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배달음식 HMR 전성시대에 요리의 가치를 외치는 이유

2021-12-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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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선 샘표식품 대표이사 사장[사진 = 샘표식품]


한해가 저물어갈 즈음 우리 회사에서 선물처럼 내놓는 제품이 있다. 매년 봄에 시작되는 ‘맛있는 추억을 그리다’ 캠페인에서 대상을 받은 그림으로 꾸민 한정판 간장이다. 동심이 담긴 순수한 그림을 통해 집밥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어 이맘때면 기다리는 분들이 적지 않다. 올해는 장태양 어린이의 ‘우리집 밥도둑 계란장’ 그림이 뽑혔다. 밥상에 계란장이 올라오자 좋아서 눈이 달걀처럼 동그래진 아이와 그런 아이를 흐뭇하게 지켜보는 어른들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올해는 유독 달걀을 소재로 한 그림이 많았다. 참가작을 분석해보니 코로나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 외식이나 여행지에서의 추억은 줄고, 집에서 요리하는 그림의 비중이 1.5배 증가했다. 아이들은 음식의 맛이나 가짓수보다 달걀요리 하나라도 가족이 함께 만들어 먹은 그 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는 것 같다.
‘맛있는 추억을 그리다’ 캠페인을 진행한 지 벌써 9년째다. 가족이 같이 요리하고 즐기는 식사의 가치를 알리는 이 캠페인이 시대 흐름에 맞지 않다고 보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지금이야 팬데믹으로 인해 집에서 요리하는 인구가 다소 늘었을지 몰라도, 요리하는 사람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요리를 대신할 배달음식이나 밀키트, 가정간편식(HMR) 시장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집에서 요리를 안 하게 될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패스트푸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슬로푸드가 역(逆)트렌드로 조명을 받았듯 배달음식과 HMR 수요가 급증할수록 요리의 가치는 더 높아질 것이다. 사 먹고 시켜 먹는 음식이 편하긴 하지만 쉽게 물리기도 한다. 그래서 귀찮지만 직접 요리를 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요리하는 영상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배달음식과 HMR의 인기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겠지만 가족이나 자기 자신을 위해 요리하는 행위는 현대인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문제는 요리를 노동으로 여기는 인식이다. 먹는 것에만 가치를 두면, 요리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노동이고 수단에 불과하다. 하지만 요리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을 만큼 장점이 많다. 우선 미각 발달에 도움이 된다. 식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알아야 음식 맛을 알고, 미식도 즐길 수 있는 법이다. 또한 요리를 하면 자존감과 사회성이 높아지고, 우울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무엇보다 요리를 하다 보면 스스로를 챙기고 보살핀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을 더 넣고 뺄지 정하며 창의성이 발휘되고 완성된 요리에 성취감을 맛보기도 한다. 더 나아가 가족이 함께 요리하면,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특히 아이들과 요리하면 정서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어휘력과 논리적 사고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요리는 맛있고 유쾌한 위로와 힐링의 경험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쉽게 요리하고, 요리를 부담 없이 즐기면 좋겠다. 그러려면 완성된 음식을 먹을 때만이 아니라 음식을 만드는 과정도 즐거워야 한다. 어떻게 하면 요리가 즐거워질까? 식품기업으로는 드물게 매출의 3~4%를 투자해 연구하는 주제가 바로 이것이다. 셰프와 인문학자, 공학자 등으로 구성된 우리맛연구팀은 수년째 소비자가 요리할 때 느끼는 어려움, 특히 한식을 요리할 때 외국 음식에 비해 손이 많이 가고 오래 걸린다고 느끼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육수 없이도 깊은 맛을 내는 법, 채소 요리에 감칠맛을 더하는 법, 팬이나 냄비를 여러 개 쓰지 않고도 밑반찬을 만드는 법, 채소를 절이지 않고도 김치를 담그는 법을 찾아 연구하고,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단순히 잘 팔릴 것 같은 제품을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면 외국인들이 ‘매직소스’라고 극찬하는 순식물성 콩 발효 에센스 연두, 조리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새미네부엌 같은 제품을 내놓지 못했을 것이다. 한식의 근간이자 채소 위주의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장류를 더 많은 사람이 즐기고, 누구나 요리하며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구했기에 세상에 없던 제품들을 선보일 수 있었다.

트렌드를 좇아가는 건 더 이상 트렌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기 상품을 따라 만드는 데 급급해서는 200년, 300년 장수기업이 나올 수 없다. 올해 창립 75주년을 맞은 샘표는 요리와 음식 본연의 가치를 중시하는 식문화기업으로 꿋꿋이 나아갈 것이다. 신선한 식재료로 좀더 쉽게 요리하는 문화를 만들어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업그레이드하고, ‘우리맛으로 세계인을 즐겁게’라는 비전을 실현할 수 있도록 연구를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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