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中레노버]예상 밖 '상장철회'로 드러난 민낯

2021-10-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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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촹반 상장 포기, 배경 언급 없어

부실한 재무구조, 혁신 부족 '발목'

R&D 투자, 커촹반 평균치 4분의1

상장심사 통과 기준미달 뒷말 무성

체질개선 노력 10년째 제자리 한숨

[사진=바이두]


세계 1위 PC 제조업체인 레노버(롄샹·聯想)가 상하이 증시에 상장하려던 계획을 스스로 접은 데 대한 뒷말이 무성하다.

최근 중국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을 향한 당국의 고강도 규제가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주로 거론되는 이유다.
하지만 부실한 재무구조와 혁신성 부족 탓에 상장 심사 통과를 자신하기 어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쨌든 거액의 자금을 유치해 사업 다각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전략은 궤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글로벌 PC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달한 데다, 새로운 성장동력도 딱히 눈에 띄지 않아 레노버가 기로에 선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주목 받은 커촹반 상장 돌연 철회

지난달 30일 상하이증권거래소는 공고를 통해 레노버가 중국주식예탁증서(CDR) 발행 방식으로 커촹반(科創板·과학혁신판) 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CDR는 해외에 상장된 중국 기업의 주식을 중국 본토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경쟁력 있는 기업을 중국 내로 재유치하기 위해 도입됐다.

레노버는 이미 홍콩에 상장돼 있다. 앞서 레노버는 지난 1월 커촹반 상장 신청 계획을 공시한 바 있다.

그런데 국경절 연휴 직후인 지난 8일 상하이증권거래소는 레노버가 상장 신청을 철회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10일 레노버도 상장 철회를 공식 인정했다. 레노버 측은 "회사의 업무 규모와 복잡도를 고려할 때 상장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투자설명서 내의 재무정보가 효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을 내놨다.

이어 "최근 상장 등 자본시장 관련 상황을 신중히 고려한 뒤 내린 결정"이라며 "(상장 철회가) 회사 재무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레노버는 이번 커촹반 상장으로 100억 위안(약 1조8436억원)의 신규 자금을 유치해 인공지능(AI)과 클라우드 등 분야의 인프라 확충을 추진할 예정이었다.

회사의 미래가 달린 계획을 손바닥 뒤집듯 변경하니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더구나 중국 당국이 홍콩에 상장된 중국 기업의 본토 추가 상장을 독려하는 가운데 레노버가 첫 사례가 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이례적이었다.
 

양위안칭 레노버 회장 겸 CEO [사진=바이두]


◆포기인가 낙제인가, 혁신성 부족 걸림돌

이에 대해 레노버의 재무구조로는 상장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퍼스트시프론트펀드의 양더룽(楊德龍)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신문주간에 "재무 수치가 좋지 않았던 게 기업공개(IPO)를 중단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투자설명서를 살펴보면 2018~2020년 레노버의 부채비율은 각각 86.3%, 87.4%, 90.5% 등으로 상승세를 그렸다.

양 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 기업 등 원래 레버리지 비율이 높은 업종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상장사는 부채비율이 60%를 초과하지 않는다"며 "(레노버의 부채비율이) 90%를 넘는 건 경영 리스크가 비교적 크다는 걸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레노버의 경쟁 상대인 대만계 PC 제조업체 에이서의 경우 부채비율이 68.4% 수준이다.

유동화가 가능한 순자산(234억5000만 위안)에 비해 무형자산(552억3000만 위안) 규모가 현저히 큰 것도 부정적인 변수다.

무형자산 중 영업권(영업 노하우나 브랜드 인지도 등 식별이 어려운 자산)으로 분류된 금액만 318억5000만 위안에 달한다.

베이징안터법률사무소의 따이웨창(代月强) 변호사는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무형자산은 시장 경쟁력을 드러내는 수치이지만 레노버처럼 영업권 비중이 과도하게 높은 건 기술력이 브랜드 인지도에 못 미친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부실한 재무구조와 더불어 혁신성이 부족한 기업 문화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기준 커촹반 상장사 중 상위 100개 기업의 평균 매출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11.97%로 집계됐다. 레노버는 이 수치가 3% 정도로 4분의1에 그친다.

2018~2020년 레노버의 R&D 투자액은 각각 102억 위안, 115억 위안, 120억 위안이다. 총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8%, 3.27%, 2.92%다.

중국 싱크탱크 판구연구소의 장한(江澣) 고급연구원은 "레노버는 마케팅에 의존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R&D 역량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돼 왔다"며 "정부가 커촹반 상장사에 요구하는 건 핵심 기술"이라고 말했다.

이어 "레노버는 이 요구 조건과 거리가 멀다"며 "국가의 전체적 요구를 감안해 스스로 상장을 철회한 것 같다"고 전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설립을 지시한 커촹반은 '중국판 나스닥'을 표방한다. 경쟁력 있는 첨단기술 기업을 육성하는 게 과제다.

결국 상장 철회가 자발적 결정이든 혹은 당국이나 거래소의 압박 때문이든 간에 상장 심사 문턱을 넘기에는 기준 미달이었다는 얘기다.

◆'하드웨어 기업' 이미지 벗을 수 있을까

지난해 글로벌 PC 시장 내 레노버 점유율은 24%로 1위다. 2013년 이후 1위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전체 매출 중 PC 및 스마트 장비 비중은 90%에 육박한다. 데이터센터와 소프트웨어 사업 비중은 10% 미만이다. 전형적인 하드웨어 판매 기업이다.

류촨즈(柳傳志) 창업자의 뒤를 이어 레노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양위안칭(楊元慶)은 체질 개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2012년 'PC+' 전략을 외치며 모토로라의 휴대폰 사업부를 인수했고, 2017년부터는 모바일과 데이터센터 경쟁력 강화를 강조해 왔다.

클라우드와 사물인터넷(IoT), AI 분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하지만 전체 매출 중 각 사업 분야별 비중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푸시연구소 창립자인 리샤오둥(李曉東)은 "밖에서 보기에 레노버는 여전히 하드웨어 기업"이라며 "매출 구조나 대중의 인식을 감안할 때 (체질 개선 노력이) 특별한 성공을 거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냉정하게 짚었다.

장한 연구원도 "영업에 특화된 유전자를 가진 기업이 R&D 기업으로 전환하는 건 쉽지 않다"며 "장기간에 걸쳐 비용을 투입하고 단기간 내에 실적을 내려는 유혹을 극복할 때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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