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여기 있나 하는 것이 나의 시이다." 일본의 어느 시인의 말이다. 자기를 돌아보는 것만 해도, 이미 시 한 편을 쓰는 것과 같다는 얘기일까.
지난 3일 40주기를 맞은 다석 류영모(1890~1981)는 문득 이런 말을 남겨놓았다.
"이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 이 사람의 이름이나 얼굴은 다 잊어도 좋은데 이 한 마디만큼은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식사마다 보본추원의 정신으로 하는 것이다."
다석은 여러 가지 중요한 말씀을 남기셨는데, 이 한 마디만은 기억해달라고 한 말이 '보본추원'이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기에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말씀하셨을까.
서구 종교를 지닌 사람들은, 조상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미신일 뿐이며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여겨 참례를 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 집에서도 설같은 명절마다 비슷한 '불화'의 풍경이 있었다.
그런데 차례를 지내는 일은 죽은 자들의 영혼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그 죽은 자들의 뿌리를 찾아 그 근원에 절하는 일이라는 말이 보본추원이다. 우리는 내 몸이 있고 자식의 몸이 있으며 어버이의 몸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같은 DNA에서 나온 것이기에 시간적인 생이 달랐을 뿐 동일체라고 보는 관점이다. 죽은 어버이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죽어있는 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어버이를 통해서 올라가면, 영원함이 있고 그 뿌리인 하느님이 있다.
우리는 작년 진달래와 올해 진달래처럼 하나는 지고 하나는 피었지만, 진달래로는 거듭 살아있으며 그 뿌리엔 하느님이 있다는 얘기다. 그것을 기억해내는 일이 보본추원이다. 2017년에 나온 애니메이션 '코코'는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 행사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아즈텍문명 이전의 고대로부터 내려온 그들의 명절이다. 우리의 제사를 좀 더 확장해놓은 것이라 할 만하다.
제사는 창조주에 대한 경배이며, 그것이 원시반본이며 추원보본이다. 다석 류영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예수의 지내온 것을 생각해보면 하느님의 아들 노릇을 했다고 생각된다. 하느님 아들 노릇을 하는데 아주 몸까지 희생했다. 예수가 처음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이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은 예수의 희생인 그의 살이요 피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이 생각이 나와야 한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은 욕심으로 먹고 마시기를 버려야 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며 희생당할 때 그 제사야 말로 우리가 먹고 마시는 양식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알고 먹는 것이 성찬이다. 이것을 상의극치일정식(嘗義極致日正食)이라 한다."
嘗義(상의)는 締嘗之義(체상지의, 중용에 나오는 말)를 말한다. 체는 5년에 한번 하늘에 드리는 큰 제사이고 상은 매년 가을에 지내는 추수감사제다. 체상만 제대로 해도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고 중용은 말하고 있다. 제사를 잘 지내라는 뜻은, 제사상에 무엇인가를 풍성하게 올리라는 말이 아니라, 보본추원을 제대로 함으로써 근본을 세우라는 말이다.
다석 류영모의 '상의극치일정식'은, 하느님의 자식이 되어 날마다 하늘제사와 추수감사제를 지내는 듯이 밥을 감사히 먹으라는 것이다. 하루의 식사를 예수의 살과 피로 여기며 고맙게 조금만 먹으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과식할 일도 없고 음식에 탐욕을 부릴 일도 없다. 그 마음을 가지라고 당부한 것이다. 하루 한 끼 먹는 것은 정신이 육체를 먹는 것이며 내 몸으로 산 제사를 지내는 것이라고 했다. 류영모는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 이 사람이 죽은 뒤 이 사람이 못 보는 세상에서 이것이 어떻게 되나 한 번 보아주십시오. 먹고 마실 때 한 번은 꼭 이 '상의극치'라는 말이 나올 것입니다."
다석 류영모는, 그가 남긴 말 '보본추원'이 많은 이들의 마음 속에 유통되어 마침내 식사를 할 때 하늘을 생각하는 경건한 마음이 되기를 깊이 원했던 것 같다. 탐식과 과식의 문명이 스스로의 몸을 해치고 영혼의 설 자리마저 죽이는 것을 경고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세상에 우리만 불쑥 태어나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수만년 진달래들이 시절마다 피어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태어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진달래의 본령이 있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아도 우리 몸이 기억하고 우리의 근원이 우리 안에 들어와 그 기억을 돌이키게 한다.
우린 태어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으며 오직 하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근원에는 하느님이 있다. 밥을 먹는 것은 하느님의 제사다. 이것만 기억해도, 우리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하며 이 삶이 지금에 그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저 밥숟가락 위에 영원히 사랑과 감사와 기억으로 전수되고 있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곤고한 코로나19 시절, 모임마저 금지된 명절에 가만히 그 근원을 돌이키며 스스로를 살피는 일. 시절이 차려놓은 빈약한 차례상 앞에 이보다 더 좋은, 설 선물이 없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