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차보다 정년연장'... 글로벌에 역주행하는 현대차 노조

2021-07-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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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BMW· 등 완성차 줄줄이 인력 구조조정... 현대차 오히려 확대

작년 세계매출 4위... R&D 투자 비중 최하

미래 경쟁력 위해 5년간 100조 투자 약속... "혁신 놓치면 도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주요 안건에 대한 대내외 비판이 커지고 있다.

만 64세 정년 연장과 국내 일자리 유지를 위한 미래산업 협약(이하 일자리 협약)을 포함한 임단협 타결을 명분으로 파업까지 불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미래차 전환의 원년으로 관련 인재 채용과 대규모 투자 등을 앞둔 상황에서 ‘제 살 깎기 식’의 악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1일 완성차들이 대기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와 야적장 너머로 울산항이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완성차업계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도 ‘정반대 행보’
19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의 직원(사업보고서 기준)은 2019년 7만32명에서 지난해 7만1504명으로 2.1% 증가했다.

현대차 노조가 관철하려는 고용안정에 부합하는 수치다. 신규 사업 등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제공하려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해 글로벌 주요 완성차업체들이 코로나19와 미래차 전환을 명분으로 줄줄이 구조조정에 나선 것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극명해진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완성차업계는 미국 지엠(GM) 1만4000명, 독일 다임러 2만명과 BMW 1만6000명 등의 인적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올해도 이 같은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 상반기 독일 폭스바겐은 전기차 투자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직원을 감축하며, 엄격하게 비용을 관리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최대 5000명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가 경고했던 ‘전기차 전환으로 인해 글로벌 자동차 산업 종사자 1100만명 중 300만명이 실직할 것’이라는 분석이 현실화된 셈이다. 코로나19까지 맞물리면서 ‘지금이 적기’라는 기업들의 판단도 한몫했다는 평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판매량이 감소한 데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이 30%가량 적게 들어가 인력 감축이 불가피해지고 있다”며 “미래차에 대한 대규모 투자 필요성도 인력 감축의 동력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내외 비판으로 명분 잃었는데 노조 ‘몽니’라는 시각도
올해 임단협에서 만 64세 정년 연장과 일자리 협약을 관철하려는 현대차 노조에 대해 지나치다는 목소리가 안팎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들이 주축을 이룬 사무직 노조 측이 정년 연장보다 공정성 확립을 올해 과제로 내걸었을 정도다. 성과급 산정과 승급 시 산정 기준을 공개해달라는 입장이다.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최근 “MZ세대의 미래임금을 희생해 정년만을 고집하는 노조의 횡포를 막아달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게시자는 올해 노조가 임단협에서 정년 연장을 주장하는 것을 두고 “현대차 노조는 5만 조합원을 대표한다면서 실제로는 향후 몇 년 이내 정년퇴직할 1만여명의 권리를 위해 MZ세대를 버렸다”라고 비난했다.

이건우 현대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조위원장은 “성과금은 합리적 산정 기준을 통해 공정하게 분배돼야 한다”면서도 “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 부담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대차 정년연장은 사측과 노조가 아닌 임직원 간 합의가 필요한 내부 문제”라며 “정년연장이 될 경우 MZ세대 채용 등이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
 

현대차 노조가 5일 울산 북구 현대차 문화회관에서 올해 임단협 관련 쟁의발생 결의를 위한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과거에 발목 잡혀 미래차 경쟁력 뒤처지는 현대차
실제 현대차가 노조로 인해 과거에 발목 잡혀 있는 사이 우리나라의 미래차 관련 인재 확보는 늦어지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한자연)의 산업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혼다는 5년간 미국에서 5만명의 인력을 재교육한다. 미국 포드는 프로그래머 인력을 현재 300명에서 4000명 이상까지 육성할 예정이다. GM의 자율주행 자회사 크루즈는 미래차 인력을 현재 40명에서 2000명까지 늘린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미국은 2019년 기준 친환경차 인력이 25만명, 차량용 소프트웨어 인력이 2만3000명에 이른다. 독일은 자동차산업 엔지니어가 12만6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우리나라의 2018년 기준 친환경차 인력은 4만2000명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래차 산업의 기술인력 수요가 연평균 5.8%씩 증가해 2028년 8만9069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미래차 관련 경쟁력은 크게 뒤처지고 있다.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원천기술의 경우 수치로 확연히 드러난다. 한자연에 따르면 내연기관 부품 산업의 경우 국산화율이 99%에 달하지만, 미래차 부품은 국산화율이 전기차 68%, 수소차 71%,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38% 등으로 낮다.

연구개발(R&D) 투자도 글로벌 자동차 ‘선도자’를 표방하는 것에 크게 못 미친다. KAMA가 세계 13개 자동차그룹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주요 자동차그룹의 R&D 투자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의 지난해 매출액은 1221억 유로로, 폭스바겐(2228억 유로), 도요타(2152억 유로), 다임러(1543억 유로)에 이어 세계 4위였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33억 유로로 세계 8위였고, R&D투자는 36억 유로로 10위에 그쳤다. 특히 매출액 대비 R&D 비중은 2.9%로 최하위를 나타냈다. 현대차·기아를 제외한 모든 자동차그룹이 매출액의 4~6%를 R&D에 투자한 것과 대비된다.

R&D 투자액이 가장 큰 업체는 폭스바겐으로 지난해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139억 유로(매출액 대비 R&D 비중 6.2%)에 이르는 투자를 단행했다. 도요타와 다임러도 각각 86억 유로 수준의 투자를 실시했다. 이들 모두 지난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완성차업체들이다.

정만기 KAMA 회장은 “고부가가치화, 전동화, 자율주행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R&D투자 확대가 중요하다”며 “기업은 R&D 투자여력 확보를 위해 노사화합, 임금안정 등을 통해 비용절감과 영업이익률 제고에 노력하는 한편, 정부로서는 글로벌 기업과의 동등 경쟁 환경 조성 차원에서 장기적으론 대기업 차별적 R&D 지원을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사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현대차의 변화를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2030년까지 친환경차 판매가 전체 신차 판매의 20∼30%(약 5770만대)에 이른다. 레벨 3 이상 자율주행차는 신차 판매의 49%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독일 컨설팅 기업 롤랜드버거는 자동차 업계의 생산 비용에서 전장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16%에서 2025년 35%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대차로서는 한정된 자원을 미래차 전환을 위해 적재적소에 투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임단협에서 현대차 사측이 당초보다 성과금 등에서 크게 양보했지만, 만 64세 정년 연장 등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차그룹은 미래차 전환을 위해 향후 5년간 총 100조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당장 올해부터 2025년까지 5년간 미국에 74억 달러(약 8조1500억원)를 투입해야 한다. 미국을 한국 다음의 미래차 전략기지로 키우기 위해서다. 중국과 인도 등 전략 시장에 대한 투자도 시급한 상태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 팀장은 “현재 한국 자동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잘나가고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미래로 인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혁신의 골든 타임을 놓치면 영원히 도태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현대자동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 가상 쇼케이스.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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