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의 존재감이 연일 커지고 있다. 그만큼 국민의힘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 총장을 둘러싼 논란으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지만, 그만큼 야권의 존재감도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현 정권과 각을 세우며 ‘대선주자’로서 몸집을 키우면서 범야권 대선후보의 입지도 줄어들고 있다. 당내엔 윤 총장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인사도 많아서 추후 당내 갈등의 불씨도 잠재돼 있다.
주 원내대표는 전날까지만 해도 “현직 검찰총장에 대해서 자꾸 대선후보군에 넣는 이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면서 “윤 총장이 무슨 정치적 비전을 보인 것도 없다”고 했다. 윤 총장의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가 오르는 것에 대해서도 “반문, 반정권적인 정서가 모이는 현상”이라고 했다.
중진의원들의 반박이 잇따랐다. 권영세 의원은 “적절한 주장이 아닌 듯 하다”면서 “정부여당이 윤 총장이 정치 않겠다고 선언하지 않고 있는 게 무슨 큰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몰아갈 빌미를 줄 수도 있다”고 했다. 정진석 의원은 “윤석열이 대통령 선거에 나오면 안 된다는 주장은 반헌법적”이라며 “일차적으로 윤석열 본인의 의지에 달린 문제이고, 그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는 국민이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일련의 사건은 국민의힘이 마주하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윤 총장이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며 정부여당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이렇다 할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아직 국민의힘이 대안세력으로 인식되지 못한 탓이다. 정권교체의 기반을 만들어야 할 지도부 입장에선 마뜩찮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윤 총장의 대선후보 지지도는 상승세다. 여론조사 업체 알앤써치가 데일리안 의뢰로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차기 정치 지도자로 누가 적합한지’를 조사해 2일 발표한 결과, 윤 총장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4.5%로 1위를 기록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22.5%, 이재명 경기지사 19.1% 등으로 나타났다. 야권 주자는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5.6%, 오세훈 전 서울시장 4.5%,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2.7%,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2.4% 등으로 10%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를 보였다.
대선이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윤석열 정국’이 장기화 될 경우, 야권 주자들의 공간은 더욱 좁아진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갑작스런 대선 불출마를 경험해 본 보수 정치권으로선 ‘윤석열 대망론’이 이는 상황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윤 총장이 정치권에 입성한다고 해도 치열한 검증과 여권의 공세가 남아있다. 검증되지 않은 윤 총장 하나만 믿고 갈 순 없는 노릇이다. 한 관계자는 “윤 총장의 ‘독주’는 우리로선 경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 총장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인사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윤 총장 수사팀의 수사를 경험한 인사들이 있다. 한 의원은 “보수 진영에서 윤 총장 영입을 얘기하는 것은 민주당이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대선 주자로 내세우겠다는 말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윤 총장의 정치적 행보가 가시화될 경우 반드시 터질 갈등의 씨앗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