바클레이스 등 전문기관은 필리핀 페소의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4분기 기준으로 달러 대비 주요 아시아 통화들의 가치는 △필리핀 페소 0.06% 상승 △말레이시아 링깃 0.50% 승 △태국 바트 1.31% 상승 △베트남 동 0.3% 하락 등의 흐름을 보였다. 다만, 12월 기준으로 달러 대비 주요 아시아 통화들의 가치는 △필리핀 페소 1.15% 하락 △말레이시아 링깃 0.86% 상승 △태국 바트 1.42% 상승 △베트남 동 0.6% 하락을 기록했다.
문제는 이같은 흐름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바클레이스는 6월 말까지 페소가 1달러당 51.50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노무라는 3월 말까지 51.7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연말연시가 지나 달러 송금액이 다시 줄어들며 페소는 1월에 가치가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필리핀 페소 약세의 주요 이유로는 필리핀 중앙은행의 정책과 경상수지 적자 증가가 꼽힌다. 필리핀 중앙은행은 지난 12월 16일 코로나로 인해 침체된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미국을 따라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대신 현재의 2% 수준에서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세)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폭넓게 전망되고 있는 가운데 신흥국 필리핀의 금리 동결의 페소화 가치의 하락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 달러화 대비 페소 가치의 하락은 필리핀의 수입 물가를 높이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크게 할 수 있다.
경상수지 전망도 역시 흑자에서 적자로 하향 조정되면서 필리핀 페소 약세를 부추겼다. 로이터에 따르면 필리핀 중앙은행은 지난 12월 10일 2021년 필리핀 경상수지가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인 40억 달러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은행은 이전에는 올해 경상수지가 GDP의 0.9% 수준의 흑자일 것으로 내다봤다. 2022년에는 GDP의 2.3%에 달하는 99억 달러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GDP의 0.3% 수준의 적자를 예상했던 지난 전망치에서 하향 조정했다.
아시시 아그라왈 바클레이스 싱가포르 외환·신흥국 거시정책 전략가는 "신흥국 통화 가운데 페소의 가치는 뒤쳐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밝혔다. 그는 악화되고 있는 경상수지와 필리핀 중앙은행이 더디게 정책을 정상화할 것이라는 전망은 페소에 더욱 부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