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백신 급한 대만..中엔 '노', 美엔 "쌩큐' 외쳤는데

2021-06-09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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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두 달 전만 해도 대만은 엄청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코로나 19 확진자와 사망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해 왔던 대만은 세계 최고의 방역 모범국이었다. 전염병의 발원지인 중국과 지리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 가장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고 이룬 성취라는 점에서, 그동안 거대한 중국 대륙의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던 대만의 저력이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긍정적 평가가 지난달 초부터 급속히 반전되었다. 감염 경로가 불분명한 집단 감염이 5월 초 발생한 이후 신규 확진자가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5월 22일에는 일일 신규 확진자가 723명까지 급증하였으며, 이달 4일에는 누적 확진자가 1만명을 넘어섰다. 그렇다고 해서 대만이 현재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6월 7일 기준으로 인구 100만명당 확진자 수는 474명, 사망자 수는 11명이다. 우리나라(확진자 2819명, 사망자 38명)와 비교해 보면, 대만의 상황은 양호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에 대한 국제적 평판은 상당히 떨어졌다. 블룸버그가 53개국을 대상으로 매달 발표하는 '코로나19 회복력 순위'에서 대만의 순위가 5월 5위에서 15위로 무려 10계단 하락하였다. 이 순위는 인구 10만명당 확진자, 치명률, 인구 100만명당 사망자, 인구 대비 백신 확보율, 봉쇄 강도, 지역 간 이동성, 경제성장률 전망 등 11개 지표로 측정된다. 대만의 순위를 하락시킨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백신 확보율이다. 5월 기준 대만의 백신 확보율은 0.6%로 우리나라(5.4%)는 물론 일본(3.2%)에도 훨씬 못 미쳤다.
낮은 백신 확보율은 대만 정부의 판단 착오와 중국의 방해 공작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대만에서는 백신을 빨리 접종해야 할 시급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차이잉원 정부는 백신 확보를 위한 국제 경쟁에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뛰어들기보다는 자체 백신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중국의 훼방도 대만의 백신 확보를 어렵게 만들었다.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에 독일의 바이오엔테크는 백신을 대만에 직접 판매하지 않고 중국·홍콩·마카오 판권을 가진 중국 제약사 푸싱(復星)의약을 통해 제공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차이잉원 총통은 중국이 배후에서 대만의 백신 구매를 막았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였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압박은 세계보건총회(WHA)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대만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의 반대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양안 관계가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대만은 차이니스 타이베이란 이름을 가진 옵서버 자격으로 WHA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 비판적인 민진당 정권이 등장한 이후 중국은 대만의 참석을 계속 거부하였다. 올해에는 G7까지 대만의 참석을 공개적으로 지지했지만, 지난달 열린 74차 WHA에서 대만에 배정된 자리는 없었다. 따라서 대만은 방역을 위한 국제공조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차이잉원 정권의 지지율을 떨어뜨린 대만의 백신 부족 문제는 이달 들어 해소되기 시작했다. 대만은 지난 4일 일본으로부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24만회분을 지원받았다. 6일 대만을 방문한 태미 덕워스, 댄 설리번, 크리스토퍼 쿤스 등 미국 상원의원 3명은 백신 75만회 접종분의 지원을 약속하였다. 7월에 자체 개발한 백신이 공급되면, 백신 확보율은 급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롤러코스터와 같이 요동친 대만의 방역에 대한 평가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작년 초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K-방역은 작년 말 일일 신규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서고 백신 확보가 지연되면서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올해 초부터 백신 접종률이 증가하면서 K-방역의 명성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이러한 평가의 변화는 '코로나19 회복력 순위'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지난해 11월 4위로 출발했던 우리나라의 순위는 올해 1월 12위까지 떨어졌었다. 그러나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700명 선을 넘지 않고 백신 접종이 가속화되면서 우리나라의 순위는 5월 5위까지 치솟았다.
순위가 몇 달 동안 급등락을 했다는 사실은 방역의 성과를 단기간에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집단면역 달성을 통한 전염병 통제는 적어도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어느 특정 시점에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단기간에 이뤄진 성과에 도취하게 되면, 나중에 더 큰 피해를 당할 수 있는 문제를 소홀히 취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적 측면에서도 대만 사례는 중요한 교훈을 준다. 중국산 백신을 제공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제안을 거부한 대만은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백신을 지원받았다. 미국과 일본의 백신 지원은 지정학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다. 즉, 대만이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전략에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대만이 미국과 일본에 편승할 경우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대만은 미국의 군사동맹국이 아니다. 따라서 미국이 어느 정도까지 대만의 안전을 보장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확실한 약속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적 측면에서 대만의 대중 의존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양안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와중에도 대만의 대중 수출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20년 대만은 우리나라를 제치고 중국의 최대 수입국으로 등극하였다. 따라서 대만은 중국의 경제 보복에 매우 취약하다.
미국의 백신 외교 이후 대만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상승하고 있다. 대만 문제를 핵심이익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은 미국과 대만의 관계 강화를 좌시할 수 없다. 미·중 경쟁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때 대만은 미국과 중국의 싸움터로 전락할 수도 있다.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안보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대 국제학부 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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