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가상화폐 관련 입법 논의에 대한 단상

2021-06-01 00:30
  • 글자크기 설정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새로운 유형의 자산이 등장하면 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도 뒤이어 기승을 부린다. 이를 보호하는 법은 그제서야 등장한다. 새로운 유형의 자산을 위법행위로부터 보호할 필요성을 뒤늦게 깨닫기 때문이다.
주식도 지금은 일반적인 자산이지만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주식이라는 자산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05년 12월 8일 ‘사설철도조례’를 통해서였다. 우리 법이 주식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늦은 1962년 증권거래법 제정을 통해서였다.

증권거래법 제정 전에도 우리 형법은 사기죄를 처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증권거래법으로 시세조종 등을 규제하는 법을 새로이 마련한 것은 기존의 사기죄로는 이를 처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기죄는 누군가 사람을 속이고, 그에 따라 재물의 교부를 받는 것을 전제하지만 시세조종행위는 시장을 속이는 것이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기죄의 구성요건으로는 시세조종행위가 포섭되지 않는 것이다.

가상화폐에 대한 시세조종 등을 하더라도 기존의 법제로는 이를 처벌하기 어렵다. 현재의 자본시장법은 시세조종 등을 ‘상장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을 대상으로 한 행위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은 금융투자상품에 관한 것이지만 가상화폐는 아예 금융투자상품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상화폐 거래를 시세조종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입법이 불가피하다. 요즘은 그러한 입법의 필요성 여부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한 논의는 가상화폐 투자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느냐로 모이고 있는 것 같다.

한 당국자의 발언을 계기로 가상화폐 거래의 보호가 필요한지에 관해서 비교되는 것이 미술품 거래이다. 미술품 거래도 ‘사고파는 것을 정부가 보호’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다. 미술품 거래를 통한 손실은 정부가 보호하지 않지만, 사기적 행위로부터는 미술품 거래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조품을 진품인 것처럼 속여서 팔면 사기죄로 처벌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법제로 보호가 가능하여 새로운 입법이 불필요한 것이지 보호의 필요가 없는 것도 아니고, 보호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다른 예로 도박이라면 강원랜드 등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우리 법은 원칙적으로 이를 보호하지 않는다. 도박으로 돈을 잃어도 보호해주지 않고, 도박자금으로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더라도 우리 법은 그 회수를 도와주지 않는다. 도박은 그 자체로 위법한 행위이므로 이를 보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도 아니다. 도박을 하더라도 사기도박으로부터는 보호해 준다. ‘도박’이란 재물을 걸고 우연한 승패에 의하여 그 재물의 득실을 결정하는 것인데, 일방이 사기의 수단으로 승패를 지배하는 경우는 도박이 아니라 사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 위법한 행위인 도박을 하더라도 사기도박으로부터는 보호해 주는 것이 우리 법인데, 가상화폐 거래는 보호할 필요가 없는 걸까?

이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가상화폐 거래 손실에 대한 보호이고, 다른 하나는 가상화폐에 대한 시세조종 등 사기적 행위로부터의 보호이다.

거래 손실에 대한 보호라면 그 필요성을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상화폐 거래는 주식 거래 이상의 손실 위험성을 안고 있다. 최근의 가격 등락을 보면 그 위험성의 정도는 주식보다는 파생상품 거래의 위험성에 가까운 정도이다. 이러한 위험성 있는 거래의 손실을 보호해 주어야 할 필요성을 찾기는 어렵다. 그러한 입법 사례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시세조종 등 사기적 행위로부터 보호할 필요성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가상화폐 거래는 위법행위가 아니다. 현재로서는 우리 법이 이를 금지시켜야 할 만큼 어떤 사회적 폐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를 위법행위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도 없다. 위법한 도박도 최소한 사기도박으로부터는 보호해주는데 적법한 거래행위를 사기적 행위로부터 보호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가상화폐에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하고, 광범위하게 거래를 하고 있는 이상 그러한 자산을 위법한 방법으로 침탈하려는 자들로부터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유독 우리사회에서 가상화폐 투자 열풍이 불게 된 연유까지 보면 그 보호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가상화폐 투자자의 70%는 2030 세대라고 한다. 이들이 위험거래를 좋아하는 세대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소위 ‘벼락거지’로 표현되는 부동산가격 폭등에 의한 상대적인 자산가치의 하락, 어려운 취업 시장, 공정하지 못한 기회 이런 것들이 우리 2030세대를 가상화폐 투자로 이끌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럼 시세조종 등 사기적 행위로부터는 최소한 보호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가상화폐 보호가 필요한지보다는, 어떻게 어느 범위까지 보호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할 때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