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 중도 빅 텐트 정당에 미래 있다

2020-12-0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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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사회주의를 싫어하는 중도층과 사회주의에 경도된 젊은 층을 모두 끌어안아 대선승리의 길로 나아갔다. [윌밍턴(미국)=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동네에서 자란 젊은이의 성공 스토리를 다룬 영화 ‘힐빌리의 애가(Hillbilly Elegy·哀歌)'가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힐빌리는 ‘두메산골 촌놈’이란 뜻이다. 주인공은 애팔래치아 산맥의 산골에서 마약 중독자 어머니와 자주 바뀌는 계부 밑에서 성장한다. 희망이 없던 소년은 외할머니의 뒷바라지로 오하이오주 주립대를 졸업하고 예일대 로스쿨을 거쳐 벤처 캐피털 회사에 취업해 성공 가도에 올라선다. J. D. 밴스가 쓴 이 회고록은 2016년에 출간돼 쇠락한 공업지대(rust belt)에 사는 미국 빈민층의 존재를 부각시켰고 트럼프 당선과 함께 베스트 셀러가 됐다.

미국 대선은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사상 유례없는 1억명의 유권자가 우편투표와 사전 직접투표로 판세를 갈라놓았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러스트 벨트들이 이번에는 근소한 표차로 바이든을 당선시켰다. 공화당은 왜 패배했는가. 바이든 8000만표, 트럼프 7400만표의 행방을 좇는 분석으로는 러스트 벨트의 반란이라는 설명이 너무 단순하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으로 조지타운대학 교수로 있는 E. J. 디온은 워싱턴포스트에 쓴 칼럼(11월 23일자)에서 "민주당은 좌파 이념으로 장벽을 치지 않고 중도를 포용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아우름으로써 이겼다"고 진단한다. 공화당은 반대 이유로 졌다. 강성 우파들이 당을 장악해 순혈주의로 흘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디온 교수는 "민주당은 다양한 인종과 이념과 정책을 아우른 빅 텐트(big tent)이고 공화당은 폐쇄된 서클"이라고 지적한다. 미국 정가에 "공화당은 민주당과 싸우는데 민주당은 자기들끼리 싸운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민주당은 안에서 논쟁과 갈등이 그치지 않다가 막판에 합의를 이룬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체성 확립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당의 린든 존슨 대통령이 민권법(공화당은 반대)을 통과시킨 이래 흑인과 여성,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한 운동이 민주당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복지, 경제규제, 환경보호 등도 민주당의 핵심 정책이다.

민주당 다양성이 공화당의 동질성 눌렀다

린든 존슨과 대결한 공화당의 배리 골드워더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뉴딜 정책의 유산을 거부하고 보수주의를 부활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공화당은 그때 중도 세력을 당에서 배제함으로써 이념적·인종적·종교적으로 동질성이 높은 정당이 됐다.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당의 다양성과 공화당의 동질성은 두드러지게 대비됐다. 에릭슨 리서치에 따르면 바이든 지지자는 진보 42%, 중도 48%, 보수 10%로 조사됐다. 반면에 트럼프 지지자는 보수 68%, 중도 27%, 진보 5%였다.

바이든 지지자의 53%가 백인인데, 트럼프는 82%가 백인이었다. 반대로 바이든 지지자의 21%가 흑인이고, 트럼프는 3%만 흑인이었다. 트럼프 지지자의 67%가 기독교 신앙을 가진 백인이었고, 바이든은 30%로 절반에 못 미쳤다. 공화당의 기독교 백인 정당 이미지는 아시아와 태평양 국가 출신 이민자들의 마음을 얻는 데도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선거에서 바이든 지지자의 16%가 남미계였고, 트럼프는 9%였다. 트럼프는 남미계의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해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는 공약으로 2016년 대선에서 저소득·저임금 백인 노동자의 표심을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이번에는 민주당을 사회주의로 몰아붙이는 전략으로 쿠바와 베네수엘라 출신 이민자들의 지지를 끌어들임으로써 선거 때마다 두 당이 접전을 벌이던 플로리다주에서 크게 승리했다.

공화당은 연령적으로도 노쇠해 가고 있음이 드러났다. 트럼프 지지자들 가운데 65%가 45세 이상이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대도시의 젊은 유권자들은 미국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과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구의 사회적·경제적 성공에 자극을 받아 사회주의라는 단어에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보수층, 중도층과 소련이나 쿠바, 베트남 같은 국가에서 탈출한 노년층은 민주당의 사회주의 이미지에 부정적이다.

공화당은 지난 30년 동안 8차례의 대선에서 일반 투표는 단 한 번 이겼다. 인구비례가 아니고 주 대표인 상원의원 선거, 선거인단 투표제인 대선이 공화당을 구제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공화당이 텐트를 좀 더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 정당도 강성세력에 끌려다니면 패배

빅 텐트의 우세 이론을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한국에 인종의 장벽은 존재하지 않지만 박정희와 김대중이 대결한 1971년 대통령 선거 이후 지역주의가 팽배했다. 여론조사에서 수도권 유권자가 응답을 안 하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고향을 보고 투표성향을 유추할 정도였다. 영남의 유권자가 많아 영남에 기반을 둔 정당이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절반이 넘는 인구가 사는 수도권의 경우 원적지보다 계층과 연령이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 점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진보이념이 총선에 유리했을 것으로 보인다. 총선 이후 국민의힘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체제에서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고 저소득층을 배려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중산층이나 서민 정당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하나 확실한 것은 좌파 정당이나 우파 정당이 강성 좌파나 강성 우파에 당의 주도권을 넘겨주면 중도층이 이탈해 다른 쪽으로 넘어가기 쉽다는 것을 미국 선거가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민주당이 촛불에 끌려다니고, 국민의힘이 태극기 세력에 주도권을 넘기면 선거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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