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밤 10시면 술판으로 변하는 한강공원... 방역·안전 사각지대

2021-05-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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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따듯해지자 한강공원·청계천에서 야간 음주 크게 늘어나... 방역·안전 관련 우려 목소리

도심 공원에서 음주 규제할 방법 없어, 야외 음주 규제하는 해외와 대조적 행보

빠르면 7월부터 금주 구역 설정... 시민들 협조 필수

밤 10시 30분 서초한강시민공원에서 야외 음주 중인 시민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연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1개의 한강공원과 청계천은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는 시민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방역에 구멍을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안전사고의 우려도 있는 만큼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와 서울시도 올 하반기부터 한강공원·청계천을 포함한 도심 공원에서 음주를 금지하고 계도와 단속에 나설 방침이다.

4일 서울시에 따르면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한강공원을 포함한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규제할 필요성이 있다는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로 인해 음식점·술집에서 밤 10시까지만 음주를 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이 한강공원·청계천 같은 도심 공원을 야간에도 술을 마실 수 있는 대안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4월 들어 날씨가 풀려 야외에서 술을 마셔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점이 시민들의 도심 공원 음주를 부추기고 있다.

실제로 기자가 지난 주말 한강공원에 가보니 저녁부터 오전 2~3시까지 술을 마시는 취객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취객 중에는 미성년자로 의심되는 경우도 있었고, 일부는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바닥에 쓰러진 경우도 있었다. 편의점은 술·안주·돗자리를 사려는 시민들로 문전성시를 이뤘고, 배달 음식을 받는 '배달 존'에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코로나19 이전 강남·홍대 등 번화가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이 한강공원에서 그대로 벌어지고 있었다.

이에 시민들의 밀집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되어 방역에 구멍이 생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칫 시민들이 실족으로 인해 한강이나 청계천에 빠지는 등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한강공원은 야간에 부족한 조명으로 인해 땅과 한강의 구분이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또한 술자리 이후 생기는 음식물 쓰레기로 인해 악취가 나고, 발생한 쓰레기를 임시로 모아두는 한강공원 쓰레기장에선 파리·바퀴벌레·쥐 떼가 끊이지 않는다는 민원도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분위기 속에서 어두컴컴한 한강 다리 밑은 노숙자들의 쉼터가 되어 치안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와 서울시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도심 공원에서 음주를 규제 또는 금지하는 법령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서울시는 '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22개 직영 공원을 '음주 청정지역'으로 지정했다. 음주 청정지역이라 해서 술을 마시는 게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조례에 따라 '음주로 인해 심한 소음이나 악취가 나게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를 한 자'에게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한강공원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한강공원이 하천법으로 국가의 통제를 받는 상황에서 지방정부인 서울시가 추가로 규제를 하는 것은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밤 10시가 넘은 청계천에서 야외 음주 중인 시민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청계천은 원칙적으로 음주를 할 수 없다. '서울시 청계천 이용·관리에 관한 조례'에는 시민의 안전과 공익을 위해 청계천에서 음주할 경우 행정지도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때문에 청계천에서 술을 마시면 단속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조례는 유명무실하다.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청계천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의 청계천관리처는 계도만 가능할 뿐 과태료 부과 같은 단속 권한이 없다. 행정지도를 할 수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이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관리처가 지속해서 청계천을 순찰하며 술판이 벌어지는 것을 단속하고는 있지만, 처음에만 따르는 척하고 자리를 옮겨 술자리를 이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단속 인원에게 역으로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다.

현재 관리처에선 총 28명의 단속 인원이 7명씩 4교대로 근무하며 24시간 순찰하고 있는데, 이 인원으로 종로구·중구·동대문구·성동구에 걸쳐 11㎞ 길이로 흐르는 청계천에서 은밀히 벌어지는 술판을 단속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두 장소는 야외이다 보니 코로나19에 대한 시민들의 경각심이 옅어지는 문제도 있다. 마스크 착용과 5인 이상 집합금지는 실내뿐만 아니라 실외에도 적용되는 지침이지만, 한강공원과 청계천에서 이를 어기고 모여있는 경우는 손쉽게 볼 수 있다. 마스크를 벗고 단체로 술을 마시다가 비말 감염을 통해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야외는 자외선 때문에 바이러스가 생존하기 힘들지만, 침은 바람을 타면 8m까지 날아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여럿이 모여 대화하는 것은 자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야외 음주를 실효성 있게 막으려면 주류와 음식의 도심 공원 반입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한강공원 내 편의점의 야간 운영 또는 주류 판매를 제한하고 음식 배달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상거래 행위를 임의로 제한하는 것은 헌법상 재산침해 우려가 있어서 실제 시행에 나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지=우한재 기자]
 

현재 서울시는 마스크 미착용과 5인 이상 집합금지를 활용해 우회 단속하고, 한강공원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과 부대시설의 운영을 중단해 시민들이 몰리는 것을 막는 소극적 조치로 대응 중이다. 서울생각마루·광진교8번가·서울함공원·생태프로그램 등은 좌석과 회당 참여 인원을 크게 줄였고, 물빛무대·한강공원분수·밤섬생태체험관·밤섬생태체험관·인공암벽장 등은 운영을 중단했다.

반면 미국 등 상당수의 해외 국가는 공원·도로 등 공공장소에서 야외 음주를 적극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뉴욕주는 주류개봉금지법을 통해 공공장소에서 술병을 들고 다닐 경우 벌금 1000달러나 6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캐나다 앨버타주도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면 1만 캐나다달러 이하의 벌금이나 6개월 이하의 징역을 받는다.

결국 정부와 서울시도 외국처럼 도심 공원을 포함한 공공장소에서 야외 음주를 금지하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지자체에 금주 구역을 지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올해 1월부터 시행됐다. 이에 따라 법이 효력을 발휘하는 7월부터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가 한강공원·청계천 등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실 수 없게 금주 구역을 지정하고 지역에서 주류를 판매하거나 음주 시 처벌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어기고 술을 마시면 최대 10만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동안 야외 음주를 막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했지만, 음주에 관대한 분위기가 팽배하고 실효성을 담보하는 법안이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국민건강증진법의 효과가 생기는 6월 30일 이후 보건복지부의 조례 설정을 위한 가이드라인(단속 지침)을 받아 조례를 만들고 한강공원·청계천 등 도심 공원을 금주 구역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처음에는 다소 반발이 있겠지만, 금주 구역도 금연구역처럼 시민들의 일상에 녹아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7월부터 당장 금주 구역이 지정되진 않을 전망이다. 정부가 아직 단속지침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민건강증진법 시행 이후 올 상반기에 금주 구역 지정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한 연구 과제를 진행 중이다. 가이드라인이 언제 지자체에 전달될지 아직 확실한 시기를 밝힐 수는 없다"고 전했다.

때문에 앞으로 최소 2달 이상은 시민들의 협조에 방역과 안전을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시민들의 야외 활동과 여행이 막힌 상황에서 섣불리 금주 구역을 시행하면 그 부작용이 만만찮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한강공원에서 만난 A씨(32)는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이 불가능하고 일상생활이 멈추는 답답함을 그나마 풀 수 있는 곳이 한강공원이었는데, 야외에서 가벼운 음주마저 막아버리면 사람들의 스트레스가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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