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92)] 죽음을 오해하지 말라

2021-01-1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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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의 재발견-2.몸죽얼삶사상(下) 무덤 속의 예수의 몸을 보여준 화가 홀바인

독일 화가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은 '무덤 속의 예수(Christ in the Tomb)'를 그려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죽은 예수는 눈을 뜨고 있고 오른쪽 중지손가락은 펴진 채 바닥에 무엇인가를 쓰려다 만 듯 멈춰있다. 이것은 단순한 그림이지만, 인류 속에 깃든 종교적 상상력을 일거에 깨는 '팩트 폭격'일 수 있다. 관찰자의 시선 앞에 놓인 예수의 주검이라는 피사체는, 신화로 덧칠해온 이미지와 해석을 제한하면서 리얼리즘이 지닌 명료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16세기 독일 화가 한스 홀바인 '무덤 속의 예수'.]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흘리셨습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죽기 직전에 성가대 지휘를 하는 친구 안톤 슈톨을 위해 'Ave Verum Corpus(참되신 육신이여, 거룩한 성체)'를 작곡했다. 모테트(motet, 무반주 다성 성악곡) 형식의 종교음악이다. 이 성체 찬미가는 14세기부터 불려지던 곡으로 교황 인노첸시오 6세의 작품이라고 전해지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이 곡의 가사를 번역하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참되신 몸이 나심을 경배합니다. 모진 수난을 겪고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흘리셨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에 그 수난을 기억하게 하소서'라는 내용이다. 국내에서도 '존귀하신 구주'라는 제목으로 성체 찬미가가 불리고 있다.
성서에 드러난 예수의 삶을 살펴보면, 살아서 활동했던 행적들은 많은 부분이 지워져 있다. 죽기 3년쯤 전부터의 언행이 드러나다가 고통스런 형틀에서 죽음을 맞는다. 그의 삶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부분은 죽음이다.

류영모는 기독교가 '죽음의 발언'을 가장 극적으로 명료하게 제시하는 종교임을 통찰했다. 예수가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은 삶 속에서 현실적 고통의 제거나 경감이 아니었다. 기적을 통해 고통을 회피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한 것도 아니다. 그는 다만 제대로 죽는 법을 가르쳐주러 왔다. 이 세상의 어떤 종교도 신이 '인간'으로 직접 태어나 '인간'으로 죽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실행을 해보인 경우는 없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맞은 까닭은, 신이 인간의 권력을 무너뜨리거나 압도할 만한 권능이 없어서가 아니다. 인간의 권력을 응징하는 일은, 신이 스스로 만든 피조물에 대한 이견을 제시하는 것과 같다. 신은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까닭도 없다. 예수는 하느님이 낸 인자(人子)로 그 생애가 모두 신의 메시지이지만, 핵심은 십자가에 응결된 의미 곧 죽음이었다. 기독교는 '죽음을 발언하는 종교'다. 기독교는 끊임없이 죽음을 기억하게 하고 죽음을 의미화하는 종교다. 어떤 종교나 사상도 이토록 죽음에 집중해 꾸준히 발언함으로써 인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왜 살려고 태어난 인간에게 예수는 죽음을 보여주었는가. 왜 살려고 태어난 인간은 필멸하는가. 예수는 그 질문이 지닌 '전제'를 돌아보게 했다. 죽음은 육신의 멸망을 말하는 것이며, 모든 죽음은 몸의 생물학적인 멈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인간은 스스로의 삶이 육체로 제한되어 있으며 육체의 소멸은 곧 인간 자체의 소멸로 굳게 인식해 왔다. 예수는 그 확고한 오류를 벗겨주러 온 것이다. 육체의 죽음은 인간 전체의 죽음이 아니며, 생물학적 시한성(時限性)은 오직 육체의 생멸에 해당되는 것일 뿐이다.

예수는 자신에게 닥친 위험과 그에 따른 죽음을 전혀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죽음을 회피하지 않은 것, 심지어 부당한 죽음이고 권력의 놀림거리가 되는 죽음이라 할지라도 회피하지 않은 것. 이 점이 중요하다. 육신의 사멸이, 그가 설파한 영적인 삶을 완성시키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영적인 삶의 완성은, 신과의 합일이며 영성으로의 부활이었다.

홀바인의 죽은 예수는, 오로지 영혼이 빠져나간 그 몸을 비춘다. 영혼이 빠져나간 몸을, 영혼이 들어있는 몸(관객인 우리들)이 바라보는 셈이다. 가톨릭의 성체찬미가는 '죽은 몸'이 의미하는 영혼의 반전을 예찬하는 노래다. 기독교에서 죽은 몸은 끝없이 전시되며, 죽은 몸으로 이룬 무엇을 환기시키고 있다. 우리는 죽은 몸에서 죽음을 보지만, 성서는 죽은 몸에서 참삶을 본다. 즉 몸을 벗은 새로운 탄생 혹은 영적인 거듭남을 의미하는 부활을 본다. 죽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믿느냐. 그 해석을 스스로가 실천할 수 있느냐. 이 질문이 기독교이며 기독교는 오직 이 질문뿐이다. 

류영모는 예수를 이렇게 설명했다. "하느님의 아들이란 죽음을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과 죽음을 넘어선다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죽음과 깨달음은 같은 말입니다. 지식을 넘어선 사람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죽음을 넘어서고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죽어야 삽니다. 완전히 내가 없어져야 참나입니다. 깨달음은 인간의 가장 순수한 맨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가장 순수한 것이 참입니다. 이 세상에서 참기쁨을 맛보려면 '나'라는 것이 적어져야 합니다. '나'가 적어져서 아주 적어져서 없어지면 기쁨만이 남습니다."

류영모는 8시간 동안 죽었고, 11형제 죽음을 봤다

류영모가 나기 4년 전인 1886년에 나라에는 콜레라가 크게 번졌다. 서울에도 수많은 사람이 죽어 갔다. 송장을 나르는 들것이 수구문(水口門, 시신 내보내던 문으로 서울 중구 광희동에 있다) 밖으로 줄을 잇다시피 하였다. 그 뒤로 해마다 여름이면 콜레라가 돌았다. 콜레라가 얼마나 무서우면 범 같다 하여 호열자(虎列刺)라 이름하였을까. 세균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한방의학으로는 속수무책이었다. 1897년 7살의 류영모도 콜레라에 걸렸다. 쌀뜨물 같은 설사를 계속하여 탈수증으로 거의 죽어 가고 있었다.

고쳐줄 수 있는 의사가 없으니 그야말로 천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김완전은 설사 때문에 아이가 죽어 간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설사를 억지로라도 막으려고 손바닥으로 아들의 항문을 막았다. 항문을 막은 지 8시간쯤 지나자 죽어 가던 영모의 몸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기적이었다. 항문을 솜으로 틀어막고서 미음을 끓여 떠 먹이니 아이는 다시 살아났다. 죽음에서 건져낸 어머니. 류영모는 그때 다시 한번 태어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류영모는 서른 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주위 사람들의 안쓰러워하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형제 자매가 13명이었다. 그중에서 스무 살을 넘기며 살아남은 것은 두 명뿐이었다. 류영모와 동생 류영철(永哲)인데, 류영모 위로 형이나 누나가 몇인지, 혹은 아래로 동생들이 몇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여러 형제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자랐다는 점은 의미가 깊다. 인생관 형성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형제의 요절 가운데서도 류영모가 21세 때 잃은 동생 영묵(永黙·당시 19세)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으로 남았다.

류영모는 11명의 형제자매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성장했다. 류영모에게 죽음은 다중적인 의미였을 것이다. 조선이라는 국가가 도탄에 빠져 있으며, 창궐하는 역병으로 주위 사람들이 스러져가는 풍경들이 겹치면서 대체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현실적이고 다급한 고민들이 그를 휩쓸고 있었다. 가난과 절망의 일상 속에서 탈출구처럼 여겨졌던 곳이 교회였을 것이다.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을 안은 15세 소년이 만난 기독교는 언뜻 봐도 기이했다. 삶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언급이 없고 오직 예수의 죽음을 중심으로 한 믿음과 찬송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종교는 죽음의 역설을 담은 놀라운 가르침이었다.

그는 '예수의 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꽃이 피다'할 때, '피다'는 무엇인가. 피가 밴다는 의미라고 그는 풀었다. '꽃이 지다'할 때의 '지다'는 무엇인가. 그 피가 지워진다는 의미다. 생명은 피가 뱄다가 피가 지워져 사라지는 것이다. 피가 무서운 것은 그것이 제 자리를 벗어날 때의 죽음이 떠오르기 때문이고, 피의 빛깔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생명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류영모는 "꽃다운 피, 피다운 꽃이 예수가 십자가에 흘린 피"라고 말했다. 이 피를 '화혈(花血)'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예수가 피를 흘리는 것을 보았지만, 그것은 '꽃피'였으며 바로 꽃이 피어나는 현장이었다. 꽃피는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의로운 피이며 신의 아들이 되는 성숙한 피라고 류영모는 말한다. 저 꽃피는 죽음을 넘어서는 인간이며, 죽음을 넘어서는 인간일 때에 비로소 인간은 미성년을 벗어난다고 했다. 스스로 어린 날 '임사(臨死) 지경'을 겪고,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그가 깨달은 바가, 저 '성숙한 생사관'이었다.

'죽음'의 왜곡을 가장 참을 수 없었다

소년은 그러나, 20대에 교회를 떠났다. 종교의 원천은 분명히 진실을 담고 있었지만, 그 바탕이 흐려지면서 의문을 품게 하는 다른 것들이 많이 끼어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종교를 신앙하려면 그 종교의 교의는 믿을 만한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의 선조 전래로 믿어온 교의 속에 있는 예수가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였으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뒤에 무덤에 장사 지낸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가까운 이 몇 사람이 보는 가운데서 승천하였다는 것은 나로서는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나는 이 교의가 우주의 본질에 대해서 내가 마음에 그리는 것과 조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토인비의 '회고록' 중에서) 이 말이 류영모의 심경을 대변하고 있었을 것이다.

류영모는, 기독교회의 변질이나 교리의 헛된 번잡으로 인한 예수정신의 증발에 깊은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것은, '죽음'을 심각하게 왜곡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수의 죽음을 왜곡하는 것은 이 종교의 모든 것을 버리는 것과도 같다고 여겼다. 그것은 견딜 수 없었다. 부활과 영생은 육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예수가 보여주었다. 스스로 죽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몸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여전히 육신의 부활과 육신의 영생이란 기적을 꿈꾸며 '죽음'을 모면하려는 믿음만 키웠을 뿐이다.

예수는 스스로의 죽음으로 인류를 죄에서 구하는 속죄(贖罪)를 하러온 것이 아니다. 육신의 충동을 모든 것으로 여기며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육신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하여 다른 삶을 살도록 권하러 온 것이다. 예수는 우리 육신이 저지르는 죄를 결코 갚아준 것이 아니다. 육신의 죄 또한 신의 뜻 안에 있다. 그 욕망에 어떻게 대처하여 이윽고 몸삶에서 벗어나는지를, 신은 예수를 통해 알려주고자 한 것이다. 그것이 사랑을 가득 담은 신의 눈길이었다. 그 아름다운 참을 놓친  '피상의 믿음'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류영모는 스스로를 비정통이라 선언하고 교회와 교리를 벗어났다. 그는 오직 '죽음의 사표(師表)'인 예수를 스승으로 삼고자 했고, 예수처럼 죽고자 하는 길을 걸었다. 

류영모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단호하게 말했다. "죽은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자는 것도 멸망입니다. 몸은 예수의 몸도 거짓생명의 탈을 쓴 것입니다. 이 몸을 버리고 얼나로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게 영원한 생명에 드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로 간다는 것은 몸나로 죽고 얼나로 깬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만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다석 류영모]



죽삶사상은 '얼나예수'의 참가르침

다석사상의 핵심은 '얼나사상'이다. 몸이 죽고 얼은 산다는 '몸죽얼삶(肉死靈生, 죽삶)'의 전제는 '몸이 죽는다'는 엄연하고 당연한 사실이다. 죽삶사상은 얼나에 매진하고 얼나를 신앙하며 얼나와 영원히 함께하는 전제로, 죽음이 그 역할을 뚜렷이 한다는 생각이다. 몸이 죽을 수 있음을 기뻐하라. 그래야 얼이 온전히 신에게로 귀일하기 때문이다. 몸을 건사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몸이 부르는 충동에 빠지는 삶은, '얼나'로부터의 이탈일 수밖에 없다. 얼나사상의 완결은 반드시 '죽음'이라는 경로를 통해서 가능하다. 

도마복음서 5장에는 인상적인 예수의 말이 담겨 있다. "사람에게 잡아먹혀서 사람이 되는 사자는 복이 있다. 그리고 사자에게 잡아먹힐 인간은 저주받은 것이다. 그리고 사자는 여전히 인간이 될 것이다." 인간과 사자가 육식(肉食)을 하는 동물임을 빗대어 표현한 이 말은, 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다. 인간 내부에는 '인자(人子, 신이 내린 사람의 아들)'인 사람이 있고, 여느 짐승과 다르지 않은 사자가 있다. 사자는 배고프면 먹으려 들고, 다른 사자를 보면 공격하려고 들고, 또 이성(異性)을 보면 교접하려고 든다. 인간이 마음속에서 사자를 잡아먹으면, 그는 얼나로 거듭난다. 그러나 사자가 인간을 잡아먹으면, 신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사자가 인간인 것처럼 살아가다가 사자의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이토록 통렬한 비유가 어디 있겠는가. 

집필 = 이상국 논설실장
감수 및 자문 = 박영호 다석사상연구회장
@아주경제 '정신가치' 시리즈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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