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은 원래 유명해지는 거 안좋아 합니다. 신문에 나고 이런 거 딱 싫어 합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마찬가집니다. 그냥 조용히 있다가 승진하고 대법관 되고...그런 거 제일 좋아해요. 가능만 하다면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재판만 하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대법관 (될수 있으면)되는 걸 제일로 치는 사람들이에요”
언젠가 판사 출신의 어떤 변호사가 공개석상에서 한 말이다. 정치적으로 좀 민감한 사건일수록 법리적으로 맞는 판결을 하는 것이 좀 튀더라도 판사 스스로에게도 더 좋은 일이 아니겠냐, 그러니 이번 사건에서도 기대해 봐도 되는 것 아니냐는 필자의 희망 섞인 전망에 그는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고 손사레를 치며 그렇게 말했다.
당시 어떤 사건을 거론하고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는 없지만, 며칠 뒤 선고된 재판의 결과는 튀고 말고를 따질 필요조차 없었다. 튀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판사 자신의 안위까지 충분히 생각한 판결이라고 평가할 수 밖에 없는 결말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재판의 결과에 대해서는 다른 평가를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판사라는 직업군이 어떻게든 자신을 드러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하는 직군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재판에서 다소간의 (법리상)무리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걸 법리라고 우길 수 있다는 내부자의 폭로(!)는 충격이었다.
“그래도 김명수 Court에서는 다르지 않겠어요?”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필자의 이 한마디는 오히려 그의 쓴 웃음을 더 찡끄리게 만들었다. 그는 어색해지는 공기를 가르듯 “그래야 되겠죠”라고 겨우 예의를 차렸지만 이미 '아니다'는 답은 나온 거나 다름이 없었다.
얼마 전 대법관추천위원회는 이기택 대법관의 후임이 될 대법관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와 하명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 교수, 오경미 광주고법 판사 등을 추천했다. 손봉기 부장판사는 대구지법원장도 역임했고, 하 교수는 판사출신으로 대법원이 주최하는 각종 토론회의 단골 발표자였다. 오경미 판사는 여성판사로서 지지를 받고 있다.
세 사람 다 판사경력을 갖췄고 별다른 흠결이 없으며 특별하게 튀지 않는 사람들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제청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할 사람이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임명제청하고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됐다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인물이다.
“평생 재판만 한 사람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겠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처음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됐을 때 한 말이다. 춘천지방법원장 신분이던 그는 관용차를 타지 않고 기차와 택시 등을 타고 대법원으로 첫 출근을 했다. 아직 대법원장이 아니니 대법원장의 관용차를 사용할 수 없고, 춘천지법의 일을 하러 가는 것은 아니니 춘천지법의 관용차도 쓸수 없는 만큼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좀 뻔해 보이기는 해도 나름 원칙을 지키겠다는 모습이 그럴싸해 보였다. 판사가 재판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재판보다 행정업무를 더 많이하고 정치인이나 기자들을 상대하는게 임무인 법관들이 엄연히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재판만 한 판사’라는 말이 주는 신뢰감도 꽤 무게감이 있었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모든 것이 실망스러웠다는 것은 아니고 평가할 만한 업적도 있었다. 그런데 전임 양승태 대법원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는 건 왜일까?
사법개혁에 힘을 쏟고 있는 국회 쪽 인사들은 오래 전부터 “김명수 Court는 기대할 것 없다. 똑같다”라고 일찌감치 말해왔다. 그럼에도 필자는 희망과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대법관 후보 선임을 계기로 접을 건 접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